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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by 은규 Feb 02. 2025

경력이 얼만데 아직도 이 모양이냐.

김에 밥을 골고루 펴고 재료를  넣어  아주 성의 있게 오므린 다음에 잘 감싸서 쿡쿡 누르면서 말아준다.

완성은 그럴듯한데 칼에 참기름을 바르고 한 입 크기로 자르자 김밥은 맥을 못 추고 풀어져 버린다.

밥과 밥이 맞잡아 속을 꽉 가두고 있어야 하는데 손을 놓친 꼴이다.

김밥을 도르르 말 때 너의  끝이 어디뇨, 눈으로 볼  수 없으니  펼친 밥의  시작과 끝이  제대로 맞물렸는지 알 수가 없다.

김밥의 단면은  밥이  도넛 형태  있어야 하는데 틈이 벌어졌다. 밥이 끊어진 곳은  김이 얇게 버티고  있다. 열기를 먹은 김은 습해져서 우글거려 쉽게 찢어졌다.


다시 김밥 경력을 얘기해 보자.

아이들 자라면서 소풍 갈 때는 기본이고  고등학생일 때 다섯 달 정도 매일 아침 김밥을 쌌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을 해야 했고   두 아이가 간단하게 먹고 등교할  있게 매일 여섯 줄을 쌌다. 반복학습은 실력향상과 이어져야 되지 않는가?


재료 준비는 부담스럽다.

당근을 자른다. 도구의 최소한 사용자로서 채칼은 필요치 않다. 칼로 당근 2개를 채 썬다.  우엉도 채 썬다. 시판용 조림 우엉보다는 집에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시금치는 삶아서 무치고 오이는 소금 설탕  식초에 초절임 한다. 참치는 기름을 꾹 짜고 마요네즈에 버무린다. 소고기 다짐육을 볶는다.

계란말이를 해서 두툼하게 자른다. 어묵도 간장에 조리고 햄은 프라이팬에 익힌다.

 참치, 햄, 쇠고기 세 종류로 가열하게 준비한다.

김밥은 먹기에 편하나 많은 공이 들어간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아들이 부대에 복귀한다.

점심  전에 출발하는 게 마음에 쓰였다.

운전하다 보면 대충 끼니를 때울 것이고 부대숙소에 복귀했을 때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지레짐작한다.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 

김밥 싸 줄까?

김밥이 질릴 법도 한데 물어보면 좋다고 한다.

 김밥이 다 풀어져 버렸다.


문제가 뭔가.  왜 잘 여며지지 않는 거냐.

김을 째려본다. 작다. 사각의 면적이 예전보다 작아진 것 같다. 그렇다면 김의 크기에 맞춰 내용물을  넣으면 되는데 맛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 보다 크다.  많이 넣으면 맛이 날거라 착각하며 모든 재료를 큼직하게 넣는다

김이 놀라서 입 벌릴만한다.

이걸 사랑이라고 붙인다.

옆구리 터져 흩어진 김밥이 넘치는 의 마음이라고.

김밥의 행색에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이십여 년 전 TV 아침 프로그램에서, 홀로 키운 아들이 결혼 후 엄마를 피하고 연락을 안 한다는 사연을  보았다. 아들이 자취할 때 반찬 챙겨주며 정성을 쏟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얼굴 모르는 아들은 세상 불효자가 되었고 패널들은 한 목소리로 사연의 주인공 편을 들어주었다.

그걸 보면서 엄마가 속상하겠다 싶으면서도 아들의 입장이  궁금했다.  그러는 이유는 뭘까. 엄마의 기대가 집착으로 느껴져 부담스러웠나. 가족 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적당한 거리를 생각했다.


지금 김밥을 말면서 마음을 쏟는다. 김밥이 풀어지도록 속을 듬뿍 넣다가 결국 재료가 밖으로 튀어나와 흐른다.  과해서 형태가 망가졌다.

어떤 마음은 마음 안에서 머물러야 한다. 

과잉김밥처럼  터져서 형태로 닿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오늘의 수고로움에 비해  결과물은 턱없이 적다.

 열 줄에서 세 줄 건졌다.

사랑이라도 잘 싸진 정도가 필요일 것이다.

내세우지 않을 만큼이.




'찬이가 옥탑방 쓰레기통에 아무렇거나 버린 컵라면 박스나 맥주캔이나 휴지 같은 것을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마다 깨끗이 치웠다. 옥탑방 바닥에 광이 나도록 걸레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릴 적 찬이가 지린 오줌을 닦던 그 걸레일지도 몰랐다. 찬이가 요청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찬이는 어지르고 할아버지는 치우는 패턴이 1년쯤 반복되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걸레를 내팽개치더니 찬이를 당신 집에서 내쫓았다.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사랑력에 셀프로 나가떨어질 때가 있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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