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not afraid of greatness
"Be not afraid of greatness. Some are born great, some achieve greatness, and some have greatness thrust upon them."
"고귀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이들은 고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고귀함을 성취하며,
또 어떤 이들은 고귀함이 그들에게 찾아가기 마련이오."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Twelfth Night)』의 2막 5장에 말볼리오가 읽는 편지 속 구절이다. 마리아는 마치 올리비아가 쓴 것처럼 위장한 러브레터를 작성하여 정원에 떨어뜨렸고, 말볼리오는 우연히 그 편지를 주워서 자신이 올리비아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말볼리오는 이 구절을 읽고 자신이 '고귀함'을 부여받은 사람이라 생각하여 우쭐해져서, 노란색 양말과 십자 대님을 하고 나타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시작한다.
이 구절은 사람이 고귀함, 혹은 위대함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식을 표현한 말인데, "Some are born great,"는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 능력, 조건 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왕족이나 귀족, 혹은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Some achieve greatness,"는 어떤 사람들은 부단히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서 위대함을 이룬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끈기와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들,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And some have greatness thrust upon them."은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고귀한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 의해 갑자기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거나, 갑자기 책임과 리더십을 떠맡게 되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인생의 다양한 길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운명, 노력, 우연이라는 세가지 축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사랑'을 고귀한 것, 위대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을 얻기 위한 이 희극의 등장 인물들에게도 세 가지 축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얽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폭풍우에 배가 난파되어 서로 죽었다고 생각하면 살아간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에게 삶은 가혹한 운명이었다. 오르시노 공작은 올리비아에게 구혼하지만 매번 거절당하여 세자리오(바이올라가 세자리오로 남장함)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려 하는데, 올리비아는 오히려 세자리오에게 반해버리고 바이올라는 오르시노 공작을 사랑하게 되는 운명같은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장을 한 바이올라가 오르시노 공작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세자리오의 뛰어난 말재주였다. 누군가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중에 세바스찬이 올리비아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세자리오(바이올라)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희극에서 우연과도 같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올리비아의 집사인 말볼리오는 고지식하고 허영에 가득찬 꼰대같은 인물이라 누구하나 좋아해 주는 이 없다. 요즘 말로 비호감 캐릭터이다. 올리비아를 짝사랑하는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정원에서 발견 편지를 통해서이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가짜편지(마리아가 올리비아의 필체로 쓴 말볼리오에게 구애하는 연애 편지)를 통해 올리비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편지 요청에 따라 노란 양말과 십자 대님을 하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매우 우스꽝스럽다. 모욕받고 상처입고, 감옥에 갇히는 말볼리오는 우리 시대의 약자의 모습을 닮아있다. 그나마 약자들에게 기회는 우연한 순간에 찾아올 뿐이고, 그 때 찾아온 기회도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말볼리오 캐릭터는 여러가지로 성찰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말볼리오가 정원에서 발견한 편지에서 "고귀함을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그는 얼마나 벅찼을까, 자신의 삶에도 고귀한 순간이 찾아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어서 이어지는 구절에서 "어떤 이들은 고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고귀함을 성취하며, 또 어떤 이들은 고귀함이 그들에게 찾아가기 마련이오. 그대의 운명이 두 팔을 활짝 펼쳤으니, 심혈을 기울여 그것을 힘껏 끌어안으세요. 그리고 앞으로 그대가 오를 자리에 걸맞게 초라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새로이 태어나세요..."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볼리오는 얼마나 크게 고양됐을까. 이 구절은 말볼리오에게만 전해진 말이 아니다. 낙심의 순간이 찾아올 때 나에게 힘을 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한편, 안토니오가 오르시노의 병사들에 의해 끌려가면서 세자리오(세바스찬의 쌍둥이 바이올라)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세자리오는 알 턱이 없다. 안토니오는 세바스찬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기고, 이 때 안토니오가 세바스찬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바이올라는 오빠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모든게 바이올라에게는 우연한 상황이었다. 결국 세바스찬은 올리비아에게 구애를 하고 그는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어떤 문제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행동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십이야'는 원래 크리스마스부터 12일동안 축제를 벌이는 영국의 풍습을 말한다. 우리 삶에서 운명, 노력, 우연이라는 세 축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야말로 축제와 같은 것이다. 우리 삶이 운명으로만 이루어 진다면 우리가 매순간 기울이는 부단한 노력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 될 것이며, 노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라면 우리 삶이 얼마나 퍽퍽하고 재미없을까. 또한 우리 삶이 우연으로만 작동하는 것이라면 기회만 엿보고, 천방지축으로만 날 뛰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은 열심히 땀흘리는 사람을 얼마나 조롱할 것인가.
우리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너는 얼마나 고귀하게 태어났는가. 네가 지금 기울이는 노력으로 인해 너는 충분히 고귀해지고 있으며, 그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서 고귀한 우연들이 종종 생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