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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22. 2023

존중 받는 신입 인턴

장점 넷 : 직원 대접

기로 : 근데 5급 공무원이면 얼마나 높은 거에요?
아영 : 공무원 전체를 놓고 보면 꽤 높을걸? 비율로 치면 수능 1등급 정도라고 들었어.

전체 공무원 중 5급 이상 비중 : 4.98% (58,382명/1,171,632명, '23.6.30. 행정안전부)

선호 : 근데 니가 공무원 하는 중엔 5급이 높다는 생각은 전혀 못해.
기로 : 엇, 왜요?
선호 : 지방은 가야 5급이 높은 거지, 중앙에서는 발에 채이는 게 5급인데. 급 중에 5급이 제일 많아.

부처별 5급 공무원 비중 : 기획재정부 44.7%, 국무조정실 42.7%, 법제처 42.6%, 금융위원회 41.4%

아영 : 그건 그래. 회사에서는 그냥 실무자지.
선호 : 그치. 대접을 받을 위치는 전혀 전혀 아니지. 더 쎄빠지게 일을 하면 했지.
기로 : 행시 붙어도 별 거 없네요.
선호 : 그럼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건 줄 알았어? 그냥 '정부'라는 회사에 '행시'라는 입사시험을 보고 '신입사원'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야 돼.



선호 : 아 근데 그런 대접은 있다.
기로 : 오 뭔데요?
선호 :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줘.
기로 : 에? 아니 그게 뭐에요. 사람이 말을 하면 당연히 귀를 기울이겠지.
선호 : 야, 봐봐라. 처음 회사에 딱 들어가면, 우리가 뭔 거 같아? 앞으로 회사를 이끌 차세대 에이스? 엘리트?
아영 : 우리는 병아리지, 병아리. 삐약삐약.
선호 : 어. 우리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이라고. 그냥 주구장창 시험공부만 하다 온 애들인 거야. 공문 한 장이라도 써봤고 보고서 한 페이지라도 써봤냐고. 일 할 줄을 전혀 모르는데 무슨 에이스고 엘리트야. 근데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준다니까? 이거 진짜 대단한 대접이다 너.
아영 : 맞아. 난 아직도 창피할 정도로 뭘 모를 때가 많거든? 1년 차땐 더 하지. 솔직히 5년 10년 일하신 주무관님들이 보시기에 우리가 얼마나 애 같겠어. 행정을 하나도 모르잖아.
선호 : 비유하자면 이런 거야. 얘가 무경력직 생초짜 인턴인데도 회의란 회의에 다 들어가게 하고, 개똥 같은 말을 던져도 무시 안 하고 하나 하나 다 알려주고, 나름 직급도 있다고 외부사람들 앞에선 올려쳐주기도 하고.
아영 : 진짜. 심지어 우리 1년 차까지는 시보잖아, 수습. 진짜 인턴이라니까.

5급 공채(행시)로 공직에 진입하는 경우 정식 임용 전 1년 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게 되며, 이 때의 직급은 사무관시보.

선호 : 일은 인턴 수준이 아니지만.
아영 : 으응. 일은 처음부터 많지.

수습 기간 동안 업무에 투입되는 정도는 부처에 따라 상이. 예컨대 기재부의 경우 별다른 적응기간 없이 곧바로 현업에 투입하는 반면, 국세청의 경우 국세연수원 연수를 수료하게 함.



선호 : 나 수습 때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일 잘한다는 말이었잖아.
기로 : 오 역시!
선호 : 뭐가 역시야.
기로 :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니 일 할 때는 역시 잘했나봐요 형.
선호 : 그런 거 아냐. 우쭈쭈 해주는 거야 주변에서.
기로 : 그래도 형이 잘 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일 못 하는 사람한테 그럴 수가 있나?
선호 : 신입은 일을 잘 할 수가 없어. 경력직이면 모를까.
기로 : 그런가? 제가 아직 회사를 안 다녀봐서 모르겠네요.
선호 : 그래, 이건 진짜 우쭈쭈야. 잘한다, 역시 뭔가 다르다, 똑똑하다, 뭐 이런 얘기들을 주변에서 계속 해주셔. 세상에 신입직원한테 이런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 어딨냐.
아영 : 근데 그건 사람마다 좀 다른 거 같아. 부마다 과마다 다 다르고.
선호 : 내가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기는 했지.
아영 : 응. 그런 대접 못 받은 사람들도 은근 많을걸? 아 물론 보통 일반 회사 신입사원보다는 더 인정받기는 하는데, 니가 진짜 잘 해서 그런 것도 있을거야.
선호 : 아냐, 난 진짜 그런 생각은 안 해. 누나도 알잖아,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는 거.
아영 : 그치.
선호 : 어차피 이 좁은 사회에서, 어지간하면 앞으로 몇 십 년 간 같은 직장에서 평생 볼 사이니까 좋게 좋게 말을 해주시는 거겠지. 그리고 보통 사무관 10년 쯤 하면 서기관 달고 15년 쯤 하면 본부 과장을 달잖아? 그럼 잘하면 같은 과에서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 난 그래서 우리를 그렇게 잘 대우해주시는 거 같아.

일반직공무원 5급 → 4급 평균 승진연수 : 9년 2개월 ('22. 인사혁신처)

아영 :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듣다 보니 약간 일리는 있네.
선호 : 응, 난 그렇게 생각해. 나한테 해주시던 칭찬들은 진짜 칭찬이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자만하면 안 되고, 그런 칭찬에 익숙해져서 건방져지면 안 되고, 계속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겸손하게 해야지. 어떻게 행정을 10년 한 사람보다 내가 일을 더 잘 하겠어.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계속 경계해야지 스스로를.
기로 : 형 진짜 다른 사람 같네요. 형도 어른스러울 때가 있구나.
선호 : ?



아영 : 근데 난 그게 더 부담되더라. 뭔가 잘해야 된다는 강박감?
선호 : 아, 맞아. 그런 것도 확실히 있지.
아영 : 응.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는 게 꼭 '잘해라 잘해야된다' 이렇게 들려.
기로 : 누나가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영 : 그런가?
선호 : 개인 성향도 있겠지만, 음, 뭐랄까. '행시출신'이라는 기대감은 확실히 있어.
기로 : 아니, 언제는 뭐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라면서요.
선호 : 맞아. 처음에는 당연히 그게 맞는데, 이게 연차가 하나 하나 쌓이면서 우쭈쭈는 더 못 받지. '저 정도면 일 할 만큼 한 사람이 왜 저거 밖에 못하지?'하는 시선을 받지 오히려.
아영 : 일이 터져서 새벽까지 일하다가 문득 주변을 보면 남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행시출신이긴 하더라. 물론 승진사무관님들이나 주무관님들도 계실 때도 많지만, 비율로 따져보면 행시출신이 확실히 많은 거 같긴 해. 기대감에 부응하려고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호 : 그러게, 뭐가 먼전진 모르겠다. 하여튼 '행시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어떨 땐 안 좋은 편견이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땐 능력자일 거라는 기대감이기도 해.
아영 : 행시출신 사무관을 고시사무관이라고 하거든? 꽤 많은 관리자들이 고시사무관을 하나라도 더 데려오려고 애쓰신대.
선호 : 아니, 저번에는 내가 진짜 어이가 없었는데, 평소에 계속 행시 없애야된다고 떠들고 다니던 국장님이 계셨단 말야. 근데 그 분이 인력 받을 때는 고시사무관 아닌 사람들은 다 깠다더라고. 사람이 진짜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아.
기로 : 확실히 행시출신에 대한 기대가 있긴 있나 보네요.
아영 : 응 맞아. 실제로 우리 윗세대들이 평판을 잘 쌓아온 덕이겠지? 결과로 증명하고.
선호 : 맞아. 그래서 우리가 초임 때부터 조직 안에서 배려랑 격려랑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거 같아.



기로 : 하긴, 처음부터 대접받으려면 내 가게를 차려야지.
선호 : 그거지. 남이 차려놓은 회사에 들어가면 그 동네 룰을 익히는 것만 또 한 세월일 거잖아. 그동안은 거의 교육생 수준일 거라고.
아영 : 그치. 월급쟁이로 시작하면서도 이렇게 존중받는 직업은 얼마 없을지도 몰라.
선호 : 심지어 전문직도 아닌데.
아영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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