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Nov 13. 2024

그림자 03

기름칠을 못한 로봇이 삐거덕거리며 힘들게 몸을 돌리듯 나는 돌아봤다




다음 날,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곱 시에 일어나 삶은 달걀 두 개와 땅콩잼 바른 식빵 두 조각으로 오전의 허기를 달랬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간단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대문을 나섰다.

나는 복도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같은 동 사람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되도록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척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고 서 있거나, 팔짱을 낀 채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거나 했다. 

우편함엔 흰 봉투가 꽂혀 있었다. 웬일로 오전 일찍 꽂혀 있었다. 그 봉투 안에는 오만 원짜리 새 지폐 한 장이 어김없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우편함 앞에 서서 흰 봉투를 여기저기 살폈다. 내 이름 석 자 빼고는 다른 글씨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 봉투를 들고 서 있다가 오만 원권 지폐를 그대로 봉투 안에 집어넣고 우편함에 다시 꽂아 놨다. 우편함에 다시 꽂아 놓은 흰 봉투를 잠시 내려다보고 있다가 돌아섰다.    



 

나는 그날,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의 일과를 보냈다. 그리고 밤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나만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올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우편함을 쳐다봤다. 우편함에는 흰 봉투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누가 건드린 흔적도 없어 보였다. 오전에 내가 꽂아 놓은 그 자리, 그 각도 그대로 꽂혀 있었다.

나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집으로 올라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집 안에 누군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닫힌 대문 앞, 현관에 서서 신발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집 안을 들여다봤다. 

그 누구도 함께 살지 않는 곳이다. 나 혼자 사는 내 집에서 왜 다른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걸까. 

그 누구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누구의 신발이나 옷깃 같은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쳐다보는 내 눈에 계속 주변을 의식하는 불편함이 담겨 있다. 나는 잠시 욕실 거울을 마주 보며 서 있다가 천천히 옷을 벗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했다. 다른 때와 달리 벗은 몸 앞에 수건을 길게 대고 수검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 팔로 움켜잡았다. 욕실 옆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잠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옷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한 손에 젖은 수건을 챙겨 쥐고 천천히 집 안을 살피며 걸어서 거실 겸 큰 방으로 들어갔다.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로 다가가 수건을 세탁기 안에 던져 넣고 잠시 서 있었다. 바깥의 어두움만 가득 들어차 있는 베란다 한쪽에 아파트 단지 샛길 옆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가로등 불빛 한 줄기가 비쳐 들어오고 있다. 처음 보았다. 낮에는 하늘에 떠 있는 햇빛으로 인해 밝은 빛이, 밤에는 낮의 모든 것들이 져 버린 어두움만 가득 들어차 오는지 알았다. 어느 쪽에 떠 있는지 집 안 베란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달빛은 햇빛처럼 베란다를 비춰 준 적이 없다. 그런데 밤의 어두움이 들어찬 베란다 한 켠에 나무들 사이의 가로등 불빛 한 줄기가 비춰 들고 있었다. 나는 그 가로등 빛줄기를 이제야 본 것일까.

나는 그 가로등 빛줄기를 쳐다보고 있다가 퍼뜩 내가 누군가가 집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걸 깨달았다. 나는 돌아섰다. 아직 전등을 켜지 않은 거실 겸 큰 방을 쳐다보고 있다가 빠르게 전등불 스위치를 때리듯이 내리쳤다. 

거실 겸 큰 방에 전등이 켜졌다. 나는 아직도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아닌 누군가가 들어와 있는 느낌은 드는데 집 안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아무 일 없는 듯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다. 조금이라고 건드려진, 단 0.5cm라도 흐트러 놓은 곳 하나 없다.

나의 괜한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대문 디지털 도어락도 멀쩡했다. 누군가 들어올 리 없다. 동네 사람들하고 인사조차 안 하고 산다. 동창들이나 친구들하고도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산 지 몇 년째다. 친척들은 내가 부모님 집에 산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절대 찾아올 리 없다. 나를 찾아 올 사람은 없다. 

일을 하는 곳에서도 나는 말없이 일만 하는 벽이었다. 동료들은 나를 감정도 없고, 숨소리만 조용히 들락날락할 듯 존재감만 나타내는, 길고 딱딱한 벽돌 같다고 했다. 말 한마디 없이 일만 하는 벽 같다고만 했다. 분명히 눈앞을 지나다니는데 터치할 필요도 없고, 마주 쳐다볼 필요도 없는 길게 틈틈이 쌓아 올린 벽돌로 부른다.

그런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 그런 나의 집 안에 발을 들일 사람은 없다. 나의 공간 안에서 나를 마주할 사람은 없다. 

나는 그게 편해서, 엄마 아빠가 남기고 간 그 고독이 좋아서 이 집을 팔지 않았다. 그 외로움이 차라리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해서 이사 가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혼자다. 이 집안에서는 철저하게 나 혼자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침대 옆 작은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화면이 밝아지는 걸 지켜보다 노트북 터치 패드를 살짝 눌렀다. 길고 하얀 직사각형이 화면 중앙에 떴다. 나는 커서를 그 직사각형 안에 클릭해 놓고 비밀번호를 쳤다.

나는 이때가 제일 좋았다. 노트북 화면 중앙의 직사각형 안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노트북 화면이 본격적으로 로그인 되는 이때가 너무 좋았다.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나 자신하고만 마주 보는 시간이라고 생각됐다. 세상의 그 어떤 시공간도 나를 방해할 수 없을 거라는 나만의 충만함이 있었다.

나는 잠시 노트북 자판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내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누군가 있을 리 없다. 나는 편하게 나의 마지막 하루의 두 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러고 잠들면 된다.     


“넌 정말 내가 안 보여?“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노트북 자판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멈칫했다. 가늘고 조그맣게 작은 울림을 만든 목소리였다. 아니다 내가 잘못 들었을 거다.     


”우편함에 있는 흰 봉투 오늘은 왜 안 빼 갔어? 내가 너만을 위해 일부러 준비한 빳빳한 새 지폐인 오만 원 짜리를 들고 들어 왔어야지. 너 나를 느꼈잖아, 너 내 목소리 들리잖아. 그런데 왜 외면해?“     


아니다. 또 들린다. 잘못 들은 게 아닌 거 같다. 나는 뒤 목이 빳빳하게 펴지며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등줄기에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딱 한 줄기가 얇은 선을 긋듯 싸하게 스치는 거 같았다. 

나는 서서히, 기름칠을 오래도록 못한 로봇이 삐거덕거리며 힘들게 몸을 돌리듯 그렇게 나는 뒤를 돌아봤다.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 그림자 독자 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