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Oct 22. 2024

그림자 독자 01

매일 오만원 짜리 새 지폐 한장 짜리가 든 흰 봉투가 우편함에 꽂혀 있다



깊은 우물이 있다. 누가 팠는지 모른다. 누군가 삽을 들고 그곳을 파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땅이 움푹하게 파여 지고, 파여 지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우물이 생겼다. 물이 어디에서 흘러 들어와 우물이 생긴 건지 알 수가 없다. 미스터리다.     



나의 일상도 미스터리다.

언젠가부터 우편함에 하루에 오만 원 씩 넣어져 있는 봉투가 꽂혀 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없다. 받는 사람에 내 이름 석 자만 적혀 있다. 벌써 한 달이다. 그 한 달은 삼십 일이었다. 삼십 일 내내 매일 오만 원씩 큰 돼지 저금통 안에 모아 놔 보니 총 백오십 만원이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오전 일곱 시에 일어나 간단한 채비를 하고, 삶은 달걀 두 개와 땅콩잼을 바른 식빵 두 조각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여덟 시부터는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계약직 직원으로서의 일을 시작한다. 점심밥은 마트 안 직원 식당에서 먹는다. 다섯 시에 계약 직원으로서의 일을 끝내면 길 건너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로 들어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다. 그곳에서 때우는 시간은 사십 분 정도면 된다.

여섯 시부터는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 편의점에서 그날그날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하는 것들로 간단하게 저녁의 끼니를 때운다.

밤 열두 시가 되어야만 그 편의점에서 나와 길 건너에 있는 소형 단지 아파트로 걸어 들어간다. 그 아파트에는 십 오평 짜리 나의 집이 있다. 내가 스무 살 때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 준 재산이다.

나는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양치하고 샤워를 한다. 욕실 옆 작은 방에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거실 겸 큰 방으로 걸어 들어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책상 앞에 앉는다. 그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켜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남들에게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고 혼자서만 열심히 쓰고 있는 에세이와 소설을 매일 두 시간씩 저장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다섯 시간 정도의 취침에 빠져든다. 나는 잠을 깊이 잔다. 침대에 눕자마자 수면제라도 과다 복용한 사람처럼 곯아 떨어진다.


부모님은 내가 스무 살 때 자동차 사고로 한 날 한 시에 돌아가셨다. 약속이라도 한 듯 외동딸인 나만 혼자 남겨 두고 눈을 감아 버렸다. 심장의 뜀박질을 멈춰 버렸다.

나만 남겨 두고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린 게 미안했는지 십오 평짜리 이 집을 내게 남겨 주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좁다 싶었는데, 혼자서 그 집을 차지하고 나니 좁지는 않았다. 혼자서 불편함 없이 살만하다.

친척들과는 일찌감치 얼굴을 보고 살지 않았다. 양쪽 집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자마자 부모님은 재산 문제로 형제들에게 버려졌다. 부모님의 형제들은 제일 욕심 없이 주어지는 대로만 살아 가는 부모님만 장님 만들었다. 미리 재산들을 나누어 챙긴 거다. 그 재산 분배에서 부모님만 철저하게 배제됐다.

혼자 남은 후 연애를 두세 번 해 봤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나의 건조한 성향과 일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만 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누군가가 우편함에 내 이름을 적어 놓은 봉투를 꽂아 놓는다. 그 봉투에는 매일 오만 원씩 넣어져 있다. 매일 빳빳하고 색이 선명한 오만 원짜리 새 지폐로 한 장이 들어 있다. 누구일지 전혀 짐작조차 안 간다.

나는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내 방 안에 딱 한 개 놓여 진 큰 돼지 저금통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어느새 삼십 일이 꽉 채워진 날 밤이다.

삼십일 만에 그 큰 돼지 저금통 안이 꽉 찼다. 다 끄집어내 보니 백오십 만원이다.

나는 그 백오십 만원을 방바닥에 늘어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나는 이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노트북을 켜지 않았다. 두 시간의 저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 대형마트에서의 계약직 일을 마치고 나서 건너편 대형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로 가지 않았다. 은행으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앉아 기다렸다.

내 순서가 돼 번호표를 들고 창구 앞에 앉았다. 도장과 신분증을 내밀었다. 한 다발로 묶어 온, 오만 원짜리 삼십 장을 내밀었다. 새로 통장을 개설했다. 새로 개설한 그 통장에는 그 오만 원짜리만을 입금해 두기로 했다.

그날 아침에도 우편함에는 어김없이 내 이름 석자가 적힌 흰 봉투가 꽂혀 있었다. 그 흰 봉투 안에는 어김없이 뻣뻣하고 색상이 선명한 오만 원짜리 새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다른 날과는 한 가지가 달랐다. 내 이름 석자가 적힌 곳 옆에 한 줄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어제는 왜 저장 안 했어요?’     


나는 그 한 줄의 글씨를 한 참을 쳐다 봤다.

그 오만 원짜리가 든 흰 봉투는 밤에 집으로 돌아가 이제는 텅 비어버린 큰 돼지 저금통에 넣어 두려 한다.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들이밀어 넣었다.

토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