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저녁
아침 6시, 워치가 손목 위에서 드륵 드륵 진동을 울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거실로 나가면 테이블과 정면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테이블 위에는 남편이 새벽 늦게까지 먹다가 남겨진 야식 잔해물이 고스란히 널브러져 있다. 먹고 치우고 자면 얼마나 좋을까. 뒤처리는 나의 몫이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테이블을 마주할 때마다 그가 원망스럽다. 치킨 뼈, 과일 조각, 견과류가 밤새 굳어 그릇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게다가 잠들기 직전 마무리로 먹은 컵라면의 남은 MSG 국물 냄새는 속을 니글거리게 만든다. 아침에 대한 로망이 식어버린 채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잘 정돈된 클래식한 주방, 고급져 보이는 커피머신, 유명 커피브랜드 로고가 심플하게 박힌 하얀 머그잔 아래로 추출되는 에스프레소로 시작하는 흔한 SNS의 아침과는 먼 현실이다.
남편의 하루 시작은 아침 8시 50분이다. 알람이 울리면 모든 준비는 10분 내로 끝이 난다. 퉁퉁 부은 얼굴과 피곤한 기색을 내뿜으며 눈썹 휘날리게 출근을 한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면서도 왜 늦게까지 먹다 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맥주 캔을 따고 한 모금만 마신채 잠들어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침에 눈뜨면 기억은 나는지 치워놓은 싱크대 위 맥주캔을 보며 아까워 한탄을 토로한다. 이미 마음속에 잔소리의 따발총은 장전 됐지만, 가족들이 잠든 늦은 새벽 혼자만의 시간이 꿀같이 소중한 휴식임을 알기에 마음속에 내려놓는다.
그는 하루에 삼시 중 두 끼를 먹는다. 늦은 기상으로 아침을 거르고, 치솟는 물가는 점심을 간결하게 만든다. 부족한 끼니는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을 시작으로 눈이 감길 때까지 채워 먹는다. 집밥으로 차려진 식사는 그를 만족시킬 수 없다. 자극적이고 기름진 메인메뉴가 꼭 갖춰져야만 그의 입과 배를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딱 하나 소주와 맥주는 필수다.
오늘도 남편은 배달 어플을 켜고 손가락이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메뉴 선정에 고심한다. 매일 시켜 먹는 배달음식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 삼시세끼 차려내는 돌밥처럼 매일 밤 배달되는 메뉴도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하루 중 그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가장 편안한 시간이기에 그의 야식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다. 지친 하루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마음껏 누리길 바란다. 단, 건강은 지키면서...
퇴근이 임박하는 시간, 남편에게서 한결같은 카톡이 온다.
"자기야, 우리 오늘은 뭐 먹을까?"
"치킨, 마라탕, 곱창, 감자탕, 피자, 초밥,......... 골라봐."
(오빠, 10년 넘게 유지하던 잔근육이 사라지고 있어. 그게 유일한 매력이었는데.....)
#한달매일쓰기의기적 #야식 #맥주 #치킨 #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