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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06. 2023

서서히 무너져 내려간 모래성

시작점을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5월 즈음, 우리 반에 배치된 사회복무요원이 나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면서 교장실에 여러 번, 사실 매일같이 불려 올라간 적이 있다. 근무지를 바꾸고자 병무청에도 나와 학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였고, 그때부터 ‘나 때문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3월이었을까? 공동담임으로 같이 배정된 팀의 선생님은 경력도 다양하고 수업 스킬도 좋은 베테랑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저경력과 함께 대집단 수업을 많이 이끌어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뭔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담임으로서 성인 지원인력들을 효율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모든 아이에게 그래도 한 번씩 내가 개입해줘야 하겠다는 마음.


사실 이 모든 게 부담이었다. 복귀 후 처음 유아반을 맡으며 놀이 중심 교육을 교실 안에서도 실현해내고 싶었고, 아이들의 성인 의존도를 낮추는 것들 지금 해내야 하는 것들, 1년은 너무 짧고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해서 내 몸은 하나고 집에는 아이가 있고, 욕심에 비해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서 결과의 퀄리티는 내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허둥지둥 대며 1학기를 보내고 7월, 1정 연수 들어가기 직전에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왔고 제대로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연수에 들어가야 했다. 연수에 있는 동안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홀로 쓰는 빈 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꼭 그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내가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인가 싶어서.


2학기에 들어서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리고 문 앞에서 얼마나 서성였는지 모른다. 내가 무슨 큰 머리채 잡히는 진상 학부모를 만난 것도 아니고, 엄청난 교권 침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소박한 이벤트로 상담 같은 걸 받아도 되는지.


검사 결과는 심했지만 1~2주에 한 번씩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생각들은 점점 편안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지난날들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운이 없었더라고 생각할 수는 있게 되었었다.


그리고 12월.


모래사장에서 모래 빼기 하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달리는 차만 보면 조금만 앞으로 가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이 들까 봐 내 차를 운전하지도 못한다.


놀이터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무섭고 두려웠다. 내 핸드폰에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추천사진으로 뜨거나 스크롤을 올리다가 마주치면 무섭고 두렵다. 이런 사람이 교사를 해도 되나? 내가 아이들의 1년을 마구 망쳤을까? 나는 교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내 교육철학이 정말 잘 못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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