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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Jan 04. 2024

나도 유목민처럼 살 수 있을까

대한민국 수험생 부모로 산다는 것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2024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올해는 킬러 문항을 없애고 사교육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와 달리 시험은 모든 과목이 킬러 수준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온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올해도 망했다는 표정이다. 국어시험부터 멘붕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나마 자신 있던 과목이 배신을 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입맛이 없다며  밥 먹는 것 보다 우선 자고 싶다고 한다. 시험은 아이가 봤는데 나 역시 입맛이 없고 온몸이 몸살이 난 듯 무거워진다. 

그냥 집에 있는 반찬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불안한 아이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시험지 체크를 하며 새벽녘에나 나오는 과학탐구 성적에 신경이 곤두서있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신의 성적을 컴퓨터에서 계속 확인중인가보다.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말들을 뱉고 싶었지만 그냥 삼켜버렸다. 나보다 아이가 더 속상 할 테니. 그 마음조차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아이는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렀다. 정확하게 작년 이맘때 2023년 대학 수능시험을 치르고 왔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코로나시기를 겪었던 아이는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2년 반을 보냈다. 물론 이시기에도 공부하는 아이는 열심히 하고 잘 했겠지만 우리 아이는 정말 힘들게 보낸 시기였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지만 정상적인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더 좋은 사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내신과 성적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졌다. 내신으로 대학을 가기 어려워져서 논술과 정시로 대학을 정했다. 수시보다 더 좁고 힘든 상황을 본인이 선택했기에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논술시험도 정시도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지방 국립대에 붙기는 했지만 절대로 지방에 가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재수를 선택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공부든 대학이든 본인 스스로가 선택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이기에 존중하기로 했다. 


2월 중순부터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다시 수험생 모드로 들어갔다. 6월까지 잘 버티고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덥고 습한 여름이 오자 체력에 방전이 오고 십이지장궤양이 다시 도져 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9월 모의고사는 정부의 이상한 정책발표이후 치러진 시험인데 정말 폭망 했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저녁 먹으러 갔는데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체했다는 말에 정말 속상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보험 삼아 치른다는 논술시험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다녀온 학교도 있고 새로운 학교도 있었다. 시험 풍경은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복처럼 검은 패딩에 회색 트레이닝을 입고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학생 숫자만큼 많은 학부모들이 고사장에 함께 가고 있었다. 작년처럼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가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고 지쳤다. 그래도 우리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거리인데 캐리어를 끌고 멀리서 온 학생들과 부모들을 보면 나의 피곤함이 사치 같아 보였다. 


다음 달 초에는 수능 성적이 나오면 정시학교 지원을 한다. 논술시험결과에 따라 정시 지원이 제한되겠지만 아직도 두 달간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 준비기간이다. 시험은 하루만에 끝냈는데 지원하고 합격하기까지 거의 석 달 정도 지리한 시간들을 흘려 보내야한다. 

우연히 티비에서 정말 신기한 가족이 소개되었다. 17살 딸, 22살 아들, 엄마,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캠핑을 다니는 것이다. 17살이면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오토바이를 타고 저렇고 캠핑을 다닐 수 있지.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일까. 부모는 일찍부터 공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을 하면서 자신이 잘하는 일들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릴 때 폐차직전인 버스를 개조해 캠핑을 다니고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거창한 대학간판은 없지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부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오는 일인가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인데 나는 완전히 졌다. 유목민 같은 그들의 삶이 너무 부러웠다. 여행 한 번의 경험이 책을 50권 읽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는데 우리의 삶은 여행보다 책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왜 저런 삶을 살지 못했을까. 그냥 내 욕망과 욕심을 버리면 이루어지는 삶인데. 껍데기 같은 외형의 삶에 너무 집착하고 살았더니 어느 날 더 이상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갇힌 삶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의 아이에게도 이런 욕망과 욕심이 유전되어 버린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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