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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Feb 03. 2024

버리기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물건 '내기'라고 해야 하나, 물건 '따먹기'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걸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 이야기이긴 한데 주로 했던 것은 지우개 따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같은 것이었다. 딱지도 문방구에서 사는 둥근 게 있고, 집에서 신문지나 달력, 박스로 만드는 네모난 게 있다. 친구끼리 깜보(지금 보니 정확한 용어는 깐부였음, 동맹)를 맺고 각자의 집에 지우개, 딱지, 구슬을 한 아름씩 비축했다. 깜보끼리의 공유 재산이었는데 친구가 잃어도 탓하거나 그러진 않았고, 다시 따 낼 궁리를 더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정말 친구끼리는 순수하고 공유경제가 가능했고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하루가 짧게 친구들과 놀던 시절은 금세 지나가고, 나이가 들자 각자의 생활 패턴이 자리 잡게 된다. 점차 친구들끼리 어울리기보다는 집에서 PC로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통 장난감들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관심을 잃게 된다. 그때였을까. 내 성향을 파악하게 된 게. 나는 참으로 소유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다. 친구들은 관심이 없어진 딱지, 구슬, 지우개를 버리거나 막 사용하였지만 나는 나와 같이 놀았던 그 장난감들을 함부로 외면할 수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구슬, 지우개는 항상 내 서랍에 있었고, 지우개가 서랍에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따낸 지우개라는 훈장과 추억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항상 문방구에서 새로운 지우개를 사서 그것을 사용했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은 사람에게도 적용됐다. 나랑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는 계속해서 꾸준히 연락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나 전화를 돌리고, 명절,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처럼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그들에게 안부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번에 일괄 문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며칠이 걸리더라도 개개인에게 연락을 별도로 했다. 친구들을 포함한 지인들도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래서 내 연락처에는 한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아, 전화번호도 통신사도 20년 동안 그대로 사용 중이다. 010번호 등장했을 때도 끝까지 011번호를 유지하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바꾸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애착이었다.

애착. 맞다. 애착이었다. 애착은 사랑하면서도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정을 넘어서 부정적인 의미까지 포함된다. 내가 내 소유물에 대해 버리지 못하는 것이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 나는 그것을 시행할 수 없어 스스로 당혹스러웠다. 버리려고 하면 혹시 사용할 수 있을까 봐, 예전에 나와 어떤 추억이 있는 물건인데라는 생각이 너무 깊이 든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면 그래도 박스에 넣어 깊숙이 두면 되는데 사람은 특히 힘들었다. 물건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프라고 생각한 친구, 사랑했던 애인 모두 처음과 같지 않은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계속 나와 함께 해야 하는데 결국 인연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버리는 것도 용기다. 예전에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을 보면 매정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정이 없으니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고 치부했다. 그런데 제한된 방에 계속해서 물건을 쌓아둘 수 없듯이 내 마음의 방에 끊임없이 사람을 축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는 가능했다.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고 사회에 나갈수록 그 공간은 부족해졌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내 마음의 방에 있으니 오히려 뒤죽박죽 정신이 없어졌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비중이 커지니 자연스레 그 방이 더 좁아졌다. 그래서 놓아도 되는 사람은 놓아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사랑이라도 말이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 인연을 맺으면 애착을 갖게 되는 나로서, 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과 어떤 이유로든 평생을 헤어져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야 했고,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그래서 잊고 빨리 그 기억을 버리기로 했다. 처음에 당근에 물건을 팔았을 때가 생각난다. 팔아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팔고 나니 집 안이 더 넓어 보이고 나중에는 내가 무슨 물건을 팔았는지 생각도 안 났다. 그만큼 나에게는 효용이 없던 물건이었던 것이다. 이미 내가 사용할 게 아닌데, 나와 관련이 없는데 마음에 품고 있는 건 스스로 마음의 짐에 얽매이는 것이다. 버리자! 잘 버리는 것이 진짜 용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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