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이미 치앙마이가 그리웠다.
뭐가 그리 좋았냐고 묻는다면,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맛있는 과일, 이국적인 길거리 풍경, 한 블록만 가도 확 달라지는 거리의 분위기,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
그중에서 오늘은,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막상 글을 쓰려니, 가장 먼저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숙소 에이전트의 블로그 글을 보게 됐다. 이미 리스트에 넣어 두었던 콘도의 견적을 문의해 보았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가격은 공식 홈페이지의 거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문제라면, 개인이 운영하는 에이전트였고 송금도 개인 계좌로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숙소 예약 사기를 당했다는 글들을 읽은 터라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견적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사람 마음이 참 희한한 게, 원래 생각했던 공홈이나 에어비엔비 가격이 갑자기 엄청나게 비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개인 에이전트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에 치앙마이에 대한 영상도 있었고, 태국 여행 카페에서의 활동 내역도 꽤 많았다. 믿고 싶어 지니, 그런 정보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아무리 합리적인 견적이라 해도 몇백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고민은 깊어졌다. 남편은 조금 더 주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고,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나는 나의 직감을 믿었고, 과감하게(?) 송금 버튼을 눌렀다. 출국 4개월 전, 한 달 살기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숙소 문제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드디어 D-Day.
나의 직감은 통했고 에이전트는 치앙마이에 거주 중인, 아주 친절한 분이었다.
"제가 처음이고 혼자 결정해야 해서 많이 귀찮게 해 드렸죠. 항상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궁금하신 부분 있으시면 언제든 문의 주세요. 치앙마이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우리 콘도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의를 주었다.(물론 큰돈이 걸린 문제인 만큼, 최종 결정은 각자의 몫이다.)
두 번째로는, 콘도 이웃인 Stephen.
하교 후 아이들과 동네 마실을 나가기로 했는데, 우기답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생각보다 비는 세차게 내렸고,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 일단 나는 요가를 하러 헬스장에 갔다. 우리 숙소에 있는 헬스장은 통창으로 된 아주 콤팩트한 사이즈다. 그래서 안에 누가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구조다. 그날 그곳에서 핸드스탠드 중인 사람을 보았고 그렇게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우리는 주로 헬스장에서 마주쳤다. 둘 다 운동과 식단에 관심이 많아 우리의 대화는 예상보다 늘 길어졌다.
그날도 우리는 운동 이야기로 시작해 식단, 장보기, 근처 맛집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치앙마이의 코스트코 격인 창고형 대형마트, '마크로(Macro)'가 숙소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아주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은 훨씬 더 풍성해졌고, 메뉴로 다양해졌다. 요가 수련자인 그와 스트레칭을 하며 태국문화, 전 세계적 변화, 장기 여행과 외국에서의 삶,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시간들은 늘 유쾌했다. 스몰토크가 주는 확실한 기쁨이었다.
나와는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문화도,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누군가와 제3의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색다른 시각을 주고받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다.
세 번째는 정말 닮고 싶었던 퍼즐숍 사장님.
귀국 날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걸 한 가지씩 하기로 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 둘 다 바로 전날 다녀온 퍼즐숍을 뽑았다. 그리하여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퍼즐숍과 망고 카페가 되었다. 전 날은 동생네와 함께 방문하였고 조카를 포함한 아이들 셋은 이곳에서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이렇게나 퍼즐을 좋아할 줄이야. 아주 뿌듯했다.
올드타운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공간은, 퍼즐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애정하고 즐기는 사장님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다. 엄청나게 다채로운 퍼즐의 양과 종류에 놀랐고, 너무나도 청결하고 깨끗한 화장실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음악도 향도 주인을 닮은 듯 따스하고 친절하고 향기로웠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사장님의 너그러운 태도와 인자한 미소였다.
이렇게 편안하고 평온한 느낌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인류애가 상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이가 들수록 인상과 표정에 그 사람의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믿는데, 퍼즐숍 사장님의 표정은 그의 온화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성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이 매장은 특별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입장료나 대여료 대신 기부금을 내는 방식이었다. 사장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방식이었다.
어제 온 아이들을 기억해 주시고 마지막 날 와줘서 고맙다며 아이들에게 선물까지 주셨다.
"ขอบคุณมากค่ะ(컵쿤 막 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숙소 근처 식당의 사장님.
오며 가며 지나쳤던 음식점이었는데 남편이 온 3주 차에 처음 방문했다. 로컬 식당보다 메뉴도 신선했고 가격대도 있었는데 첫 입을 먹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남편은 귀국하는 날도 여기서 먹고 싶다 하여 똑같은 메뉴로 주문하였다. 여기서 시킨 커피까지 예술이었다. 계산하면서 정말 맛있다고 말씀드리니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며 음료수까지 서비스로 주셨다.(이 음료까지 맛있었음.)
"อร่อยมากมาก (아러이 막막)"
사장님, 진~~~ 짜 맛있어요!!!
그리고 옆집 할머니.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옆집에 거주하시는 한국인 할머니께서 과일 한 봉지를 건네셨다. 보기만 했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던 과일이었는데... 와! 예술이었다. 달콤하고 상큼하고 정말 맛있었다. 찾아보니 롱간이라는 과일로 영양소도 풍부하고 맛이 좋아 현지에서 인기가 정말 많은 과일이었다.
또 어느 날은 "맛은 보장 못해요"라며 카레를 한 솥 주셨다. 딱 저녁 먹을 시간이었고, 한 입 먹자마자 할머니의 내공이 전해졌다. 보기보다 훨씬 맛있었고, 아이들도 또 먹고 싶다고 할 만큼 잘 먹었다.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은 이런 순간들로 채워졌다.
이웃이 건네준 과일 한 봉지, 한 그릇의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과 따스한 마음.
나에게 치앙마이는 하늘과 맛, 그리고 사람으로 기억되는 도시가 되었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