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솔부는 책바람 Oct 27. 2023

가족이라는 슬픔

[책리뷰] 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 민음사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연인 p.57



오늘 소개하는 소설 『연인』은 장자크 아노 감독이 만든 영화 '연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미성년자와의 사랑, 노골적인 정사신으로 개봉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 '연인'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소설보다 먼저 접했던 '연인'이라는 영화는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몇몇 장면은 여전히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닿는 순간, 배를 타고 떠나는 여자를  멀리서 지켜보던 남자,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서로를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은 영화 연인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는  프랑스 소설가로  그녀의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다니외이다.

뒤라스는 1914년 프랑스 식민지인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수학교사였던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여의고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 곳곳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러한 유년 시절의 기억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 투영된다.

1933년 프랑스로 귀국해 대학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43년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철면피들』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뒤라스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연인』10대 시절 베트남에 머물렀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 1984년에 콩쿠르상을 수상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얀 안드레아



연인을 집필할 당시 일흔 살이었던 뒤라스는 알코올중독과 간경화로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35살 연하의 여인 얀 안드레아가 뒤라스의 구술을 받아 타자로 기록했기에 연인이라는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뒤라스가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년간 함께 한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연인 p.10



이 이야기는 노년의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시간들을 회고하며 시작된다.

주인공의 기억은 흩어진 파편처럼 여러 시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조각조각이 하나로 합쳐진다.


1929년 프랑스령 베트남,

15세의 프랑스 소녀는 메콩강을 건너는 나룻배 안에서 12살이나 위인 중국인 남자를 만나고 그와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된다.




나는 큰 오빠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연인 p.13



지독한 가난 속에 점점 광폭하게 변해가는 어머니, 도박과 폭력을 일삼는 큰 오빠, 그리고 나약한 작은 오빠 등 가족 내의 억압과 갈등에 소녀는 숨이 막힌다.


남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세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어머니의 삶은 사막과도 같았다.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소녀의 일상은 슬픔으로 얼룩져있다.


소녀에게 중국인 남자는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소녀와 중국인 남자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두 사람의 금지된 쾌락은 일 년 반 동안 이어지지만 그들의 미래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소녀는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그제야 미처 깨닫지 못한 중국인 남자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돌로 된 가족이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가족이다.

날마다 우리는 자살을, 혹은 살인을 기도한다.

(중략)

우리는 삶을 증오하고, 우리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

연인 p.69



연인이라는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고 금기된 사랑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는 소녀와 중국인 남자와의 서사보다 주인공인 소녀의 불안정한 가정과 가족 내 갈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 큰 오빠만 편애하는 엄마, 난폭한 큰 오빠, 사랑했던 작은 오빠마저도 큰 오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줘야 할 연민의 대상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는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지만 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큰 오빠를 죽여서라도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던 소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기 자신을 세상 속으로 내던지는 일이었다.


중국인 남자와의 일탈을 보란 듯이 자행하며 어머니의 관심을 바랐던 소녀의 치기 어린 행동에 올바른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소녀의 아픈 성장기와  쓸쓸한 첫사랑의 기억이 담긴 『연인』

작가의 이전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4주년 코레아 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