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구성원은 다양하다. 기숙사가 있기 때문에 멀리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서도 오는 학생들이 있다. 지역도 다양한데 전공도 다양하다. 전공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은 다르다. 그런 성격이어서 그 전공을 선택한 것인지, 그 전공을 하다 보니 그런 성격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공에 따라 대략 어떤 성향일 것이다라는 느낌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온 트럼펫 전공의 J학생이 있다. 순박하고, 솔직하고, 잔머리라고는 전혀 쓸 줄 모르는 전형적인 금관악기 전공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J는 선생님을 하늘같이 모시며 깍듯하게 예의를 차린다. 내가 작은 짐이라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른 달려와 짐을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민다. 한 번은 교육청에서 요청받은 연주를 끝내고 함께 고기 뷔페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수저부터 반찬까지 선생님 것이라며 알뜰살뜰 챙겨주는 모습에 반했던 적이 있다.
지나가던 복도에서 쓰레기를 주운 J는 '이거, 어디에 버리지?(경상도 사투리, 블루베리스무디? 의 억양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라며 쓰레기 통을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똑 부러진 여학생이 '그거 일반 쓰레기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J는 복도에서 곧장 1반으로 들어가 쓰레기를 버렸다. 1반 담임선생님께서는 'J야, 너 왜 우리 반에 쓰레기 버려?'라고 물으셨고, 2반 학생이었던 J는 '이거 1반 쓰레기라고...' 하며 말을 흐렸다. 쓰레기를 줍던 착한 J는 남의 반에 막 들어가 쓰레기를 버리는 학생이 되고 말았다.
졸업연주를 했을 때도 생각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시를 보는데 정시가 1월에 있다 보니 12월에 하는 졸업연주 곡은 보통 입시곡이다. 전공별로 하루씩 날을 잡아 연주하는데, 학창 시절 마지막 연주다 보니 연주자들이 함께 합주나 합창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입시생이 따로 맞춰볼 시간은 없으니 가벼운 곡을 골라 당일에 맞춰보고 부담 없이 연주한다.그날, 관악기 친구들은 캐럴로 신나게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J가 큰소리로 '메리 크리...'라고 외치다가 혼자만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같이 연주한 친구들은 웃다가 급히 인사하며 들어간다. 아마 연주 전 아이들끼리 '우리 이런 거 할까?'라는 이야기가 오고 간 모양인데, J는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였으리라.
졸업연주 마지막 곡을 하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큰절을 하는 아이들
노래를 좋아하던 J는 연습실에서 트럼펫 연습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다 선생님께 걸렸다. 선생님께서는 핸드폰을 압수하고 교무실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 준다고 했다. 점심시간,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음악과 교무실로 온 J는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비록 음이 꺾이고 나갈지언정 최선을 다하는 녀석. 교무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녀석을 졸업시키기 아쉬운 선생님들은 유예를 권하곤 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종종 학교에 놀러 오곤 하는 아이. 순박한 그 모습 그대로 나이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