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도 와 줘요. 누나가 아무것도 하지 말랬는데, 이건 아니잖아!
“뭘 봐. 너희들은 나이 안 먹냐?”
건식은 두 손에 든 묵직한 상자를 두 팔에 힘을 주어 받쳐 든다. 옆으로 지나가며 건식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도, 말없이 조심스레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옆에 서 있는 서형사가 쳐다보지 말라는 듯 건식 모르게 눈짓으로 눈치를 준다. 이제 막 옆을 지나가던 경관이 인사를 한다.
“어, 어. 그래. 수고.”
서형사는 웃으며 인사를 해 주고, 건식이 들고 있는 묵직한 상자 안을 곁눈질로 재빠르게 들여다본다. 형사 명찰, 서류철, 파일철, 모나미 검은 볼펜과 검은 볼펜이 든 직사각형의 긴 곽들, 오래돼 보이는 건식의 영문 이니셜과 가족의 캐리커쳐가 사이좋게 새겨져 있는 텀블러, 건우가 휠체어에 타 있는 가족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 다이어리 수첩 3개가 들여다보인다.
서형사의 눈에 들어오는, 겉표지 끝부분이 자크로 잠겨져 있는 다이어리 수첩 3개, 저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건식이 수첩, 그 수첩 갖고 와. 성격 더러워서 승진은 못했어도 걔가 현장에서는 그냥 베터랑이 아냐. 백화점 등급으로 따지면 MVG 중에서도 최고 MVG였어. 서형사도 알잖아?”
건식이 들고 있는 박스 안 수첩 3개를 곁눈질하는 서형사의 귓가에 유서장의 요청이 거슬리도록 맴돈다.
“넌 왜 자꾸 따라오냐?”
건식은 앞에 주차장이 내다보이는 경찰서 통유리 출입문을 발로 휙 밀어젖혔다. 발로 거세게 밀어붙여서 바깥쪽으로 휙 열어젖혔던 출입문이 순식간에 다시 안쪽으로 밀리며 서형사를 들이 받을뻔 했다.
“저보고 문을 열어 달래지, 형님도 참.”
건식이 계단 중간에 멈춰 서서 서형사를 돌아본다. 서형사 급브레이크 걸린 사람처럼 살짝 휘청이는가 싶다가 건식보다 한 계단 위에 중심을 잡고 마주 선다.
“넌 왜 따라오냐고?”
서형사는 일부러 넉살스럽게 웃으며 건식이 들고 있는 상자를 빼앗듯이 받아 든다.
“제가 들어드린다니까요. 당연히 배웅해 드려야죠.”
건식은 서형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뒤 목 잡는 시늉을 한다. 뭔가 마땅치 않다는 듯 비야낭거리는 말투다.
“이제는 네가 내 위에 서 있다?”
서형사는 재빨리 건식이 서 있는 바로 아래 계단으로 내려간다.
“아고, 형님이 언제나 제 위에 계시죠. 제가 어찌 형님 위에 서겠습니까.”
서형사는 애써 넉살 좋게 웃어 보인다. 건식은 서형사의 넉살 좋은 웃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식은 서장실 쪽 창문을 노려보듯 올려다본다. 서장실 안 창문의 블라인드가 살짝 움직여지는 걸 놓치지 않는다.
건식의 시선이 서장실 창문에서 바로 서형사의 얼굴로 간다. 서형사는 여전히 넉살 좋아 보이게 웃고 있다. 건식은 서형사가 들고 있는 박스에서 보란 듯 다이어리 수첩 3개를 집어 들고 흔들어 보이고는 뒤돌아선다.
서형사는 서장실 쪽 창문을 재빨리, 슬며시 올려다보고는 건식의 차 쪽으로 걸어간다.
운전석에 올라타 다이어리 수첩 3개를 조수석에 던져 놓듯 내려놓는 건식, 차창을 연다. 상자를 들고 트렁크 쪽으로 가는 서형사를 쳐다보며 트럼크를 열어 준다. 룸미러로 열린 트렁크 안에 상자를 싣는 서형사를 본다.
건식은 서형사가 트렁크에 박스를 싣고 트렁크 문을 닫자마자 차를 출발시킨다. 백미러로 차 뒤에 서서 건식의 차를 쳐다보고 있는 서형사를 힐끔 쳐다본다.
건식의 운전석 위에 붙여져 있는 건우가 휠체어에 타 있는 가족사진, 건영과 하율이 밝게 웃으며 다정한 모습의 사진이 보인다.
휠체어를 잡은 건우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듯도 하다. 대형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건우의 두 눈에 두려움과 분노가 가득하다.
“절대 나오지 마. 절대 움직이지 마. 아무것도 하면 안 돼, 절대 안 돼.”
건우는 힘이 들어간 두 손으로 휠체어를 앞으로 민다. 건영의 당부가 귓속에서 너무 단호하게 울려 퍼지고 있어 멈칫했다,
하율이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괴한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건영의 모습이 조금 힘겨워 보인다.
건우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쳐다봤다. 부르르 떨리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집으로 쭉 뻗었다. 손을 쭉 뻗다가 엉덩이가 들썩이더니 건우는 휠체어에서 이탈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절대로.”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힘없이 주저앉는 건우는 두 손으로 책상 끝을 부여잡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누나, 누나.”
건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절규로 바뀐다. 책상 끝을 부여잡고 있는 두 손등의 혈관 색상이 선명하게 튀어나올 듯 힘이 들어간다.
“하율이 살려야지 119, 119, 제발 누나.”
건우는 한 손으로 책상 위를 힘겹게 더듬으며 핸드폰을 손에 쥔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바닥에 내려놓는다. 책상 끝을 부여잡고 있던 다른 한 손도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들썩이는 두 어깨도, 분노로 이마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 얼굴도 바닥 쪽으로 숙여진다.
핸드폰을 꽉 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건우의 울음이 거세진다.
“누나, 하율이, 제발 119라도.”
건우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괴성을 지른다.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힘없이 바닥에 꿇어진 두 다리를 두 손으로 원망스럽다는 듯 때린다.
몸부림치던 건우는 콧물과 눈물범벅 된 얼굴, 충혈된 두 눈으로 손에 꽉 쥐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던질 듯 이를 꽉 깨문다.
건우는 충혈된 두 눈으로 핸드폰을 노려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잠금 모드를 푼다. 건우는 이를 꽉 깨물고 건식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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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 소설 Again에만 집중하며, 숏폼 드라마 대본과 이 소설 Again만 써 올립니다. 일상의 상황상 연재가 늦어질 때는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