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 가려던 참이었다. 신발장에서 실내용 러닝화를 찾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매번 같은 자리에 두었는데 지금 없다는 것은 어제 운동을 하고 가져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디다 두고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참, 이래저래 자꾸 부글거린다.
아침 7시, 알람이 울려도 꿈쩍 않고 잠든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깨웠다. 큰소리로 깨우면 짜증을 낼 세라, 머리를 쓰다듬고 발가락을 조물거리며 나름 다정한 엄마로 변신했다. 꾸물거리다 식탁에 앉은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짜증을 시작한다.
오늘도 밥이야? 밥 먹기 싫어!
그럼 뭐 먹고 싶은데?
빵! 빵 사줘.
나는 조리퐁이랑 우유!
빵이야 그렇다 쳐도, 아침부터 과자랑 우유를 먹이는 건 아닌 것 같다. 빵을 외치는 둘째에게는 알겠다고 하고, 조리퐁을 외치는 첫째에게는 안 된다고 했다. 언니는 표정이 굳었다. 새초롬한 얼굴로, 왜 동생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거냐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큰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잠깐만, 핵심은 그게 아니잖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게 아니고, 빵이랑 과자의 차이라고. 설명해 봤자 귀에 들리는 것 같지도 않다. 첫째는 불퉁하니 큰방에서 시위를 하고, 둘째는 밥이 싫다고 아랫입술을 쭉 내민 채 허공만 쳐다본다.
오늘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미리 쌀을 씻어 불린 후 6시 20분이 되자 취사 버튼을 눌렀고,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을 먹이려는 생각에 피곤함도 잊었다. 엄마가 애쓴 것은 생각도 않고 저희끼리 화가 나서는 엄마에게 대드는 것을 보니, 나도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엄마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엄마가 만만해? 밥 해주는 거 감사한 줄은 모르고 어디서 짜증 내고 화내는 거야, 마구 쏘아대고 싶었다. 목구멍으로 밀려 올라오는 말을 꾸우우욱 눌렀다. 아이들이 어쨌건 간에, 아무 일 없는 듯 식탁에 앉아서 내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러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아, 다행이다. 역시 소리 안 지른 보람이 있다. 화를 냈으면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았을 테니. 영하로 내려간 오늘 같이 추운 날, 빈속으로 등교하면 얼마나 더 추울 거야, 괜히 마음이 놓였다.
화가 좀 풀렸나 싶어, 스윽 첫째에게 다가갔다.
울이는 엄마에게 서운한 게 많지?
응!
이런, 아니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쳇, 나도 서운한 거 많거든. 그래도 열 살과 같이 아웅다웅할 수는 없으니 다시 한번 꾹 참는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어서, 아이 머리를 묶어주면서 조곤조곤 말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니까 화를 내거나 '안 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다행히,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들 얼굴이 밝다. 양은 적어도 밥을 먹였고, 화내지 않고 등교 준비를 마쳤으니 그래도 애썼다. 엄마가 제일 많이 고생했다. 나라도 내 노력을 알아줘야지, 이거 참 서러워서.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싶어 옷을 갈아입고 신발장으로 갔다. 러닝화가 없다. 부글부글! 정신을 어디다 둔 거람. 아무 기억이 없다. 어제 운동을 마치고 신발을 갈아 신고는 그대로 몸만 집으로 왔나 보다.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홍색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다. 내 신발은 분실물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래, 러닝화를 찾았고, 아침에 화도 안 냈다. 서운해하는 울이는 더 많이 안아주고 표현해 주기로 하고, 밥투정을 하는 꿍이에게는 맛난 빵을 사다 주면 된다. 조리퐁은 왜 없냐고, 불공평하다고 화를 낼 울이를 안고, 그래도 아침부터 과자는 안 된다고 다정하게 말해줘야지. 아, 엄마는 어렵다.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