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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은 내게...

by 날마다 하루살이

엄마가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계시게 되었다.

뇌졸중이었다.

한 번은 다행히 잘 넘기셨는데 두 번째 발병으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던 언니가 엄마를 돌봐 드렸고 언니가 결혼한 뒤로 내가 돌봐 드려야 했다. 언니가 결혼하던 당시 난 대학교를 막 졸업한 상태였지만 밑에 두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어린 동생들과 엄마를 두고 결혼하게 된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만 범벅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언니가 신혼 여행지에서 보내온 '윤정아~'로 시작되는 짧은 엽서 한 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함이 가득 담긴 엽서였다. 그때부터 언니는 내게 항상 미안함을 품게 된 것일 테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각자 앞에 주어진 인생의 길을 밟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나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본다. 선택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나도 나의 인생을 선택했다. 엄마 곁을 지키는 것이 맘 편했기에 한 의지적인 선택이었고 그렇게 해서 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엄마와 떨어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하자는 남자에게 어렵게 꺼낸 나의 의지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 남자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또 이어졌다.


내가 결혼한 후에 언니는 우리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엄마를 만나러 오는 길. 그 목적지가 우리 집이 된 것이다. 빈 손으로 오는 날은 없었고 늘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엄마가 계실 땐 엄마 몫의 먹거리였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나의 큰 아이를 위한 빵이 이어졌다. 그 빵들이 요즘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성심당 빵이다.


내가 성심당 빵을 지금처럼 가끔 접할 수 있는 것은 언니를 통해서이다. 성심당은 그렇게 내게 왔다. 언니를 통해서. 형부를 통해서.


때론 소보로도 되고, 롤케이크도 되고 페스츄리도, 소시지빵도 되었다. 팥앙금 빵도 되고 찹쌀이 든 빵도 되었고 샌드위치도 호두빵도 되는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수없이 변신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언니와 형부의 마음이었다. 형부는 구하기 힘든 빵(우리 집 큰 아이가 좋아하는 '보문산 메아리')을 위해서 오픈런을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내게 성심당은 그런 관심과 사랑의 결정체이다. 언니와 형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빵을 매번 받아먹으면서 더 따뜻해지는 이유이다. 그만 사 와도 된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마음은 표현해야 편안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난 고맙게 받고 맛나게 먹기로 했다. 단지 어떤 마음에서 출발한 빵인지 잊지만 않기로 한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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