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말없는 소녀> 물, 양동이, 소녀

아일랜드 영성과 재생

by CaleB

언제부터인가 아일랜드의 감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존카니 John Carney 감독의 영화 <비긴어게인>과 <원스>에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필자는 그 이전에 록밴드 U2의 팬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아일랜드가 겪고 있는 역사적 비극들을 알게 되면서 아일랜드의 서정이 우리의 것과 비슷한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섬나라인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유럽대륙과는 다른 독자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기독교선교이후에도 켈틱기독교Celtic Christianity이라는 특이한 기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일랜드의 켈트Celt인들이 자연과 일상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토착적이고 감성적인 자연친화적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음악이나 영화를 통해 아일랜드의 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아졌지만, 원래 아일랜드에는 조나단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등과 같은 유명한 문필가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맡겨진 소녀 foster”는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입니다. 별 기대 없이 감상했던 영화는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 애잔함이 오래 지속됩니다. 원작소설 역시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글입니다. 절제된 언어와 표현 속에서 영화의 제목이 <말없는 소녀>로 바뀌게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없는 소녀의 표정을 잘 연기했다


맡겨졌다는 것은 집에서 굳이 필요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녀는 가정에서 꼭 필요한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까지 합하면 5남매의 셋째라는 위치가 소녀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첫째나 막내에 비하면 소녀가 받는 사랑은 딱 중간정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녀는 자신을 나타내는 언어를 절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러Adler의 개인심리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운데 낀 아이’는 자신의 생존방법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어딘가 위축되 보이는 소녀


그런데 침묵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는 의미이지만 침묵은 때로는 더 큰 것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우리의 감정은 그 언어에 구속되고 맙니다. 그래서 소녀와 킨셀라 씨 부부와의 감정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아름답습니다.


침묵이 담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단순히 기쁨이나 슬픔같은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함께 담긴 복잡한 감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많은 슬픔들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은 재생을 상징한다


물에 빠진 소녀는 며칠을 더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건이 집에 돌아갈 시간을 유예시켜 준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킵니다. 다행히 여기에서는 소녀가 감기에만 걸린 것으로 끝나니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물, 양동이, 소녀’ 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물이라는 소재는 신학에서는 '죄씻음, 세례, 새로 태어남' 등의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물에 빠진 사건은 소녀가 알게 된 킨셀라 씨 가정의 비밀과 그들 부부가 주었던 사랑사이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에서 죽음이란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전제입니다.


달리기는 주도성을 상징한다


성숙의 이미지는 달리기에서도 나타나는데 소녀의 달리기는 처음보다 무려 ‘19초’나 빨라졌습니다. 이 빨라진 달리기는 마지막 엔딩장면을 위한 유용한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소녀가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것은 주도성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합니다. 빨리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을 뻔했던 자신의 말을 전할 결단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함


“아빠”. 이 말에 대해 해석은 여러 가지 일 것 같습니다. 킨셀라 씨 부부가 정말 듣고 싶었던 사랑했던 아들의 음성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진정으로 자신을 아껴주었던 사람에게 향한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진짜 ‘아빠’입니다. 소녀에게 베푼 사랑은 다시 킨셀라 씨 부부를 치유하는 사랑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죽음과 부활,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소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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