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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Apr 02. 2024

날아라 병아리

굿바이 얄리

넥스트 <날아라 병아리>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두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 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갯짓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매년 가을, 국민학교 운동회 날에 팔던 상자 속의 작고 노란 병아리들. 옅은 갈색의 흐물흐물한 상자 속에 움직일 틈도 없이 가득 차 쉴 새 없이 삐약거리던 솜뭉치들.
나는 한 번도 그 가여운 병아리들을 사지 않고 돌아서본 적이 없다. 교문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병아리 떼를 보는 순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에게 달려가 병아리를 사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안된다던 엄마는 끈질긴 나의 떼부림에 결국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엄마에게 항상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받고 사 간 병아리들은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마지막이었던 적이 없다.(정말 마지막으로 산 때는 존재하므로)

동물이란 동물은 다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지금도 동물은 다 좋아한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녀석들을 도저히 그냥 두고 집으로 올 수가 없었다. 어디 운동회 날 뿐이던가. 가끔 불쑥 학교 앞에 병아리가 가득 든 상자를 가지고 온 할아버지가 보이는 날이면, 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병아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허락도 없이 사가지고 온 병아리를 본 엄마는 나에게 잔소리를 해대셨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집으로 들어온 조그마한 죄 없는 생명체를. 화를 내면서도 어디서 박스를 구해와 신문지을 깔고 병아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던 나의 엄마. 한술 더 떠 아빠는 병아리들이 춥다며 전구까지 사가지고 와서 병아리들의 상자 안에 구를 설치해 주다. 스 안 병아리만의 보금자리에서 병아리는 목이 쉬지도 않는지, 하루종일 삐약거리며 렇게 래를 불렀.


두 손에 폭 쥐고 있으면 어느새 눈을 감 가만히 자던 동글동글 보드라운 노란 생명체. 내 작은 두 손 안에 더 작은 존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던 기분 좋은 간지러움. 엄마닭의 따뜻한 품속이라고 느꼈을까. 지겨움을 참지 못내가 손을 풀 때까지 그렇게 병아리는 달콤한 잠을 한참이나 곤 했다.


하지만 원체 타고나길 병약해서일까. 따뜻한 보금자리와 넉넉한 밥과 깨끗한 물을 제공해도 병아리들은 며칠 못 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칠이면 그래도 다행이었다. 당장 사 온 날 저녁부터 앓는 녀석도 많았다. 병아리에게 죽지 마, 죽지 마를 서글프게 외치며 는 것 밖엔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없어 푹푹 꺾이던 얇은 다리. 뒤집힌 몸을 일으키기 위해 허공에 애처로이 움직이던 작은 날개. 그마저의 힘도 잃어버려 옆으로 누운 채 그저 삐약거리던 작고 뾰족한 주둥이. 점점 감기던 까만 눈. 오는 잠을 참아가며 병아리의 마지막을 지키다 결국 엄마에게 혼이 나고 울면서 자러 가던 나는, 그래도 아침에는 병아리가 나아있길 바랐다. 애석하게도 약해진 병아리가 다시 건강을 되찾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고 여린 그 아이들은 아침이면 하나같이 차 식어있었다. 쳐 감지 못하고 떠나버린 병아리의 눈을 감겨주던 엄마. 영화에서처럼 자연스럽게 감기지 않던 이미 굳어버린 눈. 옆에서 그런 엄마와 병아리를 보며 세상 서럽게 울던 어린 나.

엄마는 세상을 다 잃은 듯 우는 나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에게 이 병아리들은 이미 병든 아이들이었다고, 그러니 앞으로 다시는 병아리를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엄마. 어린 나는 사뭇 진지하게 다시는 병아리를 사 오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약속을 했다.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다시는 병아리를 사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슬픔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고, 스스로의 다짐과 엄마와의 약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 파는 병아리를 보는 순간 내 기억 속에서 새하얗게 사라고 말았다.


최소한 수십 번은 이별한 나의 수많은 얄리들. 리들을 묻어준 화단에서는 어여쁜 꽃이 유난히 많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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