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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15. 2023

공무원은 꼬우면 접어라?

오해 둘 : 공무원 재취업

선호의 하소연 : 꼬운데 못 접어요


요즘 공무원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죠. 이런 저런 기사들이 많이 떴었지만, 제 눈을 가장 잡아끈 건 이직이나 퇴직, 그러니까 공무원을 때려치는 얘기였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계속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공무원들이 힘들어한다는 기사에는 늘 이런 뉘앙스의 댓글이 달립니다. “누가 공무원 되라고 칼들고 협박했냐”거나 “꼬우면 접어라”고 말이죠. 그 유명한 [누칼협]과 [꼬접]입니다.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생각하죠. ‘맞아, 누가 나 공무원 되라고 칼들고 협박 안 했지.’, ‘그러네, 꼬우니까 접고 싶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된 지 6년이 넘은 지금도 저는 공무원입니다.


왜냐고요? 꼬와도 못 접어요.



차마 던지지 못하는 사직서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인사팀에 사직서 던지면 그만이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알죠. 밥 벌어먹기 위해서는 결국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거. 자영업하시는 분들이 진상손님 때문에 분통이 터져도, 회사 다니시는 분들이 직장 내 갑질 때문에 울분에 차도, 하청업체 계시는 분들이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에 울화가 치밀어올라도 꾹 참고 다니시는 거, 그거 생계 때문이잖습니까.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요.


공무원도 똑같습니다. 아주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만, 요즘엔 어지간해선 다들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젊을수록 더 그렇고요, 직급이 낮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아마 젊을수록 다른 직업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이 크게 느껴지고, 직급이 낮을수록 받는 돈은 적고 일은 많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2030 공무원 "기회되면 언제든 사표" 65%> ('23.6.6. 한국경제)


실제로 공직을 떠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꼬접]하는 겁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겠지만 젊은이들의 이탈은 조직의 동력을 떨어트리고 품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젭니다. 근본적으로는 조직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고요.

<"꼬우면 이직해라"했더니 진짜 관둬... 2030 공무원 퇴직 '러시'> ('23.10.10. 서울경제)

재직 1년 미만 퇴직 공무원 수 : ('18) 951명 → ('22) 3,123명 ('23. 공무원연금공단)

2030 퇴직 공무원 수 : ('18) 5,761명 → ('22) 11,067명 ('23. 공무원연금공단)


그런데 통계자료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요즘 젊은 공무원들은 어지간하면 다들 그만두고 싶어 한다고 했잖습니까? 근데 실제로 그만두는 숫자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말인즉슨 이직을 꿈꾸는 공무원들 중 절대다수는 여전히 공직을 때려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직에 대한 꿈은 마음 한 귀퉁이로 밀어둔 채, 이 순간에도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2030 이직 희망 공무원 중 미퇴직자 수/미퇴직 비율 : 337,129명/96.8% ('22. 공무원연금공단 자료 활용)


퇴직공무원은 취업시장 최약체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도 않다면서, 이직 희망자 중에 왜 극히 일부만이 그만두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공무원을 때려치고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자, 일단 공무원 개개인의 대체적인 성향부터 봅시다. 공무원은 E보다는 I 성향이, P보다는 J 성향이 강합니다. 또한 도전적인 것보다는 안정적인 걸 선호하죠. 민간에서 일을 하더라도 사업을 하기보다는 직장에 다니는 걸 좋아할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비유컨대 프리랜서 방송인 보다는 방송국에 소속된 아나운서를 택할 사람들이랄까요.


공무원을 그만두더라도 직장인의 길을 걸을 사람들. 그렇다면 어떤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봐야하는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공무원 경력은 유의미한 경력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기업에서 뽑을 이유가 없습니다. 공직에서 몇 년을 일을 했어도, 이 사람에게 쌓이는 건 끽해야 '행정전문성' 정돕니다. 심지어 공무원들은 워드(word)도 못 다룹니다. 한컴오피스 한글이나 다룰 줄 알지 그 밖의 프로그램은 할 줄을 모릅니다. 10월에는 국정감사 시즌이고, 11월에는 예산 시즌이고. 이런 걸 알아봤자 민간에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행정공무원으로서의 전문성은 다른 직업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


반면 민간은 본인의 경력이 쌓일수록 그게 곧 능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했다는 경력은 마케팅과 관련된 경력이 됩니다. 그래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직무 내에서, 또는 마케팅 업계라는 직군 내에서 먹힐만한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꽤나 자주 이직이 일어나죠. 출판업계나 유통업계 역시 유사한 이유로 이직이 아주 활발합니다.

2040 직장인 이직 현황 : 평균 이직횟수 3.4회, 이직 경험 비율 89.5% ('23. 잡코리아)


퇴직공무원은 회사 입장에선 그냥 나이 든 신입사원일 뿐입니다. 경력직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쓸 수가 없습니다. 스펙도 없고 능력도 없고 나이만 많은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그 편하다는 공무원 생활마저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는 딱지라도 붙는 순간, 나이는 먹었지만 철은 들지 않은, 유리멘탈의 소유자가 되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어리고 열정 넘치는 능력자들이 드글거리는 취업시장에서 퇴직공무원은 먹이사슬 최약쳅니다.


물론 몇몇 분들은 이직에 성공하시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특수한 경우. 예를 들어 몇몇 경제부처나 기술직렬이 그렇습니다. 변호사, 의사, 약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흔치 않죠.

<국내 1호 중대재해감독과장 사표 냈다... 그만두는 공무원들> ('23.11.15. 헤럴드경제)


그럼 결국 둘, 대관업무. 결국 이쪽입니다. 그러니까 업무적으로 어떤 전문성을 발휘한다기보다는 휴민트, 즉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일을 잘 풀리게 하는 정돕니다. 물론 이것도 소중한 리소스일 수는 있겠으나, 개인 입장에서 지속성이 높다거나 또는 직업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직군은 아닙니다. 또한 이렇게 대관업무가 필요한 곳도 몇몇 경제부처를 포함한 극소수고요. 지자체 민원업무를 하던 8급 주무관 입장에서는 딴 세상 얘기일 수 밖에요.

<금융위 에이스 사무관 또 가상자산업계로... 이번엔 두나무 행> ('23.1.11. 연합인포맥스)


그래서 다들 못 그만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만두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입니다. 관련된 기사들의 논점은 '이야, 요즘 공무원이 정말 별로인가봐'라거나 '공무원 처우를 개선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일 수 있지만, 공무원으로서 그 기사를 읽는 제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와 진짜 용기 있는 선택이다, 멋있다, 부럽다 따위의 감정들이 듭니다.


직장이 아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

사실 알고보면 이건 전부 예견됐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비슷한 일을 수험생 시절부터 겪어왔으니까요.


공무원 시험은 전형적인 [all or nothing]입니다.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몇 차례의 실패가 반복됨에 따라 세월만 흘러갈 뿐입니다.


일반적인 취업준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몇 차례의 실패를 겪어도, 최소한 '스펙'은 남습니다. 어디에서 인턴을 한 경력, 토익 점수가 몇 점, 무슨무슨 자격증. 거기에 새로운 스펙을 더해서 다음 취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아예 남는 게 없습니다. 행정고시 1차 합격 경력? 이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어디 가서 가산점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요.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누구보다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 비율이 높은 공무원 사회인데, 그런 공무원을 하고 싶으면 도박수를 걸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극단의 양자택일 상황은 현직 공무원이 되어서도 이어집니다. 이직시장에서는 처참할 정도로 약자가 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쉽게 그만두지를 못 하죠.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그러더라고요. 행시 출신은 다르다고. 중앙부처 행시 출신 사무관을 마다할 대기업이 어디있겠느냐고. 그 밑에 대댓글 달고 싶은 걸 꾹 참았습니다. 당장 공무원 그만 둘 테니, 그곳이 어딘지 알려만 달라고 말이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죽을 용기가 있었으면 사표를 냈어야지'하는 반응도 있지만, 마음건강이 안 좋아지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 생각의 폭도 시야도 좁아지잖습니까. 이직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 상, 그 분들께는 제3의 길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동기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취업정보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두 번째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한 번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건 못 견디겠다'는 포인트를 알게 되고, 다음 직장을 고를 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라죠. 어쩌면 공무원들은 그래서 직업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 첫 직업이 공무원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바꿔 생각해보면, 공무원들에게는 두 번째 직장을 고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근시안이죠. 다른 직업과 자신의 직업을 비교할 수 있는 시야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겁니다.


인간이란 늘 그럴 겁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 마련입니다. 내 떡과 남의 떡을 손수 비교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본인이 가진 것이 작다며 툴툴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그 떡 고르라고 칼들고 협박했냐'며 '꼬우면 떡 버려라'고는 말아주세요. 떡을 내팽개칠 수는 없잖아요. 제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할 떡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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