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다 같이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내 머리에 관한 역사도 함께 한 곳이었다. 어느 날은 탈모가 의심된다면서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고, 다행히 심각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치료가 쉽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미용실에 참 감사했었다.
그래서 그때는 머리가 빠진다는 건 '원형 탈모'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탈모가 참 흔한 질병이었다. (그런데도 보험이 안 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괴로운 일이라는 걸 정부는 알긴 하는 걸까)
그런 탈모는 끝이었지만, 또 다른 탈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암이라고?'생각하지 않았을까?
내 항암 주사 조합은 부작용으로 탈모가 있었다. 항암 1차를 시작하고 바로 머리가 우수수 빠지지는 않았다. 아마 이것도 사람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1차를 끝내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머리를 삭발하듯이 밀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내 눈에도 가족들 눈에도 좀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동네 미용실에 가서 야무지게 머리를 밀었더니, 와 충격적이었다.
엄청난 땜빵이 있었다. 땜빵 하나로 이렇게 사람이 띨빵해 보일 수 있다니 대단했다.
항암 2차가 시작되면서 듬성듬성 빠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짧게 잘라 놓은 머리는 마치 샤프심처럼
콕콕 온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긴 머리로 빠질 때는 아마 이런 단점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항암 주사를 맞으려고 베드에 누울 때도, 집에서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도 머리심(?)은 콕콕콕 박혔다.
어느 곳이든 콕콕콕. 그래서 돌돌이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머리카락을 수거했다.
어차피 빠질 애들은 미리 수거하자며 엄마가 돌돌이를 머리에 대고 돌렸다.
진짜 미친데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많이 웃으면서 그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참 마음 여린 여자인데, 이렇게 나와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참 강하구나 싶었다.
아닌가. 엄마라는 종족이 강한 건가. 다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내가 받은 이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싶었다. 그런데 그만큼은 아니어도 오긴 오는 것 같다.
엄마도 나를 필요로 하는 날들이.
머리는 예쁘게 빠지지 않는다. 골룸의 대가리를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듬성듬성하던 머리통이 휑해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별로다.
이 와중에 너무 우스운 건 흰머리는 먼저 안 빠진다는 거다. 끝의 끝까지 버티고 살아 있다.
그래서 참 웃긴 모습을 하고 있다. 검은 머리는 거의 다 빠졌고, 땜빵도 보이고,
그런데 흰머리는 무슨 꽃처럼 고스란히 피어있다.
눈썹이나 아래 털도 빠지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받은 적이 있는데, 당연히 빠진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처럼 많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데, 항암을 시작하기 전 내 친구 '진'이 일본에서 건너왔었다.
참 많은 위로가 되었었는데, 그때 같이 '우정 타투'를 시전 했다.
우정 타투라면 뭔가 팔뚝 같은 데에 새겨야 할 것 같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반영구 눈썹 문신을 선택했다. 참 웃기고 정겨운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내 눈썹만은 항암 부작용에도 온전히 그 모양을 유지해 주었다.
항암을 앞두고 있다면 반영구 눈썹 문신을 강력 추천한다.
머리털은 없어도 눈썹이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거울 앞에서 조금은 더 당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