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May 10. 2024

조직검사? 항암치료? 끝이 아닌 것과 끝장난 것!

이미 끝장이지만 피하고 있는 것과 아직 끝이 아닌 것에 대한 기도!



엄마의 퇴원 날이라 아빠와 남동생에게 톡을 보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끝난 게 끝이 아니었나 보다.


"조직 검사 해서 결과 나와야 한대. 조직 검사 결과 보고 항암 치료 해야 할지 안 해도 될지 봐야 한대."


엄마의 수술은 수술로 끝이 아니었다.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이제의 여부가 달라진단다.

낯설다. 제거 수술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 적응이 안됐는데, 항암 치료라는 말도 너무 익숙지 않고 낯설다.

퇴원이 완전한 퇴원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좋지 만은 않다.












엄마의 수술은 끝났지만 끝이 아닌 거였다. 나의 이혼 소송은 아직 판결이라는 끝을 보지 못했지만, 이미 현실은 끝장난 것이다.


어제 밤 아들이 처음으로 이제는 힘들다는 얘기를 나에게 해 줬다.


"어느 부분이 제일 힘들어?"


"나를 가운데 두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제일 힘들어. 아빠가 나한테 자꾸 왜 자기랑 안 노냐, 제대로 인사 하라고 뭐라 하는 것도 힘들어."


나는 가슴이 아팠다.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 저 어린 것이 그동안 참고 참다가 내뱉는 말일 거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런 어린 아들의 힘듦과 불편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남의 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을 재우고 어두운 침대 위, 아들의 옆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이혼 중인 남의 편을 피해 밖으로부터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남의 편의 코고는 리가 어이가 없었다. 대단한 인간이다 싶다.


아침에는 거실에서 이혼 중인 남의 편이 대문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야만 닫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불편해 하는 어린 아들에게 덜 부딪히게 해 주려고 내 딴엔 애쓰고 있다.


나는 아들을 깨워 밥을 먹여 등교를 시키고 변호사 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린 아들 4살 때인가 집 안의 물품을 압류 했던 이혼 중인 남의 편의 전여친이 나를 SNS으로 괴롭힐 때 나에게 보냈던 쪽지와 대글들을 찾아서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쓰던 컴퓨터 하드웨어와 전에 쓰던 빨간색 노트북 하드 웨어를 고장 없이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 하드웨어에는 아들이 애기 때라 육아하느라 정신 없고, 남의 편의 말만 듣고 고 있었던 그 쪽지와 대글들 캡쳐가 보관돼 있었다.


남의 편의 전여친이 남의 편과 연락이 두절 됐다며 나에게 구구절절 하소연 하듯 보낸 쪽지와 내 카스에 달았던 대글들을 이제야 더 자세히 읽게 되는 거다. 그때는 대충 읽었어서 뭐지 싶기만 했었던 자료들이다. 대충 읽었지만 내용이 심상치 않았던, 이게 무슨 소리냐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갔던 증거 자료들이다.

나는 그 하드웨어와 외장 하드를 챙겨서 근처 컴퓨터 조립이나 수리를 하는 매장으로 갔다. 하드웨어를 고장나지 않게 잘 보관하고 있었기에 몇 년이 흘렀어도 그 안에 든 내용들을 외장 하드로 옮길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이 사람 진짜 사기꾼인가?'라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왜 미친 소리로만 들었을까 싶어 하며 다시 읽었다.

남의 편을 사귀는 초에 자신에게도 어떤 여자가 찾아 왔었는데 '저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라고 미친 여자로만 알았단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 자신이 미친 여자로 비치거 같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몇 천 만원이 우습냐며, 와이프 말은 듣지 않겠냐며 남의 편에게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말고 피하지 말고 양심 있게 해결해 달라고 전해 달라고 돼 있었다.

자기랑 사귈때 자기 명의의 통장을 써 온 건 아냐며, 와이프에게도 그렇게 하냐고 묻는 부분도 있었다. 와이프에게도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 잘했냐며, 같은 여자로서 아무것도 모를 와이프 분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그런 남의 편 전여친의 SNS 괴롭힘 팩폭에 카스도 탈퇴하고 페이스북도 탈퇴하고 활동을 중단해야 했었다. 아들이 더 어릴 때고, 활동적이고 가만히 안 있는 아들이가 정신이 없을 때인데 계속 울리는 알림에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 냉정하게 다시 내용들을 들여다 보니 얼마나 절박했으면 나에게 그렇게 하루에도 10번은 페이스북을 통해 쪽지를 보내며 하소연을 했을까 싶어졌다.


법적인 소송 자료와 압류 자료가 확실하게 증거로 남아 있기에 이 내용에 대해 반박도, 부인도 할 수 없다.


나는 정리를 해서 그대로 변호사 님에게 넘겼다. 변호사님은 한 시간도 안돼서 mail을 확인하겠다고 답장을 보내 주셨다.


이 증거 만큼은 되도록 안 쓰려 했다. 아무리 정이 떨어졌어도 여자들 등쳐 먹고, 여자들 명의 써 가며 기생충처럼 이용해 먹은 남자라는 것까진 내 애를 위해서 남겨 둔 나의 마지막 인내심이었다. 그런데 그 인내심마져 무너졌다. 어린 아들 입에서 이제는 힘들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이래저래 지금 더 이상 실망할 마음의 여지도 안 남을 정도로,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깊은 바닥을 보이는 저 인간에게 마지막 인내심 같은 걸 남길 생각이 없어졌다.











" 엄마랑 통화 했어. 집에 할일이 많대, 설거지도 그렇고..."


"바로 뭘 해도 돼?"


"해도 되긴 한데 무리는 하면 안되지."


"그렇구나. 엄마 놀라게 하면 안돼서 나야 뭐 앞에 나서서 도울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엄마가 누나 보면 쓰러질 걸. 누나 이혼 얘기 하면 누나 뿐만 아니라 아빠도 힘들어질까봐. 경찰 공무원이었으면서 딸이 결혼한 남자가 어떤 놈인지 알아 보지도 않았다고..."


"작가일 할때도 성공한 작가도 아니고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 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혼 얘기함 챙피해 하시겠지."


"누나가 이혼하고 잘됐음 좋겠어. 누나가 이혼하고 잘되고 잘 살면 엄마도 받아들이기 조금은 괜찮을 거야."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나도 이혼이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나의 귀책 사유도 아니고, 나와 어린 아들도 상처 받은 상황이다. 변호사도 이해 못할 상대의 이기적이고 특이한 행동에 나와 어린 아들은 빨리 벗어나고 싶고, 정말이지 불편하고 싫은 걸 감수하고 소송 과정을 겪고 있다.


나는 이혼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깰 거다. 당당하게 내 잘못이 아닌  선택하게 된 인생의 한 굴곡을 이겨내고 싶다. 다행히 남동생과 친정 아빠는 이제라도 헤어지는 게 낫다, 힘내라고 나와 어린 아들을 걱정하고 응원해 주느라 바쁘다. 지인들도 빨리 끝나길 기도해 주며 응원해 주고 있다.


솔직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혼에 대한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다. 또는 나를 아는 사람들도 '그래도 이혼은 좀...' 한다 해도 나는 당당할 거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내 어린 아들이 편견의 시선 속에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법적으로 대응할 생각이다. 그 고통과 상처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말을 신경쓸 필요도 없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주는 상처를 무조건 수용할 생각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간에 빚투까지? 빨리 끝내고만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