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진 Mar 29. 2024

주씨 아저씨

장미 맨션으로 이사 가던 날, 없이 나무 작대기 하나 들고 아파트 여기저기를 방황하던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아이고, 뻐라. 니 이름이 뭐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이름을 가르쳐 주면 안 된다는 교육을 엄격하게 받은 나는 불안한 으로 급하게 엄마를 찾는다.


"아저씨는 여기 경비 아저씨라서 괜찮다."

사람들은 그분을 주씨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곳에 사는 16년 동안 수많은 경비아저씨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만이 내 기억 속에 있는 남아 있는 이유는 주씨 아저씨가 유달리 날 많이 예뻐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동글동글 넓적한 얼굴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했던 아저씨의 나이는 얼마쯤이었을까. 짙은 남색의 모자를 쓰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도록 항상 선하게 웃으시던 아저씨는 지금 어딘가에 살아계실까.

관리 사무소와 경비실이 그냥 같은 의미였던 그 시절, 경비실 한쪽엔 모든 집의 열쇠를 걸어 놓는 짙은 갈색의  장이 있었다. 모두들 외출을 나갈 땐, 당연하다는 듯이 열쇠를 경비실에 맡겨 놓고 집을 나섰다. 맡겨진 열쇠는 얇고 넓은 장안에 저마다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경쟁하듯 그렇게 반짝거렸다. 가끔 우리들은 경비실 앞에 매달려 다양한 모양의 열쇠들을 구경하기까지 했다.


 "아저씨, 우리 집 열쇠 주세요."


경비 아저씨들은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바그 아이 집 열쇠를 집어 건네주셨다. 그저 열쇠를 여러 개 복사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삼십몇 년 전, 그때는 그게 당연 일이었다.


어느 집에 누가 몇 명이 사는지, 미주알고주알 속속들이 다 알던 관계. 너무 잘 알아 오히려 문제였던 사이들. 새로 이사를 오면 떡을 돌리고, 돌아가며 누군가의 집에 모여 반상회를 하던 주민들. 청소하는 날이면 집에서 청소도구를 들고 나와 다 같이 계단을 청소하던 람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사느라 열심히 오르내렸던 그 계단.


 일상 속 항상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던 주씨  아저씨가 어느 날부터 경비실에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자꾸만 자꾸만 바뀌어 가던 시간들이 한동안 지속 되었다.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아줌마들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에 어가는 파이라는 단어와 , 린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내용이 내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궁금한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보자, 엄마는 그런 것을 나는 아직 몰라도 된다고 했다. 입을 삐죽거리며 불평을 쏟아 보지만, 마는 어른들 일은 몰라도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누군가의 집에 모이던 반상회가 없어지고, 아파트를 청소해주시는 사람이 생겨나고, 누가 이사를 와도 떡을 돌리지 않게 되고,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다 알지 못하며, 열쇠도 더 이상 경비실에 맡기지 않게 된 시간들. 그 속에서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5층까지 내가 걸어 다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