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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r 16. 2024

쓴소리

과업에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임무가 있기 마련이다. 회사 프로젝트든, 조별 과제든 심지어 보드게임 같은 것을 할 때도 그렇다. 예를 들어 부루마블을 한다 했을 때 누군가는 은행장을 해줘야 게임이 돌아간다. 은행장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면 진행이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업무 분장이라는 것을 해 두었지만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많이 존재하고 이를 누군가는 처리해 주어야 한다. 굉장히 애매한 부분이다. 2인 1조로 출장을 함께 나가야 할 때 본인 일이 아니어서 귀찮지만 나서주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식사를 가야 할 때는 누군가 먼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어보고 제안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한다. 자료를 수합하는 일이 있을 때는 대표로 수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극단적이지만 고깃 집에 가서 누군가는 고기를 자른다.

혹자는 얘기한다. 그냥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직장 내에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 동료가 있다. 내릴 때도 그냥 혼자 내리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마지막에 내리는 경우가 없다. 그거 안 한다고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은 맞다. 선배냐 후배냐도 아니고, 나이가 많냐 안 맞냐가 아니다. 누구나 누르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이런 것까지 업무 분장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라고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이보다 심한 경우는 애초에 일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을 번번이 놓치고 그 피해를 다른 팀원들이 메워야 할 때가 있다. 심지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도 봤다. 이건 위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업무적 피해가 아니라 업무적 고충이 고스란히 동료들에게 퍼지기 때문이다. 사람 심리상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자기 일이면 그냥 한숨 쉬고라도 '내 팔자려니'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싸 놓은 것을 치우라고 하면 전혀 기분이 다르다. 쉬운 업무고 심지어 전화만 받아도 되는 간단한 일이어도 얼렁뚱땅 나에게 넘어오면 호구(?) 잡힌 것 같아 화난다. 같은 월급을 받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역할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관리자의 최고 덕목은 논공행상을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관리자는 이제 실무를 내려놔도 된다. 물론 고참이 되어서도 새로운 업무를 습득하고 공부하려는 모습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관리자가 되어서도 그렇게만 행동하고 있다면 관리자 역할을 직무유기하는 것이고 실무자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 기준에는, 본인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정확하게 일을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관리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실무를 직접 하는 것보다는 직원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러한 직원들의 태도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알고 있으면서도 쓴소리를 못하는 상사와 선배가 늘어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윗사람이라고 호통치는 시절이 지난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눈치까지 보고 있다. 당연히 조직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말을 못 한다.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고, 굳이 나쁜 소리를 해서 꼰대라는 타이틀을 본인이 얻고 싶지는 않다. 이럴 경우 조직은 점차 와해될 수밖에 없다. 관리자가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동료보다 굳이 더 일을 나서서 할 필요가 없다.


정확한 성과 관리를 못하면 조직은 무기력해지고 희생정신이 없어진다. 옛 선조가 임진왜란 후에 전장에서 직접 싸워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선무공신이라며 18명을 지정했다. 반면에 자신을 피신시킨 사람들은 호성공신이라며 86명을 지정하고 그중 24명이 내시였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운 사람보다 자신의 옆에 머무른 사람을 더 높이 치켜세워준 것이다. 그것을 본 신하들과 백성들은 어땠을까? 굉장히 허탈해했을 것이다. 이후 병자호란 때 의병의 활약이 미미해지는데 그 영향이 임진왜란 때 선조의 태도를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관리자가 많아져야 한다. 꼭 관리자만이 아니라 아래에서의 지적도 괜찮다. 이는 서로 화를 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잘하고 못 한 것을 정확히 집어내자는 것이다. 나도 학교 다닐 때 학회에서 독설가라는 의롭지 않은 별칭을 가진 학회장이었다. 내가 좋은 학회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때 쓴소리를 했어도 지금 주변 사람들과 좋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후배들과도 연락을 잘한다. 자기 옷에 맞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준 것이다.

조직 내에 오히려 쓴소리같이 하기 힘든 행동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쓴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잃는 일을 만들면 안 되지 않을까. 좋은 게 좋은 건만은 아니다. 쓴소리, 할 때는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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