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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Nov 18. 2024

#11 레시피 글쓰기

- 내 영혼의 수제비

글 쓰는 동지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10월 말 글감 3개를 한꺼번에 와랄라 올린 이후 처음이네요. ^^ 다들 무탈하게 글생활 하고 계신가요? 저는 작년 10월부터 1년 정도 진행한 오프라인 글쓰기 수업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과 깊이 연결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만.. 사람이 허구한 날 감사하다, 행복하다 타령만 하면 인간미가 없으니 오늘은 그 밖의 얘기도 살짝 해볼까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지막 수업까지도 연락 없이 불참하는 사람들이 있어 맥이 풀리더라고요. 당연히 사정이 있어 못 올 수 있죠. 하지만 다들 이런 식으로 노쇼해 버리면 텅 빈 교실에 저만 남게 된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걸까요? 저는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라 내키는 대로 제낄 수가 없잖아요. 그 정도의 책임감은 있는 저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실제로 수업 시간을 착각해서 30분 일찍 간 탓에 오늘 드디어 그 일이 일어나는 건가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성실하게 와 주신 분들이 있었고, 그런 분들에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역시 섭섭한 마음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게다가 교실은 어찌나 추운지 펜을 잡은 손이 곱고 말이 떨리면서 나올 지경이었고요. 사람 없이 썰렁해서 더 그랬으려나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같은 환멸이 뼛속 깊이 밀려드는 순간 하루키 선생의 명언을 되새겨 봅니다. 일일이 상대하다간 몸이 당해내질 못한다. 이런 일들을 마음에 깊이 담고 곱씹어봤자 유병단명의 길이 펼쳐질 뿐이라는 거죠. 역시 대가는 괜히 대가가 아니에요. 심지어 그분은 매일 달리기를 하고 마라톤도 거뜬히 뛰는 체력가지만, 저는 하루 3번씩 재활 스트레칭을 해주지 않으면 거동하기도 어려운 비루한 몸뚱이의 소유자로서 더더욱 이런 데 낭비할 체력이 없죠. 게다가 이 글을 쓰면서 지난 일 년 여의 쓰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이 90% 이상을 차지했네요. 작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럼 하소연은 여기까지만 하고, 오프라인 마지막 수업에서 진행한 따끈따끈한 글감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레시피 글쓰기'입니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음식을 골라 레시피를 준비하고, 이 레시피와 음식에 얽힌 스토리를 한데 엮어서 글을 완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먹는 얘기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죠. 영화나 소설에서도 먹는 얘기를 주제로 삼으면 평타는 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지대한 흥미를 가진 소재라서가 아닐까요? 보통은 살기 위해 먹지만, 사는 게 힘들어서 음식에라도 위로받아야 하는 '먹기 위해 사는 날'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이 주제로 글을 쓰실 때는 레시피도 상세하게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읽는 사람들이 음식에 담긴 사연을 먼저 감상한 뒤, 이어서 그 음식까지도 맛볼 수 있게요.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즐기고, 착실하게 위장으로 넘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몸과 영혼의 양식이네요.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은 행복의 핵심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


실제로 수강생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해보니 음식 얘기에는 사람 얘기가 빠지지 않더라고요.

집에서 순대까지 직접 만드셨던 엄마의 손맛

내 생일을 챙겨주셨던 친구 엄마의 마음 씀씀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감사 인사  


사람과 사연, 음식을 한 상에 올려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한 편을 차려보세요~ 아래는 제가 쓴 예시작입니다.


내 영혼의 수제비


어릴 적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을 발견했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일단 음식 얘기가 들어간 제목에 혹해서 책을 펼쳤고, 그 자리에서 몇 장을 읽다가 아예 사버렸다. 미국에서 펴낸 감동실화 모음집이었는데,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영혼의 닭고기 스프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다. 치킨수프가 아프거나 힘들 때 먹는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comfort food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산다는 건 하루치의 상처가 누적되는 일이다. 어쩌면 마냥 신나고 즐거운 경험보다는 내게 상처를 주는 경험이 더 유의미할 수도 있다. 상처를 받고 격렬한 감정이 일어나면 비로소 행동하게 되는 게 인간의 작동 메커니즘이니까.


내가 9살이었을 때 씨랜드 수련원에 불이 났고, 14살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으며 15살 때는 삼풍백화점이 내려앉았다. 지금도 나는 교각을 건널 때마다 엑셀을 힘주어 밟곤 한다. 혹시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전에 건너가려고. 쫓기듯이 다리를 건너며 34살이 되자 세월호 사건이 터져,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앞에서 300명이 수장됐다. 한 생애에 걸쳐 누적된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내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불안과 분노에 불을 지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이라는 행동에 돌입했다. 이처럼 상처 입는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은 역시나 고달픈 일이라 가끔은 영혼을 치유하는 닭고기 수프가 필요하다.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뭐 하나를 딱 고르기에는 그때그때 땡기는 대로 먹는 타입이라. 하지만 소울푸드를 묻는다면 답은 명확하다. 수제비. 수제비의 추억은 엄마가 만들어준 홈메이드 수제비에서 시작된다. 엄마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쌀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먹었던 지긋지긋한 음식이라며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내게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닌 쫀득한 무언가로 식사를 대신한다는 건 새롭고도 매력적인 경험이었기에, 반죽하기 힘들다는 엄마를 졸라 종종 수제비를 해 먹곤 했다. 수제비는 얇게 떠야 제맛이라고 하지만, 난 우리 집의 투박하고 두꺼운 수제비가 좋았다.


처음으로 밖에서 수제비를 사 먹은 건 중학교 때 베프와 함께였다. 친구가 가족과 함께 가는 맛집이라고 데려가준 과천의 항아리수제비. 그 집 수제비는 사골국물에 콩을 듬뿍 갈아 넣어 고소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여기에 인심 좋게 항아리째 내주는 겉절이까지 척 올리면 임금의 수라상도 부럽지 않았다. 코비드 사태로 한국 가는 길이 막혔다가 3년 만에 들어간 여름휴가에서 다시 과천에 갔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가였다. 그다음 해는 제주도 여행을 하느라 바빠서 과천까지 갈 시간이 없었고. 올해 여름, 3번째 시도만에 간신히 그 집을 찾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과 함께. 내가 14살에 알게 된 추억의 맛을 14살이 된 딸과 공유할 수 있었다. 딸도 '미쳤다, 대박'이라며 만족해서 더 기뻤다.


사십이 넘으면서부터는 음식을 조심하게 됐다. 실은 음식뿐 아니라 매사가 그렇다. 더는 예전처럼 내키는 대로 먹거나 성질을 부릴 수가 없다. 과식하면 소화가 안 돼서 밤새 등을 두드려야 하고, 냅다 성질을 내면 온몸이 뭉치고 결려 침과 마사지로 풀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격을 수양해서가 아니라 강제로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건 황당하고 서글프다. 밀가루는 아침, 기름진 고기는 점심에 먹어야 간신히 소화를 시키면서 살 수 있는 몸이 됐지만, 한 가지 예외는 수제비다. 위장도 그 정도 사정은 봐주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수제비를 저녁으로 먹어도 큰 무리가 없다.


밀가루 네 컵에 물 한 컵, 올리브유 두 숟갈, 달걀 한 개를 깨 넣고 반죽한다. 비닐장갑을 끼고 대충 뭉칠 정도로만 섞은 뒤 커다란 지퍼백에 넣고 발로 자근자근 밟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30분~1시간 정도 자장자장 재운다. 육수까지 내기 귀찮은 날은 마트에서 산 사골국물 두 통에 물 한 컵을 섞어서 팔팔 끓인다. 여기에 국간장 두 숟갈, 멸치액젓 두 숟갈, 마늘 한 숟갈.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반죽을 한 덩이씩 잡고 뜯어 넣는다. 얇게 펴보려고 하지만 역시 두껍다. 하지만 괜찮다. 나한테는 쫄깃한 게 제맛이니까. 밀가루만 퍼먹는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얇게 썬 감자도 하나 털어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인다. 반찬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김치 정도는 곁들인다.


진한 국물부터 한 숟갈 떠 넣은 뒤 수제비를 베어 물면 녹진하게 뜨겁다. 이렇게 뜨거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치아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 만큼 뜨겁다. 신나는 일 하나 없이 미적지근해진 일상에 이 정도 뜨거움은 오랜만이다. 이 한입으로 지금까지 인생에 적립됐던 모든 수제비가 되살아난다. 엄마의 수제비, 과천 항아리수제비, 반죽이 종잇장처럼 얇았던 낙지 수제비, 임진각 참게 매운탕에 들어갔던 얼큰하고 고소한 수제비까지.


이 정도로 다양한 수제비를 즐길 수 있었다니 좋은 인생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소울푸드가 하나 있다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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