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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20. 2023

뺑글뺑글 뺑뺑뺑

단점 넷 : 순환보직

선호 : 야, 기로. 너 그거 알어? 1만 시간의 법칙?
기로 : 아뇨? 그게 뭔데요?
선호 : 1만 시간은 투자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거야, 어떤 거든.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 :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 미국 콜로라도大 앤더스 에릭슨(K.Anders Ericsson)이 주창, 언론인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인용하여 대중화 된 이론.

기로 : 그게 갑자기 왜요.
선호 :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한다 치면 3년이면 전문간거잖아. 아무리 길어도 그 때까진 붙으라고.
기로 : 아니 뭐 언제는 공무원 하지 말랬다가, 지금은 또 얼른 붙으라고 하고. 뭐가 진심이에요 형.
선호 : 아니 내가 쎄빠지게 말해도 말을 안 듣잖아. 어차피 공무원 준비 그만둘 거 아니면 얼른 붙으란 얘기지. 좋은 말을 해줘도 난리야.
아영 : 그럼 뭐. 10년을 공부한 누난 뭐야. 공부를 대충했다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은 전문가가 돼봤자 못 붙는 수준이란 거야.
선호 : 앗.



아영 :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일을 잘 못하는 게 이해가 가네.
기로 : 에이, 누나 같은 사람이 왜 일을 못해요.
아영 : 아니야 진짜. 국과장님한테 혼나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야 정말.
선호 : 그래서 뭐가 이해가 갔는데?
아영 : 봐봐. 우리가 초근을 하나도 안 하고, 연가도 하나도 안 쓴다 치면 1년에 대충 2,000시간쯤 일한단 말야? 그럼 5년은 해야 전문가가 되는 거잖아. 근데 난 이제서야 막 2년차니까 내가 뭘 알 수가 없었던 거야. 내가 멍청했던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연간근무일 247일 × 일 정규 근무시간 8시간 = 1,976시간 ('23년 기준)

선호 : 그러네. 매달 40~50시간씩 초근을 한다쳐도 4년은 걸리네.
기로 : 그럼 형은 이미 전문가네요?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는데 6년차잖아요.
선호 : 아니, 나도 누나랑 똑같아. 전문가일 수가 없어.
기로 : 왜요. 1만 시간을 넘게 했는데 형은 이미 전문가지.
선호 : 아냐. 나 지금 업무 맡은 지 반 년 밖에 안 됐어.
기로 : 그 전 업무는요?
선호 : 그것도 2년 채 안 했을걸?
기로 : 왜 그렇게 짧게 했어요?
선호 :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리가 계속 바껴.
기로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리? 앉는 자리?
선호 : 아니, 소속 부서가 계속 바뀐다고. 과나 팀 같은 거.
기로 : 왜요?
선호 : 그게 원칙이야. 공무원 인사원칙. 순환보직. 부처마다 좀 다르긴 한데, 보통 2년마다 옮겨.

4급 이하 일반 공무원 기준, 다른 직위로의 전보 가능 기간(필수보직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나, 유사직위 전보 및 공통부서 근무자의 전보 등은 2년으로 하며, 그마저도 기관장(장관) 판단에 따라 이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음 (인사혁신처, <2022 공무원 인사실무> 참고)

기로 : 2년이면 좀 짧은 거 같은데? 공무원들 시험 준비할 때도 2년 안에 붙으면 빨리 붙었다 그러잖아요.
선호 : 그니까. 내가 아무리 6년차라 그래도 내 담당 업무에서는 전문가가 못 된다니까.
기로 : 1만 시간 법칙이 맞다면 공무원들은 거의 전문가가 될 수가 없네요.

<'세종 섬'에 갇혀 순환보직 뺑뺑이…전문성 떨어지는 공무원들> ('23.6.7. 한국경제)

선호 : 어. 전문성 나락.



기로 : 근데 그럼 굳이 왜 그러는 거에요? 일도 하던 사람이 더 잘하지 않나? 아, 담당자들이 일을 못 해서 자꾸 바꾸는 건가요?
아영 : 그런 경우도 있긴 한데, 그건 거의 같은 과 안에서 과장님이 업무분장을 다시 할 때고, 순환보직 자체가 공무원 인사관리 기본이야.
선호 :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썩는다는 거지 뭐. 뒷돈 받고 그런 거 있잖아.
기로 : 공무원을 예비범죄자로 본 거 아닌가요 이정도면?
선호 : 뭐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설득력은 나름 있는 거 같어.
기로 : 아 그래요?
선호 : 어. 공무원이 아무리 규정대로만 한다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똑같은 사람을 자꾸 보면 정들 수 밖에 없거든. 예를 들어 내가 지자체에서 건축 허가를 내주는 사람이라 쳐봐. 그럼 처음에는 진짜 원리원칙대로 칼같이 처리해도, 똑같은 사람이 본인 어려운 사정 얘기하면서 백 날이고 천 날이고 얘기하면 그게 마음이 안 흔들리겠냐고. 공무원도 사람인데. 진짜 뇌물 받고 그런 건 아니더라도.

포획이론(Capture Theory) :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집단을 형성해 정부(공무원)로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이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George Joseph Stigler)가 주창.

아영 : 그것도 그렇고, 높은 자리에 앉을 수록 좀 넓게 봐야 되잖아? 그래서 실무자 때 여기 저기 다양한 경험을 시킨다더라고.
기로 : 그래도 2년은 좀...
아영 : 봐봐. 공무원 정년이 60살이잖아? 그럼 행시 붙어서 5급으로 바로 들어온 게 30살이라 쳐도 일할 시간은 딱 30년 남는 거야. 전문성 키운다면서 막 10년 씩 한 자리에 있게할 수가 없지.
선호 : 보통 사무관에서 서기관 승진하는 걸 10년 전후로 보거든? 과장 좀 보태서 20년 씩 걸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한 자리에 10년을 앉힌다면 서기관 승진할 때 꼴랑 한 가지 일을 해본 게 되는 건데, 그건 좀 그렇잖아.
아영 : 맞아. 서기관이면 이제 곧 과장님 되실 건데.
기로 : 그렇게 경험할 게 많아요? 공무원 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아영 : 진짜 엄청 달라 일이. 내가 아직 2년 차여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 사이클도 엄청 많아.
선호 : 누나만 그런 건 아냐. 나도 아직 그러는데. 밖에서 보면 일이 다 비슷하다고 할지 몰라도, 실제 일을 해보면 업무가 너무 다르다는 걸 알지. 보통 사업, 법 제도, 예산으로 나누긴 하는데, 그거 말고도 기획, 국회, 언론, 뭐 진짜 많아. 말하자면 너무 길다.
아영 : 가끔 과장님들 중에서도 실무자 때 뭘 안 해보신 분들이 계시거든? 그럼 그게 보여. 뭐 예산을 안 해보셨다 그러면 예산을 따고 지키고 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는 거야. 큰 틀만 아시고 디테일은 안 해보셨으니까. 그럼 밑에서 실무자가 일하기가 완전 힘들지. 실제로 결과도 안 좋게 나올 수도 있고.



기로 : 전문성이 꼭 필요한 곳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선호 : 아니지. 일을 하려면 그게 어떤 분야든 전문적이어야지. 프론데.
기로 : 아니, 그래도 더 필요한 일이 있을 거잖아요. 뭐 기계쪽 특허 심사를 하려면 메커니컬 전문성이 좀 있어야 할 거고, 수학 교육과정을 짜려면 수학을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런 몇몇 자리만이라도 오래 일하게 하면 안 되나?
아영 : 지금도 그건 그렇게 하고 있어. 몇개 직위는 전문분야로 정해서 아예 전문관을 경력채용을 하기도 하고, 오래 일하면 승진할 때 가산점도 주고.
기로 : 전문관?
아영 : 응. 전문성이 특히 필요하다 싶은 곳은 아예 전문관이라는 이름으로 공무원을 뽑거든. 예를 들면, 공무원 국어시험 문제를 내는 자리? 좀 결이 다른 거 같지만 운전해주시는 운전직, 밥 해주시는 조리직도 있고.
기로 : 와, 조리사님들도 공무원이셨어요?
아영 : 아, 구내식당은 위탁업체에 맡기는데, 위탁업체가 못 들어오는 경우는 조리직을 뽑지. 예를 들면 해경들이 며칠씩 배 타고 바다에 나갔다 오잖아? 작은 배는 막내 해경이 밥을 한다고 하던데, 중형 이상은 조리직으로 해양경찰청 출신 공무원을 뽑아. 그럼 그 분이 밥을 해주시는 거야. 이런 분들은 당연히 순환보직이 아니시지. 우리가 말한 건 일반 공무원들.
선호 : 그치. 일반 공무원들은 안 그렇지. 일반 공무원들 인사할 때는 전문성보다는 청렴함에 더 신경쓴다고 해야 되나?

공무원 임용규칙 제49조(분야별 보직관리 적용제외 공무원) 3. 동일분야 직무를 장기간 수행할 경우 관련기관 또는 관련 외부인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투명공정한 직무수행이 곤란한 경우

아영 : 그래서 우리는 맨날 초짜야. 아까도 그랬잖아, 공무원 일들이 생각보다 진짜 다양하다고. 완전 새로운 일을 2년마다 하는데 어떻게 전문가가 되겠어. 이제 뭔가 좀 알 것도 같다 할 때 다시 발령이 나고, 다시 초짜가 되지.
선호 : 우리랑 콜라보하는 민간쪽 사람들이 되게 답답해해. 담당 공무원 또 바꼈냐고. 다시 처음부터 설명하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고.
아영 : 맞아. 그래서 더 그 사람들 말에 끌려가는 것도 있는 거 같아. 난 잘 모르는데, 거의 평생동안 한 우물만 파온 사람도 있단말야. 그러면 어떻게 그 사람 말을 안 듣겠어. 귀라도 더 기울이게 되지.
선호 : 나중에 뭘 좀 알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자기한테 유리한대로 말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하잖아.
아영 : 맞아. 근데 당시에는 그런 걸 판단할 능력이 안 되니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거야.
선호 : 그거 때매 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아영 : 창피하지만 그래서 일부러 아는 척 할 때도 있어. 무시 좀 덜 당하려고. 발령난 지 얼마 안 돼서 바깥 사람들이랑 회의라도 하면 적당히 고개도 끄덕이고, 어느 상황에서나 쓸 수 있는 무의미한 말을 그럴듯하게 하기도 하고.
선호 : 근데 그게 또 문제잖아 누나. 우리가 개인이면 아무말이나 막 할 수 있겠는데, 외부 회의에서 그렇게 말을 하면 거의 우리 기관이 한 입장표명이 돼버리니까.
아영 : 맞아. 그게 심리적으로 너무 압박이고 스트레스야. 그래서 난 꼭 전제를 붙이거든? 이게 우리 청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이다, 청 내부에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선호 : 잘 하고 있네.
아영 : 근데 이건 꼭 우리만 겪는 문제는 아닐 거 같아. 개인이 한 말이 기관 입장이 되는 건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 어지간한 직장인들은 다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을걸?
선호 :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전문성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거의 공무원 종특아닌가? 지자체 공무원들 같은 경우는 아예 근무 지역이 계속 바뀌는 건데?
아영 : 하긴, 그건 그래.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현장에서 민원도 처리해야 되니까.



기로 : 형 누나들 자리 옮기면 무조건 야근하겠네요.
아영 : 응, 무조건이지.
선호 : 그치. 뭘 할 지 몰라도 업무를 익혀야 되니까. 공부도 해야 되고.
아영 : 공무원은 규정대로 처리한다고 하잖아? 근데 그 규정이란 게 스케일이 다 다르거든? 어떨 때는 법이고, 어떨 때는 시행령, 시행규칙, 또 어떨 때는 조례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그냥 내부 규정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최소한 이 규정들을 다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뭐가 어디에 적혀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일이다 일.
선호 : 규정들도 알아야 되고, 그동안의 연혁들도 알아야지. 판례처럼 사법부 입장도 알아야 되고, 국회 입장도 알아야 되고. 디테일하겐 당별로 의원별로 파악해야 할 때도 있고.
아영 : 히스토리.
선호 : 그치, 공무원들끼리는 히스토리라고 하거든.
기로 : 그럼 발령 새로 나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겠네요. 강제로 초짜도 되고, 야근도 무조건 해야 되니까.
아영 :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 지금도 밤 12시까지 맨날 초근하고 있는 자리일 수도 있잖아. 아니면 민원이 엄청 많이 생기는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자리로 가는 걸 더 좋아할 수도 경우도 있어. 그래서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
선호 : 근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리는 진짜 적잖아. 그런 자리에 앉는 건 어지간한 행운으로 안 될 걸?
아영 : 하긴, '순환근무'를 '악순환근무'라고도 부르더라.

<공무원 인사이동은 악순환보직이었다> ('21.10.27. 초자아 superego 브런치스토리)

기로 : 어우, 너무 슬픈 이름인데요.
아영 : 아,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아. 어차피 난 이제 곧 자리 옮길 때 됐으니까, 이건 대충해도 되겠지? 하는.
선호 : 하아, 진짜. 전임자 똥치운다고 개고생하던 게 떠오른다. 내가 그거 때매 인간혐오가 생겼었잖아. 왜 그렇게 싸질러놓는거야.
아영 : 당연히 자기가 담당자로 있는 동안에는 책임감 있게 일을 해야겠지만, 개인의 마음가짐에만 맡기기에는 순환보직제도 자체에서 나오는 부작용도 큰 거 같아.
선호 : 그치. 어차피 곧 나갈 사람인데 뭐하러 빡세게 하겠어. 유인이 없잖아. 책임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기로 : 그런 공무원은 어떻게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영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걸 개인의 도덕 문제로 보기 보다는 제도 개선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며 사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행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등이 적극 활용.

선호 : 맞아. 뭐 당연히 모든 공무원이 그런 건 아니야. 나처럼 '나가기 전에 최대한 이건 다 끝내놓고 가야지'하거나, 다음 사람 생각해서 어려운 것들을 미리 치워놓거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걸 개인 문제로 퉁치는 건 좀 그렇지.



아영 : 그래도 그건 좋겠던데? 케미 안 맞는 사람이랑 금방 헤어질 수 있다는?
선호 : 그건 그래. 아무리 내가 과장님이랑 안 맞아도 거기도 2년마다 옮기고 나도 2년마다 옮기니까 쫌만 버티면 저 과장님이랑은 이제 안 봐도 된다 싶지.
아영 : 맞아. '과장님 언제 바뀐대요'가 거의 '안녕하세요'처럼 인사인 과도 있대.
선호 : 꼭 과장님만 그런 건 아니고.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다 마찬가지지.
기로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덜 봐도 된다? 이게 순환근무 좋은 점이라니 좀 짠하네요.
아영 : 어유, 그게 어디야.
선호 : 형 누나들이 그렇게 버티고 있다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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