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사랑했던 나에게,
<파도>
힘껏 내달린 끝에
부서져 버릴 것을
어찌 모르겠소
그대 차디찬 마음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것을
어찌 모르겠소
다만 어찌할 수 없었던
그 마음들로
부서져도,
그댈 향해 힘껏 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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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내가 일기장에 쓴 마지막 시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의 마지막은 왜 이 시여야만 했는가. 그때의 난 어떤 사람이었는가.
사실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시인이 꿈이었다. 그 꿈은 백일장에 나가서 처참히 무너졌다. 꽤 낭만이 가득한 아이였지만 그만한 재능은 없었다. 백일장에서 나눠준 탄산음료에 빙빙 개미가 꼬이는 것을 보다가 돌아오던 날, 난 재능이 없구나 깨달았다. 내가 다시 시를 쓴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대학교 2학년 꿀이라고 소문나 들었던 수업이 있었다. ‘세계 종교 입문’. 종교학 입문에 가까운 교양강좌였다. 웃음소리가 독특해 기억에 남았던 교수님은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수업이 유명했던 것은 강의력이 좋고 흥미로운 수업 내용 외에도 ‘시 쓰기’라는 이른바 ‘개꿀과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보는 기말고사를 제외한 나머지 과제는 모두 시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시를 써서 평가를 받는다니, 긴 작문에 지친 인문대생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단 몇 줄로 과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열광하고는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몇 번 시를 쓰자, 대충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던 시 쓰기에 다들 진심이 되어갔다. 처음엔 구색만 맞춘 다른 이의 시들이 점차 그 창작자를 닮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문학을 동경해 인문대에 진학한 나에게 시 쓰기는 정말로 인문학도가 된 듯한 짜릿함을 주는 일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시를 써 대기 시작했다. 대단한 말을 담은 것은 아니었다. 멋져 보이는 문장이 떠오르거나, 인상 깊은 책을 읽었을 때 시는 지적 허영에 가득 찬 학생이 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언어였다. 놀랍게도 시를 쓰던 취향은 그 수업을 듣고 나서도 1년이 넘게 이어졌다. 나의 일기장에는 종종 시가 채워지고는 했다. 어쩌면 난 시인들의 아픈 운명, 인문학자의 굶주림, 가난한 사랑 같은 것들에 심취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나 같아 보였다.
파도라는 시는 그렇게 오랜 시간 시를 쓰다 처음으로 내 마음을 담아 쓴 시였고 그렇게 마지막 시가 되었다. 이상하게 저 시를 쓰고 난 이후에 난 시를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이 시를 쓴 22살, 난 많이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날 울게 만든다고. 그 말은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정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번번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할수록 남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난 나의 공허함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고 느끼곤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애써봐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으므로. 예를 들자면 남몰래 마음에 품었던 그 사람이 내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 내가 역사학을 전공해도 정작 현재의 나조차 알 수 없다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그즈음에 나는 질문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의 상태에 쉼표도, 마침표도, 느낌표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물음표만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시는 그냥 그런 날들을 살아가다가 떠올랐다. 시를 떠올린 날도 3시간의 통학을 하며 멀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난 이 길을 택했을까.’ 같은 사소하지만 어쩌면 큰 질문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던 참이었다. ‘왜 이렇게 힘들어도 계속하는 거지?’ 같은 생각도 했다. 불현듯 어지러움을 비집고 ‘그래도 나 이거 좋아하잖아’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무의식이 답을 한 건지, 그간 듣던 전공 수업에서 세뇌당한 건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모든 게 명확했다. 내가 부서지면서 이 삶을 살아내는 이유, 내가 아플 걸 알면서도 모든 것에 희망을 거는 이유가 그냥 나였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가 생각났다. (굳이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아마 멀미를 하고 있어서 뱃멀미 기억이랑 겹쳤던 것 같다.) 난 덜컹이는 버스에 몸을 싣고서 바다를, 난간에서 내려다보던 파도를 떠올렸다.
자려고 누우면 나의 창가에는 늘 파도가 쳤다. 그 파도는 매양 부서졌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것들에 나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언제나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으니 멈출 수도 없었다. 파도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아마 파도도 그렇지 않을까.
시를 쓰면서 놀랍게도 먼저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마음들로 달려가겠다는 말이었다. 아마 이 문장이 내가 찍은 시의 마침표, 고통스러운 젊음의 느낌표일 것이다.
파도 속에서 그렇게 나의 시는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