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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27. 2023

뭐더러 열심히 하냐

단점 다섯 : 성과 보상 시스템

기로 : 누나도 일 많댔죠?
아영 : 어우, 진짜 많다니까. 많다 뿐이냐. 업무 꼭지 하나마다 얽혀있는 사람들이 대체 몇 십만인지. 너무 무거워 일이.
기로 : 그러니까 더 많게 느껴지는 거겠죠?
아영 : 그치. 그렇게 큰일들이다보니까 일을 허투루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해야되니까 양도 또 더 많아지는 거 같고. 진짜로 사람 대비 일이 많기도 하지만.
기로 : 그럼 누나 생각엔 중앙부처 사무관이 제일 일이 많은 거 같애요?
아영 : 에이, 그건 아닌 거 같다 야.
기로 : 왜요? 일이 그렇게 무겁고 많아서 힘들다면서?
아영 : 우리보다 일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판검사들 업무량도 미쳤고, 대형 로펌 변호사들도 일 엄청 많이 하더라. 회계사들도 그렇고. 내 친구는 간호산데 그쪽은 사표 쓰는 게 일상이래.

<간호사 열에 여덟 이직 생각, 67%가 업무량 불만족> (‘23.2.24. 매일노동뉴스)

선호 : 아는 동생은 개발자거든? 거기 크런치 모드 땐 진짜 엄청 갈리더라. 친구 부모님은 식당을 하시는데 아직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셔서 밤까지 일하시고. 쫌만 넓게 생각해보면 힘든 직업이야 너무 많지. 어떻게 중앙부처 사무관이 제일 일이 많다고 그러겠어.

크런치 모드 : 주로 개발 업계에서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수면 등 개인생활과 사회활동 등 업무 외 사적영역을 희생해가며 무기한 근무를 연속하는 행태 또는 근로문화를 일컬음.

아영 : 그건 진짜 시야가 너무 좁은거지.
선호 : 맞아.



기로 : 그럼 왜들 그렇게 현타가 쎄게 오는 거에요? 공무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선호 : 야, 페이가 다르잖아 페이가.

<‘월급 현타’... 국가공무원 작년 8,500명 관뒀다> (‘22.9.21. 서울신문)

기로 : 아 월급이 적어서?
아영 :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이 직업 하느라 못 고른 직업들과의 상대적 월급이라고 해야 되나? 대부분 비슷할 거 같은데 우리가 행시 준비하느라 다른 걸 못 한 거잖아? 예를 들면 로스쿨 가서 변시를 본다던가, CPA를 보고 회계사를 한다던가. 수입만 놓고 보면 뭐 인스타 맛집 같은 데가 훨씬 더 클 순 있겠지만, 난 그걸 보면서 현타가 오지는 않더라고. 어차피 내가 그런 걸 할 스타일은 아니었을 거 같아서.
선호 : 그치. 근데 주변 친구들 페이를 보면 그런 게 부럽지. 일은 빡세게 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일하는 만큼 보상이 오니까. 변호사들이 일 많은 건 알겠는데, 걔들은 그래서 돈을 많이 벌잖아.
기로 : 일도 대충 하면서 돈 버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선호 : 당연히 있는데 그런 건 뭐 논외로 하고.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지.
아영 : 맞아. 핵심은 그거지. 일은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못 번다.


기로 : 근데 지금도 성과평가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아요? 그걸로 월급주는 거 아니에요?
선호 : 뭐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5급 이상한테만 적용되는 얘기지만.

성과연봉제(직무성과급적 연봉제) : 5급 이상 공무원은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으로 전년도 성과평가 등급에 따라 당해년도 연봉이 정해짐(공무원 보수규정 제33조 등).

아영 : 6급 이하도 성과급 있잖아. 성과평가해서.

성과급(성과상여금) : 6급 이하 공무원은 전년도 성과에 따라 연 1~2회 수당을 지급받음(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의2 등).

선호 : 아, 맞네.
기로 : 그럼 열심히 하면 돈 더 받는 거 아닌가?
선호 : 응 절대 아니지. 니가 열심히 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기로 : 어, 음. 상사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선호 : 어떻게?
기로 : 맨날 바쁘게 일하니까?
선호 : 그럼 이건 어때. 누구는 일머리가 좋아서 초근도 안 하고 일을 깔끔하게 다 끝내놨어. 근데 누구는 일을 맨날 잘못해서 사고가 계속 터져. 그래서 그거 커버하느라 맨날 야근해. 그럼 누구 성과가 더 좋은 거냐?
기로 : 으음. 근데 그건 일을 잘하고 못하고지 열심히 하고 안 하고는 아니지 않아요?
선호 : 그럼 살짝만 바꿔서. 누구는 근무시간에 엄청 열심히 해서 초근 필요 없이 다 끝냈어. 근데 누구는 초근 찍을 생각으로 설렁설렁해서 맨날 초근해. 업무량은 근데 더 적어. 이러면 누가 더 열심히 한 거냐.
기로 : 이건 아마 전자...?
선호 : 근데 과장님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어. 한 사람은 6시 땡하면 짐싸고, 다른 사람은 계속 남아서 일하는데. 과장님이야 아신다 치자. 그럼 그 윗 사람들 눈에는?
기로 : 으음...
선호 : 열심히 했다는 건 증명할 수가 없어. 공무원은 시간으로 일하지 업무로 일하는 게 아니란 말야. 그래서 더 증명할 수가 없어.
기로 : 시간으로 일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선호 : 민간은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많단 말야. 예를 들면, 번역하는 사람들은 번역을 몇 페이지 하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몇 개를 팔고 하잖아. 숫자로 성과가 깔끔하게 딱 나온단 말이지. 그래서 심지어는 사무실 근무도 필요 없고 재택하는 경우도 많잖아.
기로 : 그쵸.
선호 : 근데 그게 공무원은 안 된다는 거지. 공무원은 9시 출근 18시 퇴근이야. 그 시간동안 업무를 하는 개념이지, 업무를 하려고 그만큼의 시간을 쓰는 느낌이 아니지.
기로 : 업무시간에 딱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 입장에선 억울하겠네요 그럼.
선호 : 그치. 근데 위에서는 자꾸 초근 많이 한 사람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문제지. 근무시간에 집중할 필요 없다고 유도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게.


아영 : 그리고 부서평가할 때는 또 달라 문제가.
기로 : 부서평가는 뭐에요?
아영 : 성과평가할 때, 개인만 평가하는 게 아니거든? 엄청 바쁜 과에서 제일 일을 적게 한 사람이 한가한 과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한 사람보다 더 많이 일했을 수도 있잖아.
기로 : 아하. 그럼 성과평가는 개인평가랑 부서평가랑 같이 보는 거군요.
아영 : 그치. 근데 개인평가는 상사가 바로 한다 쳐도, 부서평가는 인사팀에서 하는 거란 말야. 그러면 평가할 자료가 필요하겠지? 이 부서는 1년 동안 얼마나 잘했나 하고.
기로 : 그러겠죠. 뭐 근거가 있어야 평가를 할 거 아니에요.
아영 : 맞아. 이게 그래서 문젠데, 우리끼린 그런 얘기를 하거든, 진짜 바쁜 과는 자료를 못 낸다고.
기로 : 아, 너무 바빠서요?
아영 : 그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바쁘니까 평가자료니 뭐니 만들 시간이 없는 거야.
기로 : 아니, 얼마나 바쁘길래 내 월급을 포기해요?
아영 : 그렇다니까 진짜. 아니면 하다못해 퀄리티가 달라지겠지. 많은 시간을 공 들여 만든 자료가 허겁지겁 만든 자료보다는 훨씬 그럴듯할 거 아냐. 평가자료 만들 시간이 많은 데가 더 유리한 거지.
기로 : 진짜 평가 결과도 그래요?
아영 : 행정에서 성과라는 게 워낙 주관적이라서 딱 이렇다 저렇다 얘기는 못 하는데, 매번 그런 얘기가 나오기는 해. 업무량으로만 따지면 절대 못 받을 등급을 받아가는 과가 매번 나오거든. 평가자료 잘 만들어서 그렇다고 얘기들 하지. 뭐 자료 잘 만드는 사람 있는 과가 더 유리하다고도 하고.
기로 : 시간이 문제든 자료 만드는 사람 실력 문제든 평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아영 : 애초에 행정공무원한테 성과 어쩌구 하는 게 이상하다는 사람들도 많아.
선호 : 맞아. 행정에서 잘 했다는 게 뭐야. 무사히 행정을 잘 운영한 거? 그러면 아무 사고도 안 친 사람한테 평가를 잘 줘야되는데, 그럼 또 공무원들이 최대한 일을 안 벌일 거 아냐. 일을 안 벌일수록 사고 날 확률이 작으니까. 근데 그게 소극행정인 거잖아.
기로 : 맞아요. 이건 행정학 공부하면서 많이 얘기 들었어요. 반대로 일을 잘 수습했을 때 좋은 평가 주기도 어렵다고. 애초에 일을 안 터트렸어야 되니까.
선호 : 그치. 아까도 말했지만 성과 평가가 되는 직업들이 있지. 그러니까 여의도 증권맨들한테 인센티브를 주고, 보험왕한테 포상을 주고 하는 거잖아. 근데 안 그런 직업들도 많다고. 아니, 뭐 게임 개발을 한다 쳐. 그걸 저번 달에 몇 퍼센트 개발했고, 이번 달에 몇 퍼센트 더 개발했다 하는 걸 정량화 할 수 있냐고. 인사 경영은? 3년 뒤를 내다보고 리빌딩을 한다 치면, 올해는 어떻게 평가하는데. 3년 플랜으로 보면 진짜 잘 하고 있는 건데도, 당장 올해 성과가 안 나온다고 바로 저평가 때려야 되는 건가? 성과평가는 1년 단위로 하는 거라고 하면서?



기로 : 그럼 지금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어요?
선호 : 뭘 어떻게 굴러가. 이게 제대로 굴러가겠냐.
아영 : 이게 공무원들 사회에서 워낙 인식이 안 좋단 말야. 아무도 평가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사람들한테 그만큼의 보상을 해준다 하면 또 다들 받아들일 거 같거든 나는? 근데 지금 그게 안 되고 있으니까 반감만 잔뜩 있는 상태야.
선호 : 근데 윗놈들도 그렇고 바깥에서는 공무원들이 경쟁하기 싫어서 그런 거라는 헛소리나 해대지. 이걸 왜 공무원들이 싫어하는지를 몰라.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영 : 그래서 지금은 좀 살살 하고 있다고 해야 되나? 제대로 하려면 평가 등급별로 차이를 많이 둬야 되잖아? 근데 안 그래. 얼마 차이가 안 나. 기관별로 좀 다르지만 등급별로 연봉 한 백만원 정도?
기로 : 기관별로 다르다고요? 공무원 월급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었나요?
아영 : 아, 보통은 그런데 성과연봉제 같은 경우는 약간 달라. 이게 본봉에 성과연봉을 더해서 최종 연봉이 나오는 구조거든? 근데 성과연봉은 기관마다 약간 자율성이 있어. 이게 전년도 성과를 보고 올해 연봉을 정해서 기관이랑 계약하는 개념이라서. 가이드라인도 있고, 상한도 있지만.
기로 : 오, 신기하다.
아영 : 그래서 더 차이를 안 두는 거 같기도 해. 직원들한테 인식이 안 좋다는 걸 인사팀이 다 아니까. 등급은 보통 S, A, B 정도 있는데, 등급당 거의 백 만원 정도 차이일 거야. 많아봤자 2백 정도 되려나?
선호 : 등급 비율도 그래. 그것도 기관마다 정하는데, 보통 하위등급을 거의 안 뽑지. 보통 4:4:2 정도 하려나? 어디는 5:4:1 이라고도 하고.
아영 : 맞아. 우리도 현직은 거의 B등급은 안 받아. 중간에 휴직한 사람이나 신입 정도?
기로 : 유명무실화 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 등급별로 연봉 차이도 작게 하고, 낮은 등급은 안 주고.
아영 : 맞아. 원래 제도 취지대로라면 거꾸로 했어야 됐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으니까 일부러 유인을 줄이는? 일단 성과평가 제도는 굴려야 하니까?
선호 : 애초에 행정에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애매하다니까. 성과가 뭔지 아무도 말을 못하는데 성과평가를 어떻게 해.


기로 : 근데 그래도 어쨌든 지금 평가는 해야되는 거잖아요? 누군 S등급, 누군 A등급 이렇게. 평가제도가 운영 중이니까.
선호 : 그치.
기로 : 그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은? 뭘 기준으로 하고 있는 거에요?
선호 : 완전 사바사.
기로 : 사바사?
선호 : 어. 과장님마다 달라. 제일 흔한 건 그냥 짬순. 연차 오래된 사람한테 평가 잘 주는.
기로 : 기승전연공서열이네요.
선호 : 반대로 짬 안 찬 사람한테 챙겨주기도 하고. 근평 대신.
기로 : 근평 대신?
선호 : 아, 근평이라고 평가가 또 있거든? 성과평가는 성과급이나 성과연봉 같은 돈 얘기고, 근평은 근무성적평정이라 그래서 승진 얘기야.
기로 : 아하. 근데 왜 근평 대신이에요?
선호 : 짬이 차면 승진을 해야 되잖아? 근데 보통 승진 전 3년 정도는 평가를 잘 받아야 되거든. 그래서 과장님들이 승진할 때 된 사람들 근평을 챙겨주면, 다른 사람들은 못 챙겨주게 된단 말야.
기로 : 아, 그것도 상대평가군요.
선호 : 그치. 그래서 근평 못 챙겨준 사람한테 성과평가를 챙겨주기도 하지.
기로 : 언뜻 생각하면 일 잘 한 사람한테 승진도 성과급도 돌아가는 게 맞는 거 같은데 현실은 전혀 아니네요.
선호 : 그치. 진짜 고생한 사람들부터 챙겨주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안 그렇지.


아영 : 난 근데 연공서열이란 게 꼭 나쁜 건가 싶어.
기로 : 왜요? 열심히 한 사람한테 뭐가 안 돌아가는 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아영 : 맞아. 맞는데, 그게 연공서열이랑 꼭 양립불가능한가 하면 그건 아닌 거 같아.
기로 : 어? 연공서열은 경력대로 대접받는 거잖아요. 그게 열심히 한 사람한테 보상을 줘야된다는 거랑 어떻게 양립가능해요?
아영 : 사실 앞으로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신입이 일을 잘 할 수는 없거든? 확실히 경력이 있고 없고는 엄청 커.
선호 : 그렇지 그렇지.
아영 : 응. 그리고 경력이 1년인거랑 몇 년 쌓인 거랑 또 다르단 말이야. 사실 공무원 일이라는 게 대부분 막 대단한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까 몇 년 정도 일을 해보면 그거 자체가 공무원으로서 능력이 되는 거야.
선호 : 맞지.
아영 : 그래서 막 연공서열이라 그러면 되게 나쁜 거 같고 깨부숴야 될 악습 같고 하지만, 실제로 경력이 쌓인 사람이 일을 더 잘 하는 게 보통이란 말이지, 특히 행정에서는. 그러니까 실제로 경력이 쌓인 사람들한테 일을 더 시키면 간단하게 끝날 문제인 거 같아. 일을 더 잘 하니까 일을 더 많이 시키고, 근데 연차가 쌓였으니까 그만큼 돈도 더 많이 받고 승진도 더 빨리 하고.
선호 : 나도 완전 공감. 그리고 연공서열이라는 게 공무원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 차원에서 좋기도 하잖아. 그런 거지. 내가 지금은 비록 이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일을 해도 아 몇 년 뒤에는 나도 승진을 하고 또 몇 년 뒤에는 어디서 뭘 하고 있겠구나 하는 희망? 지금의 고생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보장된 미래?
아영 : 맞아.
기로 : 지금은 아닌가보네요.
선호 : 지금은 좀 많이 약해졌지.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경우도 되게 일상적이고. 그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닌데, 파격을 위한 파격 같은 느낌?
아영 : 맞아. 누가봐도 승진할만한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지금은 그냥 공무원 사회의 악습을 깨야된다면서 억지로 제도만 도입한 거 같아.
선호 : 근평도 그렇고 성과평가도 그렇고.
아영 : 응. 그래서 나는 어차피 공무원 일에는 성과랄 게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차라리 연공서열을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어. 진짜 엄청 잘한 사람한테는 그만큼 대우를 해주면 되는 거고.
선호 : 그치. 경찰공무원은 종종 특진 하잖아 그래서.

<경찰 최초 팀 전체 특진... 중고거래 사기꾼 소탕> ('23.11.9. 파이낸셜뉴스)


기로 : 흠. 그러니까 지금은 돈이든 승진이든 열심히 할 유인이 없는데, 어차피 그런 유인 만들기는 힘드니까 연차대로 일을 주자?
아영 : 맞아.
선호 : 차라리 그러자는 거야 차라리.
기로 : 차선이다?
선호 : 그거지. 어차피 행정에서 제대로 된 유인 만들기가 어렵단 말야. 근데 지금은 열심히 하고 말고랑 전혀 상관없이 근평도 주고 성과평가도 하고 한다 그랬잖아? 오히려 일이 없는 사람한테 유리한 구석도 있고. 그러면 대체 누가 열심히 하냐고. 열심히 일한 건 난데 오히려 평가는 엄한 사람이 더 잘 받는데. 그나마 있던 사명감 같은 동기도 꺾여버린다고. 공정한 평가를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승진할 짬 안 된 사람은 고생도 시키지 말자는 거야. 어차피 돈도 승진도 보상을 못 해주니까.
기로 : 어중간하게 성과평가 같은 거 하지 말고요?
선호 : 그렇지. 지금은 이도 저도 안 되고 욕만 먹고 있으니까.
기로 : 약간 역발상이긴 하네요. 일한 사람한테 보상을 주는 게 아니라 보상 받을 사람한테 일을 주자는.
아영 : 일을 했다 안 했다를 측정하기가 어려우니까 행정은.
선호 : 만약 측정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행정력이 쓸 데 없이 많이 들거고.
아영 : 그치. 내가 뭘 얼마큼 했다, 이런 걸 한 명 한 명이 다 자료를 만들어서 내고, 그걸 받아서 평가하고, 그래야 되니까.
선호 : 야, 딱 이런 거네. 내가 어디 무슨 예술고등학교를 들어갔어. 근데 거기를 졸업할 때, ‘얼마나 예술에 진심인가’라거나 ‘얼마나 선생님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만들어내는가’ 같은 걸 보지 말고, 그냥 학교 다닌 지 3년 되면 졸업시켜주자는 거야. 열심히 했다는 걸 어떻게 측정해. 아니, 얼마나 예술적인지를 어떻게 측정하냐고. 그러니까 그냥 3년 정도 학교 다녔으면 졸업시켜주자는 거지.



기로 : 근데 그런 생각도 드네요. 평가가 어렵다고 평가를 하지 말자는 게 과연 옳은가.
선호 : 여론에 먹힐만한 얘기는 아니지.
기로 : 그러니까요.
선호 : 근데 핵심은 국민들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출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 근로 의욕을 높이고 인사 불공정성을 잘 해결해서 조직 사기를 높일 것이냐가 돼야 되는 거 아냐? 그게 인사행정 아닌가?
기로 : 그렇긴 하죠. 근데 어차피 공무원들 인사면 법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국회 통과해야되는데?
선호 : 에이, 뭐 이런 게 법이야. 이건 시행령이나 규칙 정도면 되겠는데.
아영 : 음, 근데 기로 얘기도 맞는 거 같아. 왜냐면 입법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어쨌든 기관장이면 거의 정치인이잖아.
선호 : 정치인이지.
아영 : 그래. 인사권자가 정치인인데 국민들 눈치를 어떻게 안 봐.
선호 : 그런가?
아영 : 그럴 거 같은데? 근데 뭐 우리가 얘기하는 게 ‘꼭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이런 게 문제다‘는 거니까.
선호 : 뭐, 그치.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건 , 열심히 일을 해도 소용이 없다, 무슨 평가니 무슨 평가니 하는데 그거 다 소용없다, 그런 거지.
기로 : 그럼 형 누나들도 일 좀 적게 해요. 누가 보면 나랏일 둘이서 다 하는 줄 알겠어요.
선호 : 나도 제발 좀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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