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으로 브런치 글을 작성하며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사실 기계와 친숙하지 않다. 기계가 가진 특유의 차가운 질감과 비릿한 쇠 냄새나 속히 말하는 기름 쩐내라든지 여하튼 그런 것들을 태생적으로 싫어했던 것 같다. 남자애들은 어릴 적에 대부분 레고나 로봇 같은 완구를 갖고 놀기를 좋아한다던데 본인은 코 찔찔 흘리던 시절에도 전혀 그랬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여간 싫어했던 것이 아니다. 나 같은 기계치를 위해 기술의 발전이 조금만 더뎠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태어나고 약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집집마다 컴퓨터 한 대씩 들여놓는 건 필수가 되었고, 불과 몇 년 뒤 어지간한 두메산골을 제외한 지역은 모두 인터넷 망으로 연결되었다. 이전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 집은 부모님 대신 일찍 취업 전선에 뛰어든 둘째 누나가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무려 12개월 할부로 컴퓨터를 사줬는데 그 고마움도 잠시, 철없는 나는 학교 숙제를 해야 되는데 인터넷이 안 된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동생의 투정에 할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누나는 인터넷을 달아주었다. 2001년, 밀레니엄을 맞이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인터넷이 생겼지만 얼마못가 나는 깨달았다. 나란 놈은 디지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가 아날로그에 가깝던 시절 나는 매일이 진정 즐거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엉덩이를 뒤덮는 무거운 책가방을 매고 쫄래쫄래 등교를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한 아이들 중에 어제 즐겁게 놀았던 친구들을 만나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재잘재잘 어제 못다 한 얘기를 나누고, 말해주기 전까진 서로가 알길 없는 각자의 집에서 일어난 사소한 에피소드(전날 저녁 메뉴가 뭐였는지와 같은)를 도란도란 꺼내고, 결석한 친구가 있으면 방과 후에 친한 녀석들과 함께 집을 찾아갈 것을 약속하는 그런 일상이었다. 혹시 친구 녀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을까 봐 전화기를 앞에 두고 몇 번씩이나 내가 누구인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걸었는지를 또박또박 설명하기 위한 연습을 부단히 했었더랬다. 며칠 전에 놀러 오라는 약속을 기억하여 사전 연락도 없이 당연히 집에 방문하고, 혹시나 놀러 올지 모르는 친구가 내가 집에 없다고 하면 실망하거나 엇갈릴까 봐 이제나저제나 이 녀석이 대체 언제 올까나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불확실함 속에 깃든 확신이 좋았다. 지나가듯 흘렸거나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구두로 전한 약속이었지만 그 말의 무게를 알고 결코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그때의 진중한 언약을, 나는 사랑했다.
지금도, 가끔은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