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묻자. “보수 없이도 하고 싶을 만큼 좋고, 동시에 보수를 받고 할 만큼 잘할 자신이 있는 것을 한 가지 꼽는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당신은 인생의 미션 중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 앨런 피즈° 바바라 피즈,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중
어떤 일을 할 때 뿌듯하고 즐거웠나요?
꼼지락꼼지락, 손으로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한다. 덕분에 중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유리할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요리나 바느질, 뜨개질 같은 일 말이다. 꼼꼼한 성격이 구절판을 만드는 칼질에 섬세함을 덧대었고, 세팅에 흐트러짐을 없앴다. 코바늘 뜨기로 티코스터를 만들어 제출할 때는 40개가 넘도록 만들고서 아침이 되어 그만두었고, 실제 크기의 1/5 사이즈인 한복 저고리를 만들었을 때는 가정 선생님께 눈총을 맞았다.
"너 눈 나쁘다는 거 거짓말이지? 재봉틀 바늘땀 1/3 크기로 바느질을 해놓고 눈이 나쁘다고?"
혹, 데님 소재를 손바느질해봤는가? 소재의 특성도 모르고 덤볐다가 미련한 주인 덕분에 오른손 엄지와 중지가 발갛게 퉁퉁 부어 과하게 후숙 된 토마토를 닮아버린 적도 있다. 지겨워진 청바지를 순 손바느질로만 청치마로 만든 미련한 짓을 했던 때문이다. 한동안 동생이 입고 다녀 헛수고는 아니었지만 속으로는 창피하고 겉으로는 뿌듯하고, 아니 바뀌었나? 아무튼.
그러고 보니 미술 점수도 잘 받았었다. 손이 가는 대로 끄적거리고 마음 가는 대로 색을 칠했는데 운이 좋아 그리는 족족 학교 복도에 걸리고 상을 탔었다. 학력 우수상보다 그림으로 탄 상이 더 많은 건 안 비밀이다. 또, 글씨체가 여러 개였던 터라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새 책에 이름을 써주면 친구들이 좋아했었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 타고났다고 생각했었다. 용두사미든 사두용미든 시작도 맺음도 어려운 사람이라 끈기란 나와 별로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고, 다만 재능이 있어 좋은 결과들을 얻었다 생각했으며 뒷받침만 잘해주었음 뭐든 더 큰 성과를 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제집착력이 꽤나 있었다 싶다. 좋아서 했고 더 잘 해내고 싶어 날을 새 가며 붙들고 있었다. 누구도 아닌 내 마음에 들 때까지 하느라 몰입했던 결과였다. 그림에 색을 입힐 때는 숨조차도 일시정지 상태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필사 밴드에 글을 올렸을 때 남겨주신 귀하고 감사한 발자국들♡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금요일에 발행해야 할 글을 월요일이 되는 이 새벽까지 붙들고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는 확실하다. 쇼츠영상을 많이 보면 무기력증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요즘 영상을 너무 많이 봤나 돌아보았고, 봄이 오고 기온이 오르니 몸이 나른해졌나도 생각해 봤다. 그것도 저것도 틀리진 않겠지만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딱! 그때부터였다. 글감을 받은 날. 다시 생각해 봐도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아니다. 그럼 왜? 잘하고 좋아하는 것, 보수를 받고 할 만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기가 팍 꺾였었다. '나 쫌 괜찮은데?' 하던 날들도 분명 있었음에도, 해오던 일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본래의 성격을 살려 꼼꼼하게 잘했었나 돌아보니 아니라는 답이 들렸다. 그럼 그거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생각만 하느라 시작도 못했다. 노트북을 켜놓고도 다른 일만 하고 있었다. 우울감, 무기력증은 물귀신 같다. 아예 안 들어가야 한다.
더는 못 미루는 때에 와서야 손가락을 풀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냥 써보자는 마음으로 자판을 긁다 보니, 나도 잘하는 게 있었네? 다 나열하기 부끄럽지만 이것도 있네? 저것도! 별것도 아닌 것들이 쪼그라진 마음을 다림질해 주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높은 기준에서 내려다보느라 스스로에게 '너 그래가지고 언제 올라올래?' 하는 마음을 슬쩍슬쩍 곁눈질만 하고 있었는데, 잘하는 게 뭐냐는 글감이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붙잡고 정면으로 쳐다보게 했던 것이다. 뼈 때리는 질문에 골절 돼버린 마음은 어떻게 깁스를 해줘야 하나.
'Best one'이 되려 하지 말고 'Only one'이 돼라.
오늘 이 순간만 산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뛰는 방향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뛰어라.
여러 번 보았고 알고 있던 말이지만, 하루 전 천사 같은 지인이 날라다 준 메시지가 시기적절하게 지금의 골절된 내 마음에 깁스가 되어준다. 이제 회복만 하면 된다. 세상에 나는 하나뿐이니까. 모두가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니까.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 영상 출처
https://www.instagram.com/reel/DGsqBxFSyFi/?igsh=MWVzeXU5Y3RiZnkz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