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오십이 3~4년 남은 내 경력이 초라하잖아! 아니 무슨 20살도 안된 애가 경력이 호화판이냐구. 쿠팡이 아무리 대기업이라지만 화상 면접 보러 회의실 들어온 나를 왜이리 쪼그라들게 하는데... 부모님 말대로 죽어라 공부나 잘해서 명문대 졸업할 걸! 진짜 울고 싶다.'
자기 소개를 들으며 순간 기가 죽었다. 외국계 대기업 다니시던 분에, 사업체를 가진 우리나라 부유 학군의 명품 학교 출신에, 케이블 방송국 프로그램 방송 작가에, 학원 강사 등 이력들이 화려 했다. 11년을 주부로 지내고 경단녀인 나는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6시까지 면접 결과에 대해 문자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기 소개에, 면접관의 질문 답변에, 스크립터 읽기까지 화상 면접은 끝이 나고 면접관의 안내를 들은 뒤 화상 회의방에서 나왔다.
나는 긴장 됐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 합격해 놓은 상태지만 갑작스레 있을 환경 변화에, 2교대 근무까지 하게 되면 아들 케어에 너무 부담이 많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쿠팡 재택 근무 상담직이 나에겐 너무나도 간절 했다.
저녁 6시가 지났다. 나는 함께 참여 했던 면접자들의 스팩에 기가 죽어 있었는데 역시나 하고 풀이 죽었다. 그런데 6시 30분이 좀 지난 시간에 문자 메시지가 전송돼 왔다. 쿠팡 교육 면접에 합격 했다는 통보였다. 너무 기뻤다. 아들 케어 문제까지 큰 부담 없이 해결된 거 같아 마음이 다 안심이 되고 너무 감사했다.
월요일부터 교육이었다. 면접관이 교육 중에도 자기 회사 업무와 너무 안 맞다 싶으면 입사 합격 처리는 취소될 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면접에 합격 해서 교육 받으러 오라는 문자 메시지 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지인들도 축하해 주었다. 친구외 남동생도 잘 됐다고, 이제 하나씩 해결해 가면 된다고 축하하고 응원해 주었다.
'작년에도 인바웃 상담 교육 받아 봤잖아. 무난히 잘 받고 합격 했었잖아 이번에도 할 수 있어. 그래, 교육 기간 3~4일 성실히, 이해력 있게 잘 듣고 잘 버티면 돼. 할 수 있다.'
난 나를 세뇌 시키기 시작 했다.
쿠팡 재택 상담 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어쩌다 한 시간 정도 추가 근무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에 3일 정도는 주말에도 일해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면접 합격해 교육 받는 첫 날만 쿠팡에서 알려 준 사무실로 가면 된다. 업무 진행할 노트북과 시스템 받아와야 하는 이유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쿠팡의 직원이 되었다. 재택 근무라는, 초등 아들을 가진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한 조건이었다. 4대 보험도 되고, 명절 혜택도 있고, 매달 안정적인 월급이 있는 대기업 회사의 일원이 된 것에 감사 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 보다 한 달 페이도 더 많았다.
11년만이다. 결혼과 임신과 출산, 육아로 집 안에만 있다가 정식으로 월급을 받고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회의 일원이 된 게 말이다. 요 근래 1년 동안 취직 하겠다고 여기저기 경험한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 정식으로, 오래 일할 생각으로 취직이 결정된 것이 11년 만이다.
교육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즐겁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일할 생각이다. 이제 내 힘으로 나와 내 아들의 경제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니 열심히 새롭게 출발해 볼 생각이다
이 나이에 쿠팡이라는 대기업에 재택 근무 상담 직원으로서 애로 사항이나 힘든 점이 아예 없을 거란 환상은 없다. 어떤 일이든 애로 사항이나 힘든 점도 있을 수 있다. 그 정도는 이제 현실적으로 감안하며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방송작가 했던 깡과 출산의 고통을 겪은 애 엄마로서 진상 고객 맞닥뜨렸다고 눈물 흘릴 만큼 여리지도 않다.낙엽 주워 책갈피에 끼우며 감성에 젖어 눈물 흘리던 10대가 아니다.
쿠팡 재택 상담 근무직이 나와 아들의 새로운 출발에 기회를 안겨 줬다는 현실에 힘이 나는 아줌마다.
나는 이제 쿠팡에서 일하게 된 재택 근무 상담원이다.
'아! 아닌가?교육 입문 3일 동안 최종 심판대에 오른 숨만 위는 물고기가 된 건가? 아직 낚시 바늘을 입에 물지 않은 물고기에 불과한 걸까? 그래도 입사의 문턱까지 헤엄쳐 온 건 맞잖아!'
한우리 독서 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온라인 공부도 시작 했다. 작가 일만 생각하고 이제껏 살다가 경단녀로서 다시 이력서를 전송해 보며 자격증 정도는 하나라도 따 놨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뭔가 사회적 일을 할 수 있도록 인정 받는 자격증을 따 놓으려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편하게,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한우리 독서 지도사 자격증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 브런치 공간 안에서의 글쓰기도 짬짬이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