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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계 Feb 07. 2024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리뷰

민족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타난 민족의 문제     


     그동안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전쟁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일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역시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다른 것을 모두 배제하고 한국전쟁과 남북 관계를 민족의 차원에서만 접근한 영화는 아직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글쓴이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는 것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화면의 화려함과 잔혹함, 그리고 슬픈 사연들이 가슴에 와닿아서 눈물을 있는 대로 쏟고 나왔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쓴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역시 보는 사람의 시각과 이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남북 관계를 철저하게 민족의 차원에서만 다루려고 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차원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수성을 잘 살려서 작품의 구성을 그렇게 잡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제 영화를 따라가면서 그것이 가지는 구성적 특성과 장치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형제와 어머니와 약혼녀다. 형제는 한 어머니의 피를 받은 존재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형제를 있게 한 모태로써 형제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며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형의 약혼녀다. 힘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핍박과 억압을 받다가 결국 비극적 삶을 마치고 마는 존재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소재로 하여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영화 속의 전쟁에서는 소련이나 미국 등의 외세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국전쟁은 남북의 민족적 문제임을 감독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네 사람의 캐릭터가 영화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작품 전체를 이해해 보도록 하자.


    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로 나온다. 보고들은 것을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인 것이다. 자신의 가슴에 품은 한이 오죽하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며, 얼마나 할 말이 많았으면 입으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되었겠는가? 그러나 비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힘없는 어머니이지만 아들 형제에게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존재이다. 여기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바로 우리의 조국이다. 세계열강의 위세에 눌려 자신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연약한 조국이 어머니로 형상화된 것이다. 영화에서 어머니인 조국은 아버지라는 국력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인하여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존재이다. 남쪽의 조국은 미국의 원조와 지배를 받으면서 겨우 살아가는 상태였고, 북쪽의 조국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소련과 중국의 지배와 협력 아래 살아가는 상태로써 남북이 모두 외세의 힘에 휘둘리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상징하는 어머니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형제는 이념과 외세 때문에 갈라지고 다퉈야 하는 남과 북이 형상화된 존재다. 동생이 의용군에 끌려가게 되자 형도 동생과 함께 의용군에 들어가게 된다.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으나 그것은 성사되지 못한 채 둘 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동생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몸이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인 데다가 약골이어서 힘도 없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기를 지닌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만년필을 좋아하며 공부만 하는 사람이 바로 동생이다. 동생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영어단어를 암송하고 대단히 휴머니즘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형은 동생과 매우 다르다. 식구들의 생계도 책임을 지면서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면서 곧 결혼할 약혼녀까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형은 연약한 동생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의용군에 끌려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동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의용군에 들어간 형은 전쟁 영웅이 되어 훈장을 받음으로써 그에 대한 포상으로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따라서 형이 전쟁을 하는 것은 이념도 아니고 적개심도 아니며 다른 무엇도 아니다. 오직 힘없는 동생을 군대라는 억압된 상태에서 놓여나게 함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형은 사선을 넘나들며 전쟁 영웅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광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전황은 바뀌었고 그 와중에 동생과는 이별하게 된다. 동생이 남쪽의 방첩대에 의해 죽은 것으로 안 형은 원한을 가지게 되었고, 북쪽의 깃발부대를 이끌면서 처절한 복수를 하게 된다. 반드시 살아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던 형제는 이제 삶과 죽음이라는 건널 수 없는 경계를 가슴에 끌어안고 반세기 동안 만나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화의 주인공 형제는 바로 남과 북이라고 보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존재는 바로 형의 약혼녀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와 함께 꾸려나가면서 생계를 이끌어 가는 착하디 착한 존재이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서 양쪽 진영에 이용당하다가 약혼자의 오해로 인하여 슬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형의 약혼녀는 바로 이 땅의 민중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북쪽에서 내려오면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그쪽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남쪽에서 올라왔을 때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1950년에 겪었던 한국전쟁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무고하게 학살당한 민중들의 피해 역시 막대했음을 이 영화에서는 형의 약혼녀로 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말 못하는 조국과 힘없는 민중, 그리고 이념이 갈라놓은 남과 북이 어머니와 약혼녀와 동생과 형으로 형상화되면서 민족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던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여 민족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감동과 함께 매우 높은 작품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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