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면서 가장 어려운 숙제 하나가 있다.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보다 더 곤욕스럽고 귀찮은 설거지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방 싱크대는 목욕재계를 기다리고 있는 그릇들로 켜켜이 쌓여있다. 숙제 안 한 아이가 자꾸 엄마를 피하는 것처럼 냉장고 주변만 어슬렁거릴 뿐 주방 저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오후 6시가 되면 밀리고 밀려둔 설거지가 시작된다. 폭풍 같은 설거지가 한바탕 끝이 나면 저녁을 준비한다. 음식을 만들면 도마와 칼은 기본이요 양념을 덜어내기 위한 숟가락과 프라이팬 등 자꾸 재생산되는 설거지감을 마주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먹지 않고서야 계속 나오는 설거지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을 걷는 기분을 만든다.
봄이 막바지에 이르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귀찮다고 설거지를 방치하면 소리소문 없이 불쾌한 손님이 기어코 찾아오고야 만다. 살림에 1도 모르고 결혼한 그 해 여름 탑으로 쌓아둔 설거지 때문인지 날파리 떼에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바퀴벌레의 생존력만큼 강한 날파리의 번식력은 보이는 대로 잡고 잡아도 멸종시킬 수 없었던 한계를 마주한 날이었다.
곧 여름이 온다. 기온이 올라가면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듯이 날을 세우게 된다. 방심은 금물이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면 되돌아오기 힘든 날파리 떼의 강을 건너게 된다. 지금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둔다. 지금까지 결과가 좋았던 정보만 공유해 본다.
1. 설거지는 귀찮아도 바로 한다.
2. 싱크대 하수구망에 걸려있는 음식물은 즉시 비운다.
3. 싱크대 주변 물기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4. 음식물 쓰레기는 극소량이어도 집 밖으로 방출시킨다.
5. 바나나는 당분간 사지 않는다.
6. 아이스크림 껍질은 물에 한번 씻어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히든카드가 있다. 바로 초파리 퇴치제이다. 초파리 트랩, 초파리 끈끈이 여러 가지 다 써봤지만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스프레이 형식으로 된 퇴치제였다.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싹 뿌리면 눈에 띄게 개체수가 확 줄어든다.
아직 5월이지만 반팔을 입는 일이 잦아졌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불안한 마음에 새벽배송으로 초파리 퇴치제를 주문해 싱크대 하부장에 쟁여놓는다. 그리고 설거지를 제 때 해야 하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여름 한 철 모두 날파리와의 전쟁에서 압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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