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May 21. 2024

다이어트 필요 없는 현실, 어느 새 다섯 달

뭐라도 해야지, 그거라도 벌어야지, 계속 되는 이력서 전송


아들이 하교할 시간이 돼 아이 알리미 알림을 확인하는데 아들이 톡으로 보이스 통화 버튼을 눌렀던 흔적이 있었다.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얼른 전화를 걸었다.


"엄마한테 보이스 통화 걸었었어?"


"응."


"무슨 일 있어?"


"아니, 엄마. 나 학원 끝나고 OO랑 놀면 안돼?"


"어디서?"


"우리집."


"우리집? 그러다 일찍 들어오면 어쩌려고?"


순간 나는 잠시 숨이 멎었다. 아들도 순간 멈칫 거리며 말이 없었다. 아들이 말하는 친구는 아들과 편식 입맛도, 취향도 거의 비슷하게 4년 동안 같은 반인 단짝 친구였다.

나의 대답에 아들의 표정이 어떨지 안 봐도 훤한 보였다. 순간 화도 났다. 왜 나와 아들이 눈치를 봐야 하지, 가정을 파탄낸 건 그 인간이고, 나랑 아들이 불편하니 집에 들어오자 말아 달라고 애원까지 했는데 뻔뻔하게 들어오는 게 그 인간인데 말이다.


"알았어. 그러면 엄마가 학원 끝나는 대로 너희 둘 픽업 할게."


아들이 목소리가 그때서야 밝아졌다. 나는 전화를 끊고 제발 오늘 늦게 들어 오길 바라며, 아들 단짝 친구의 엄마에게 톡을 했다.





 






'너 주변 사람들한테 보험 들어 달라고 하고 싶어? 서로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게 돼.'


나는 직업에 대한 편견은 없다. 다들 나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또 성공하면 인정 받고 좋은 거다. 다만 나는 영업에 자신이 없어서 집 바로 부근 보험 회사에서 같이 일 하자고 면접도 보고 그러는 걸 거절해 왔었다.


그런데 일주일 교육 받고 시험에 합격함 15만원을 준단다. 교육 받으며 그 회사에서 주는 도시락도 먹고, 간식으로 시원한 음료수도 먹고 15만원이라도 벌자 하고 교육을 받아 보기로 하고 중간에 들어가 교육 받은 지 3일이다. 아이를 보호하고,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아이의 정서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 제약 안에서 일을 찾고 있지만 싶지는 않다.

이력서를 몇 십 개는 써서 전송 시킨 거 같다. 주말에는 아이 혼자 둘 수도 없어 아직은 주말까지 하는 일을 하기도 제약이 온다. 그래도 용돈이라도 몇 푼 벌며 자격증이라도 내 돈 안들이고 따 놓겠다고 교육을 받고 있다. 목요일이 시험이다. 내 성격에 딱히 보험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닌데, 친구의 꽂히는 직선적 말에 솔직히 순간 상처를 받은 건 사실이다.


친구가 영업 같은 거에 소질 없는 나를 걱정해, 나를 알기에 하는 말인 건 안다. 나쁜 뜻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 순간 상처가 됐는지 모르겠다.


세상 쉬운 게 없구나 싶다. 지금은 간간이 있는 시민위원으로서의 시 회의 참석 비와 시 교육 문제 모니터링 비를 그나마 받고 있고, 브런치에서 책도 출간하고 글을 쓰며 아주 소량으로 벌이는 하고 있지만 벌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간간히 아르바이트 할 거리가 있으면 하고 있다.


이 일이 있기 전부터 갑자기 나보고 나가서 돈 벌으라는 남의 편의 눈치에 작년 부터 1년 동안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었다.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도 9개월 해 보고, 쿠팔 물류 센터에 가 노동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롯데 렌터카 인바웃 상담 일도 해 보고, 기업의 직원 식당 세척 파트 일도 경험해 보고, 학습지 선생님도 시도해 봤었다.


다시 작가 일은 기회가 없는 건가 싶어, 간간히 회장님과 톡으로 대화도 하고, 이렇게 온라인으로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친구는 내가 상처 받은 걸 듣고는, 그런 뜻이 아니었단다. 물론 나도 안다.


"나도 일을 해야는데  생각만 있고 이력서만 골라서 써 내고 있지 너처럼 행동으로 경험을 못하고 있어서 네가 대단해 보여. 정말이야. 나는 그렇게 일단 도전부터 못하겠는데, 너는 뭐라도 해야 뭐라도 건진다고 일단 움직이고 있잖아. 솔직히 남편 때문에 화도 나. 내가 왜 이 나이에 이렇게 어거지로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이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로 경단녀가 된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은 다시 사회로 나가려 하면 뼈 아픈 현타를 느껴야 한다. 사회에서 이제는 우리 같은 여자들을 전혀 인재로 생각해 주지 않고, 다시 사회적 기회를 내 전공 기준에서 제공해 주지 않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한 나이다.


그렇다고 내 성격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성향도 아니다. 일단 경험해 보고 부딪혀 봐야 뭐가 나오지 하는 성격이다. 친구들이 그 점만은 나를 높이 사는 경항이 다소 있다.

하지만 15년, 20년 가정 주부로만 있다가 코로나다 경제 불황이다 해 갑자기 돈 벌러 나가야지 하면서도 망설이며 선뜻 못 나서는 이 나이 여자들의 심리를 나는 잘 안다.


더구나 나는 이제 이혼녀라는 편견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씩씩하게, 당당하게!












나는 재빨리 돈까스를 준비 하고 샤워를 했다. 아들이랑 아들의 친구랑 놀고 나면 저녁이다. 이혼 중인 남의 편이 들어 오면 곧바로 침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야해 샤워부터 했다. 어차피 애들 데리러 가서 픽업해 오는 건 10분도 안 걸린다.


아들이 친구랑 집에 들어오며 신나하는 모습에, 그래 아들의 마음과 정서와 일상부터 챙겨 주자 싶었다. 어차피 이제 남의 편은 내게 신경 써야할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신경 쓰고 되도록 불편함을 최소화 해 주며 지켜 줘야할 선 내 아들이다.


아들이 친구랑 식탁에 앉아 함께 놀기 위해 맛있게 돈까스와 밥을 먹는 모습에 뿌듯했다.

솔직히 요즘 나와 아들은 살이 빠져 가고 있다. 나는 남의 편 때문에 불편해서 집에서 저녁을 거의 간단하게 먹고 들어 오면 침대 방문 닫고 들어갈 준비 하느라 모든 걸 미리 하느라 바쁘다. 더위 타는 아들은 날씨도 더워지고, 불편한 상황에 입맛이 없다면 요즘 좋아하는 음식도 남길 때가 자주 있다.


"살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니 아들 살 빠진거 알아?"


"너 얼굴이 안됐어. 잘 챙겨 먹어."


그래서인지 요즘 지인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