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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r 30. 2024

소확행

작년에 여행을 다녀왔다. 10일 정도 휴가를 낼 수 있어서 어디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한 번도 안 가 본 뉴욕이 제일 눈에 띄었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뉴욕이란 도시가 참 빡셌다. 금전적, 시간적 모두 여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적인 물가는 역시나였고, 10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이서 2~3일을 꼬박 비행기에서 보내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동남아 쪽으로 선회했다. 3박 4일씩 3개국을 돌다왔다. 비행기 시간도 부담 없었고, 숙박비, 밥값도 원래 계획했던 것의 절반 이하 수준이어서 미국 한 나라를 다녀온 것보다는 가성비가 훨씬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소확행을 한 것일까?

요새 치킨이 참 비싸다. 댓글에는 비싸면 안 먹는다는 이야기뿐이다. 교촌치킨의 매출액이 2위로 떨어지자 그럴 줄 알았다, 고소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교촌치킨뿐만이 아니라 치킨 업계가 전반적으로 인건비 상승 등으로 가격이 올랐다. 문제는 내가 치킨 마니아라는 것이다. 매주 한 번씩 먹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브랜드도 그렇게 가리지 않는다. 전통의 후반양반(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날 쿠폰 주고 할인하는 치킨을 주문한다. 2만 원 넘는데 같은 제품을 30%씩이나 싸게 먹으면 참 이득인 느낌이다. 그럼 이건 소확행일까?


이번 에세이의 제목은 소확행이다.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얘기해 보면 내가 위에 경험한 것들을 보통 소확행이라고 하는 것 같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해외여행이 소소한 것인지, 수많은 음식 중에 치킨 정도 먹는 것이 소소한 것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에세이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을 말하면서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의 글을 읽자 내가 한 경험도 소확행이 맞는 거 같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무라카미가 언급했던 것과는, 각도로 따지면 1도 정도 틀어져 의미가 전달된 느낌이다.

뭐가 다른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소확행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검색해 봤다. 그러자 조금 차이점이 느껴졌다. 인터넷이 종이 일기장과는 다르게 남들에게 보이는 공간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소확행을 위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 즉, 무라카미는 의도하지 않는 행위 속에서 행복감이 왔다면 우린 행복감을 위해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행동을 했다. SNS상에 "이게 진정한 소확행이지~!" 라며 보이는 사진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즐기는 것 따위였다. '유명한 빵집에서 30분 줄을 서서 얻은 빵 하나'의 행복과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의 행복은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의 소확행을 다른 의미로 정의하기로 했다. '소비가 확실한 행복'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동적인 사회여서 일까. 정적인 상태에서의 행복이 아닌 무엇인가 쟁취하는 것에서 행복을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소확행도 본연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은 지금 소확행을 하고 계신가요? 나도 그 뜻을 다시금 되새겨 보려 한다. 성취가 아닌 내 삶에 있는 그대로에서 행복을 느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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