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어원
밀가루, 메밀가루, 감자, 칡 녹말, 보리 등을 반죽하여 얇게 떼 낸 다음 끓는 장국에 넣어 익힌 음식을 수제비라고 한다. 수제비는 고려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시기는 알기 어렵다. 수제비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이니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데다 서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의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조선 시대까지도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으므로 양반들의 접대 음식일 것이라고 하지만, 수제비는 콩가루를 제외하고는 가루를 낼 수 있는 곡물이면 무엇으로나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볼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처럼 수제비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민 음식의 하나이지만 지금까지는 그 말의 어원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조선 중종 12년인 1517년에 최세진(崔世珍, 1473~1542)이 지은 �사성통해(四聲通解)�에 ‘슈져비’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말에 대해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麪䬣�(면걸달)’을 설명하면서 민간에서는 이것을 ‘수저비(水低飛)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 여러 기록에서는 수제비에 해당하는 한자 표기가 상당히 많다. 15세기 중반인 1459년에 나온 '산가요록(山家要錄)'에서는 수제비를 나화(剌花) 또는 수라화(水剌花)로 적었고, 16세기의 문헌인 ‘정청일기(政廳日記)’에서는 시제비(是齊飛), 수제비(手齊飛), '운두병(雲頭餠)', ‘수제비(水劑非)’ 등으로 한 기록들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18세기의 문헌인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의 문헌에서는 박탁(餺飥), 혹은 박탁(䬪飥)으로 쓴다고도 했다. 또한 19세기의 문헌인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는 불탁(不托)이라고도 했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불탁(弗托)이라 했고, '정조실록(正祖實錄)'에서는 불탁(不托)이라고도 했다. 이런 기록들은 대부분이 한자어로 중국의 음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제비의 핵심을 바탕으로 한 어원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일부 주장에서는 수제비의 어원은 손으로 접는다는 뜻인 수접(手摺)이라고 설명한다. ‘슈졉이’가 ‘슈저비’로 되었다가 다시 ‘수제비’로 변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어떤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 표현을 어원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어서 정확한 근거나 기록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한 ‘摺’의 뜻을 ‘접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욱 수긍하기 힘들다. 수제비는 뜯거나 잘라서 만드는 것이지 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摺’이란 글자에는 자르다, 끊다 등의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이 뜻으로 설명했다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수제비라는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음식의 핵심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뜨더국’으로 부른다고 하니 손으로 뜯어 만드는 점을 중심으로 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북쪽이나 남쪽의 어느 지방에서도 이런 식의 이름이 없는 점으로 보면 과연 이것이 수제비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수제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먹는 음식’의 하나라는 점에 있다고 한다면 손으로 뜯는다는 것 보다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상태를 중심으로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제비는 반죽한 것을 숙성시킨 뒤에 얇게 펴서 적당한 크기로 뜯은 다음 끓는 장국 같은 데에 넣어 익혀서 먹는 것을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음식을 조리하는 데에는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것이 수제비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얇게 떼 낸 수제비를 처음 넣었을 때는 물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일정 시간 물이 끓어서 익으면 위로 떠 오르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은 수제비 외에는 나타나는 음식이 없으므로 이것을 그것의 본질적 특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위로 떠오르는 것이야말로 수제비가 완성되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하나인 수제비의 핵심적 특성으로 보고 이를 이름에 적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재의 자료로 볼 때 수제비라는 명칭이 나타난 시기가 15세기 경인데, 물 위에 떠 오른다는 점을 수제비의 핵심으로 보아서 이름을 지었을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19세기에 저술된 문헌에 나타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위에서 잠깐 살펴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서는 수제비의 한자어 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 ‘麪䬣�(면걸달-麵은 밀가루이고, 䬣과 �은 중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글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수제비라는 뜻을 가진다. 수제비 걸, 수제비 달)’을 설명하면서 민간에서는 이것을 ‘수저비’로 부른다(俗訓水低飛)고 했다. ‘水低飛’는 우리식 한자 표현인데, ‘물 아래에서 떠 오른다’라는 뜻이니 수제비의 특성을 아주 잘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飛(날 비)는 ‘날다’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지만 ‘떠 오르다, 올라간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글자는 수제비가 익으면 위로 떠 오른다는 본질적 특성을 나타내기에 아주 적합한 것이 된다.
손으로 뜯는다는 것을 수제비의 본질로 보지 않고 익으면 물 위에 뜬다는 현상을 그것의 본질로 보았다는 또 다른 증거는 ‘물수제비’라는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둥글고 얄팍한 돌을 물 위로 튀기어 가게 던졌을 때 그 튀기는 자리마다 생기는 물결 모양을 지칭하는데, 이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물수제비 뜬다’라고 한다. 물결 모양이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물수제비의 본질이다. ‘물’이란 말에 수제비를 연결시킨 이유가 바로 물 위에 떠 오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수제비에는 ‘뜬다’라는 말이 붙는 방식의 표현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수제비는 한자어인 ‘수저비(水低飛)’를 어원으로 하지만 우리식 한자어이기 때문에 순우리말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규경(李圭景)이 자신의 저서에서 水低飛라고 한 것은 이 시대만 해도 대부분의 기록을 한자로 썼기 때문이다. 익으면 위에 떠 오르는 음식이란 말은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주는데, 이런 뜻을 생각하면서 수제비를 먹는다면 좀 더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