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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r 19. 2024

진주, 진화, 진실

각자 성격 확실한 세 자매 진주, 진화, 진실


“형부 여기 벤치에서 좀 쉬었다 가요.”  

   

“그러지요. 그럼.”     


대한과 화정은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던 화령을 벤치 가운데 앉혔다. 화정은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화령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실까, 우리 원여사가?”     


대한은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듯 화령을 지그시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화정은 옆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대한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그러면서도 화령을 걱정스런 얼굴로 힐끔거리며 대한의 눈치를 살폈다.     


‘형부한테 말을 해야 해? 말아야 해?’     


화정은 모르겠단 듯,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밤 길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 발걸음이 빠른 남자나 여자도 보이고, 기분 좋게 외식이라도 하고 왔는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가족의 모습도 보이고, 술을 마셨는지 살짝 비틀거리듯 천천히 걸어가는 중년 남자도 보였다. 그러다 어느 젊은 애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가 통화를 하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화가 난 듯 보였다.     


“나도 이제 퇴근해서 들어가고 있잖아. 자기만 직장 다녀? 나도 직장 다니면서 월급 받아 먹으렴 윗사람 눈치도 봐야하잖아. 그리고 오늘 네가 애 데리러 가는 날이었잖아. 뭐라고? 이혼? 이혼이 그렇게 쉽니?”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던 화정은 대한이 옆에 있다는 걸 잊었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 쉽지 않은 이혼을 진실이까지 했으니.”     


대한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화정을 쳐다 봤다. 화정은 그제야 자신을 쳐다 보는 대한의 인기척을 인식한 듯 했다.‘어머,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한 거야?‘란 표정으로 조심스레 대한의 얼굴을 쳐다 봤다.      


“그게 형부, 그게...”     


대한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화정은 평소에 한없이 점잖고 자상하기만 한 대한의 얼굴이 굳어질 때면 한기가 느껴졌다.

안 그래도 난감한데 술에 취해 잠들 듯 가만히 앉아 있던 화령이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힘없이 쳐 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딸년 셋이 다 이혼해 버렸으니, 내가, 내가 동네 창피해서, 내가! 우리 강변호사님? 우리 딸년들 어떡해요?”     


대한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전화를 걸었다.                         





운전석 앞 거치대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고, 발신자가 아버지라고 뜬다. 운전대를 잡은 진주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뒤 자석에서 앉아 있던 진실과 진화는 각자의 핸드폰만 쳐다 보고 있다.

진주는 룸미러로 뒤 자석을 힐끔하더니 운전대 스위치를 눌러 전화를 받았다. 대한의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어디냐?”     


대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실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진화는 놀란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진주를 쳐다 봤다.      


“운전 중이에요.”     


진주는 덤덤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대한은 잠시 말이 없었다.     


“진화와 진실이도 같이 있는 거냐?”     


“네.”     


“잘됐구나. 셋 다 집으로 오너라, 지금.”     


“네.”     


진주는 전화를 끊었다. 진실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언니. 차 세워, 나는 내려줘.”     


진실은 못 들은 척 냉정한 얼굴로 아무 반응 없이 차분하게 운전대를 틀었다. 진화는 진실의 핸드폰을 주워 진실에 손에 쥐어 주고, 두 손으로 진실의 손을 꼭 잡아 줬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 아직 모르잖아.”     


“같이 있냐고 묻는 거 보면 몰라? 내가 얼마나 직감이랑 눈치 빠른지 언니들도 알잖아.”     


흥분해서 목소리 톤은 낮추지 못하는 진실의 손을 진화가 더 꼭 잡아 준다. 진화가 뭔가 말을 하려는데 꼿꼿하고 냉정하게 날아드는 진주의 목소리가 차 안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한 번은 맞부딪힐 일인데, 피한다고 뭐가 달라져?”     


“언니가 그렇게 냉동실처럼 구니까 그 잘난 형부가...”     


진실이 지지 않고 소리 치자 진주가 갓길로 차를 홱 돌리더니 급정거하며 거칠게 차를 세웠다. 진화는 룸미러를 통해 서로를 노려보는 진주와 진실을 쳐다보며 또 시작이란 얼굴로 작은 한숨을 쉬며 진주를 달랬다.     


“언니, 진실이가 지금 속이 속이 아니잖아. 많지도 않은 살림에 진짜 쫓겨나듯이 한 푼도 못 받고 이혼 당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 좀 해 주자. 그리고 아버지가 어쩌다 한 번 호출하시는데, 호출에 늦게 나타나는 거 싫어하시잖아.”     


진주는 룸미러에서 눈을 홱 돌리더니 다시 차를 몰았다. 진화는 운전석에 앉은 진주의 눈치를 살피며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 진실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진실은 왜 꼬집냐는 듯 진화를 째려봤다. 진화는 진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너 미쳤어? 언니가 그 형부만 얘기만 하면 누구 하나 죽이고 싶어 하는 거 몰라?”     


진실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매일 누구 하나 죽이고 싶겠네. 이혼하고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진화는 그만하라는 듯 손으로 진실의 팔을 툭 치면서 진주가 들었을까 봐 괜한 눈치를 살폈다.

진주는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게 운전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진주의 두 손에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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