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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Mar 26. 2024

장미맨션

장미맨션 나동 501호

떠나온 지 20년.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 재개발을 올해는 한다, 내년엔 한다, 사는 내내 이런저런 말만 무성하다, 얼마 전에야 재개발 결정이 났다는 소식을  5층짜리 3동의 오래된 아파트.

한때는 나의 삶의 일부였우리 집, 내 방. 하나하나 눈에 선한 그리운 . 이제는 영영 없어질 공간들.

2층 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던 6살의 나는,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동네방네 '나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며 자랑을 댔다.
원래 살던 곳에서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던 그곳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갔던 길.

사다리차도 없던 시절, 그 크고 무거운 장롱을 등에이고 지고 5층까지 올라가던 아저씨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경비실 뒤쪽으로 놀이터가 있고, 그 앞으로 나란히 다, 나, 가동의 5층짜리 건물이 띄엄띄엄 놓여 있던, 당시로는 굉장히 세련 아파트.

자가용이 거의 없던 그 시절, 건물 사이사이의 공간이 꽤 넓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하교를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아파트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놀이를 그리도 재미있게 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까르르 거리며 땀 흘리며 놀던 천진난만한 아이들.
공기가 어느덧 싸늘해지고 하늘이 노랗고 발갛게 물들 즘, 창문 사이로 얼굴을 내민 엄마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온 아파트에 울려 퍼진다.

"○○아~ 밥 먹으러 온나."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구수한 집밥의 냄새가 여기저기서 진동을 한다. 갑자기 몰려오 허기. 그렇게 허기진 배를 잡고,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자신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되돌아다.


학교에 가는 아침, 오빠와 집을 나서 경비실 앞 즈음에 도착하면 엄마가 5층 베란다 창문으로 우리를 부른다.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다정히 인사를 하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 좋아 같이 손을 흔들며 대꾸하기 바쁜데, 나보다 4살 위인 오빠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며 괜히 나에게 짜증을 부린다. 부끄러우니 제발 그만하라던 오빠. 그런 오빠가 이해되지 않던 어린 시절의 나.

젊었던 엄마. 어렸던 오빠와 나.
나와 오빠는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어버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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