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태홍 Feb 18. 2024

네 번째로 뛰는 5km 마라톤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오늘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제21회 동계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네 번째로 뛰는 5km 마라톤입니다.    

  

어제 시골에서 올라왔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7시 1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마라톤 출발은 8시 30분입니다. 온도를 재보니 영하 3도입니다. 그런데 춥게 느껴지는 날씨가 아닙니다. 1월 초 같은 날씨에 마라톤 할 때는 무척 추웠는데, 오늘은 겨울 마라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이미 입춘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오늘 마라톤에 참가하지만 그동안 이일 저일로 바빠 마라톤 준비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버스에 오르자마자 손목 운동, 발목 운동 그리고 목 운동도 조금 해봅니다. 어제는 벼락치기로 5층 계단을 8번 정도 오르내렸습니다. 또 상상으로 운동을 생각하면서 시물레이션을 하면 조금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요 며칠 머릿속으로 그렇게 해보기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마라톤을 상상하면 몸이 후끈해집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열이 나는 것을 그렇게 착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그리고 전철을 기다리면서도 마라톤을 생각하면서 몸을 풀어봅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한쪽에서 달리기 폼을 잡아 보기도 합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그래도 곧 마라톤을 뛰어야 하니 긴장하며, 시도를 해봅니다.  

    

5호선 여의나루역에 내렸습니다. 벌써 역에는 마라톤 참가자들이 가득합니다. 화장실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2번 출구로 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쪽에 서서 우편으로 받은 배번호 라벨을 꺼내 옷에 달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아무것도 없이 달랑달랑 배번호 라벨만 1장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왔습니다. 참 성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 배번호가 걱정입니다. 얼른 가방을 열어서 배번호 라벨 잘 가져왔는지 살펴봅니다. 다행히 깊숙한 곳에서 찾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도 이 라벨이 중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메달도 못 타고 간식도 못 얻어먹고 큰일입니다. 배번호 라벨만 1장 딱 들고 온 학생이 현명합니다.

      

지하철을 나가 광장으로 내려갔습니다. 8시 10분쯤 되었는데 벌써 하프팀은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급히 물품 보관소로 가서 큰 비닐 한 장을 얻어와 겉옷과 가방을 담아 맡깁니다. 날씨는 조금 썰렁 하지만 사람들이 많고 햇빛이 들기 시작하니 추운 줄 모르겠습니다. 커피를 얻어마시고 사방을 둘러봅니다.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어떤 가족은 다섯 명이 참가했습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초등학생 3, 4학년쯤 되는 아들과 딸, 그리고 5살 정도 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배번호를 달고 두발자전거로 5km 마라톤에 도전합니다.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이 함께 온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고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은 배번호가 핑크색입니다. 커플팀이라고 하는데 이런 팀은 반환점에서 손을 잡고 뛰어야 한다고 방송에 나옵니다. 단체로 이름을 걸고 참가하는 팀도 적지 않습니다. 모두 합해서 5천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8시 30분이 되니 하프팀이 출발합니다. 외국인 선수들도 눈에 띕니다. 금발의 여성들도 있고 눈빛이 바다 같은 파란 눈의 여성도 있습니다. 유럽계 백인 남성도 있고 흑인 여성도 보입니다. 동계 국제마라톤 대회라고 하더니 정말로 이 대회는 국제적입니다.   

  

10분 뒤에 10km 달리는 선수들이 뛰어나갑니다. 어떤 모습일까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는데 의외로 반바지 차림의 선수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를 입었습니다. 그 모습에 추위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뚱뚱한 모습이 10km 뛰기에는 무리일 것 같은데 사람들 틈에 섞여 쏜살같이 뛰어갑니다. 젊었을 때 마라톤 선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8시 48분, 출발의 징 소리가 울리고 5km 달리는 선수들이 출발했습니다. 사회자 말이 5km 뛰는 사람들 인원수가 가장 적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일 실속 있게 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합니다. 할 말 없으니 그냥 하는 말이겠지요. 초보자들이고, 10km 뛰기에는 힘에 부치니 5km를 택한 것이지요. 부지런히 노력해서 더 실속 있는 10km를 뛰어야겠습니다. 분위기는 물론 5km가 최고입니다. 아이들도 많고 가족들도 많고 서로 친구들, 연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뛰다 보면 자꾸 마음이 풀어지고 쉬엄쉬엄 걷고 싶은 게 5km 코스입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도로가 좁으니 옆의 갓길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반환점 목표를 15분으로 잡아봅니다. 그럼 돌아올 때 조금 느려지니 17분 정도 합해서 총 32분에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습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아주 깨끗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천가 자전거 도로입니다.  

   

한참 달리다 보니 앞에서 뛰던 여자아이가 덥다며 두터운 윗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옆에서 달리던 아빠가 그 옷을 받아 쥐고 달립니다. 그 아이는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려나 봅니다.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뒤에서 달리던 부부팀에서 여자가 말합니다. “여보, 먼저가. 나는 천천히 갈게.” 남자가 말합니다. “아니 같이 가야지.” 반환점에서는 손을 잡고 뛰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뛰는 모습이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빨리 뛰려고 앞으로 몸을 잔뜩 구부린 모양입니다. 땅을 쿵쾅쿵쾅 박차고 나갑니다. 사뿐사뿐 뛰어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뛰는 자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달립니다. 차선 반대쪽에서는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역시 마라톤은 힘들구나 하고 뛰고 있는데 내리막길이 나타났습니다. 기쁜 마음에 속도를 내봅니다. 돌아올 때는 이곳을 올라와야 하니 힘들겠습니다. 멀리 앞에서 물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시계를 언뜻 보니 벌써 15분이 넘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나니 이곳이 반환점이 아닙니다. 반환점은 100m쯤 더 가야 합니다. 힘이 빠집니다. 

     

반환점을 겨우 돌았습니다. 지금까지 17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되돌아가는 길은 더 힘드니 이번 5km는 35분을 넘길 것 같습니다. 아까 내려왔던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숨이 가빠서 미리부터 겁을 먹고 걷기 시작합니다. 앞서 달리던 사람도 걷습니다. 언덕을 다 오른 뒤에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숨이 벅차 다시 걷습니다.

     

아무래도 전반에 너무 무리한 것 같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뛰었으나 또 걷습니다. 또 달리다가 누군가 걷는 사람이 보이면 같이 걷습니다. 뛰고 걷고, 뛰고 걷고, 뛰고 걷고 모두 5번 정도 반복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처음에 너무 힘을 빼지 않아야겠습니다. 걸으면 기록에 치명적입니다. 물론 이러면 마라톤도 아닙니다. 걷는 것부터 고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출발부터 골인까지 걷지 않고 죽 달릴 수 있지 하며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숨이 가빠지고 다리는 쳐질 뿐입니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마지막 1km 지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뒤에서 뛰어오던 사람들이 자꾸 추월해 갑니다. 앞서서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있어 그 뒤를 쫓아서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멈춰서 걸으니 부딪칠 뻔했습니다. 또 뒤를 따라갈 다른 사람을 찾다가 도로에 그려진 흰색의 차선을 보았습니다. 그렇지 이 길만 보고 달리면 언젠가는 결승선에 도착하겠지. 언젠가는. 


이제 백색 차선만을 바라보며 달립니다. 경기 기록은 뒷전입니다. 이미 많이 쉬어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4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5km 뛰면서 포기는 말도 안 됩니다. 포기해 봤자 옷이고 가방을 마라톤 결승선 부근에 맡겼으니 끝까지 뛰어가야 합니다. 멀리서 커다란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기가 결승선인가?     


힘들게 뛰고 있는데 왼쪽 옆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최 측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임태홍 씨 힘내세요.”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배번호에 이름이 적혀있으니 그것을 봤습니다. 한 사람은 뛰어와 달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뛰는 모습이 한심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자라면 큰일입니다. 뛰는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는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해봅니다. 깃발 흔드는 장소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결승선이 아닙니다.      


다 온모양이라고 생각하고 힘껏 뛰었는데 결승선은 한참을 더 가야 합니다. 힘만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응원한다고 멀리까지 나와서 그런 모양인데 더 지치고 힘듭니다. 또 뛰어야 합니다. 한참을 뛰어가니 멀리 골인점이 보입니다. 힘껏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뜁니다. 쿵쾅쿵쾅 땅을 박차며 뜁니다. 무릎 상태가 걱정이지만, 빨리 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뿐입니다. 


39분! 누군가가 오른쪽 길가에 서서 외칩니다. 아마도 지금 들어오는 5km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이번 마라톤은 거의 40분이나 걸렸습니다.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추최 측 요원이 21분이라고 크게 외칩니다. 9시 21분 도착이랍니다.   

  

한쪽 테이블로 가서 생수를 받고 간식을 받았습니다. 간식을 받는데 배번호에 체크를 합니다. 체크하는 요원에게 배번호 라벨에 21이라고 써주세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들어온 시간을 잊어먹을지 모르니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48분에 출발해서 21분에 들어왔으면 12분 + 21분은 33분입니다. 아니 뭐가 잘못되었지? 거의 40분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상으로 33분 걸렸습니다. 지난번 마라톤 때 34분 30초 걸렸는데 기록이 단축되었습니다. 어쩐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뛸 걸 괜히 시간 계산을 하고 거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옷을 입고 간식을 먹고 있는데, 연단에서는 수상식을 하고 있습니다. 5km 남자는 300명 정도 뛰었는데 1등은 17분 20초입니다. 2등은 외국인이 차지했습니다. 5km 여자는 350명 정도 참가해서 1등은 21분 걸렸습니다. 10km 남자는 1,000명 정도 참가했는데 1등은 32분 36초입니다. 2등은 안드리안이라는 외국인입니다. 10km 여자는 400명 정도 참가했는데 1등은 루시라는 외국인으로 39분에 들어왔습니다. 21km 정도 달린 하프코스는 남자가 1,000명 정도 참가해서 1등은 카일이라는 외국인으로 1시간 12분 31초로 들어왔습니다. 여자는 200명 정도 참가해서 1등은 1시간 23분 43초 걸렸습니다. 2등, 3등은 외국인입니다. 2등과 3등은 주최 측 착오로 서로 상이 바뀌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연단 아래서는 필리핀에서 온 가족들이 자기 딸이 2등이라고 외칩니다. 2등을 해서 상을 받는 것도 기쁜데 연단에서 주최 측이 우왕좌왕 헤매는 것이 재미있는지 가족들 사이에서 웃음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결승선에서는 아직도 계속 마라토너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프코스 참가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과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보고 있으니 마라톤 대회장의 진정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그 자체로 숭고한 예술입니다. 2시간 가까이 뛰어온 모든 것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고귀하고 찬란한 순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것이 힘들 때 얀테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