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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 길게, 내 방식대로

매일글쓰기 15: 흥미와 끈기의 유효기간

by 여름

예전부터, 나는 어떤 것을 깊이 있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 점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편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흥미가 자주 바뀌었고, 시작했으나 끝이 없는 것이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온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것이 아니어서 포기가 쉬웠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은 아이돌에 흠뻑 빠져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그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했고, 라이벌 그룹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콘서트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사진과 앨범 그리고 다양한 굿즈까지 빠짐없이 수집해 나갔다.


나 역시 그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일부러 방송을 다 찾아보거나 앨범 속 노래를 모두 외거나 생일과 기타 정보들을 줄줄 읊지는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고, 나에게는 왜 저만한 열정이 없는 걸까 의아하기도 했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겨도 관심의 깊이는 얕다. 애쓰는 것이 힘들어서일까. 아니다. 마음이 그만큼이어서다. 정말로 좋아하면 어렵고 힘든 일도 즐겁게 하게 되지 않던가. 십 대일 때도, 사십 대가 된 지금도, 마음이 가는 만큼 얕고 좁게 움직인다.


곰곰 생각해 보니, 노력을 들여 좋아하는 게 그래도 하나 있다. 바로 기록이다. 귀찮고 수고스러워 건너뛰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후회하기 싫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여러 이유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것. 오늘의 글쓰기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동안 스스로를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 방금 알아차렸다. 소중한 것이라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의 글쓰기 덕분에 나에게도 조용한 열정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흥미와 끈기의 유효기간은 약하지만 끈질기게 연장되어가는 중이다. 실망과 아쉬움 대신 칭찬과 격려로, 얕은 깊이를 길게 늘여봐야겠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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