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will come of nothing
『리어왕』은 읽을 때마다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가장 마음에 새겨지는 문장 하나가 있는데 바로 "Nothing will come of nothing."이다. 이 대사는 1막 1장에 나오는 대사로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말하게 한다. 자신에게 가장 큰 사랑을 표현한 딸들에게 왕국의 땅을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두 언니(고너릴과 리건)은 아첨을 하면서 왕이 흡족할 만큼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아무런 아첨과 가식 없이 "Nothing."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리어왕은 분노하면서 막내딸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다고 말한다.
리어왕: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세습으로
고너릴이 하사 받은 땅보다 크기가 값어치,
기쁨 또한 못지않은, 짐의 고운 왕국의
방대한 삼분의 일 남으리라. 자 이제,
막내지만 내 즐거움, 네 사랑과 인연을
프랑스는 포도로 버건디는 우유로 맺자는데
언니들 것보다 더 비옥한 삼분의 일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말하라.
코델리아: 없습니다, 전하.
리어왕: 없습니다?
코델리아: 없습니다.
리어왕: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speak again."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다시 말해라.
코델리아의 명분은 "마음은 입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딸로서 아비에 대한 사랑은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말로써 아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어서 "전하를 도리에 따라서 사랑하고 있을 뿐, 더도 덜도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왕의 화를 불러 일으킨다.
여기서 "Nothing will come of nothing."의 의미를 좀 더 살펴 보자. 비극의 전체 주제를 담고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우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문장은 어떤 행위 없이는 원하는 결과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리어왕은 딸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요구한다. 언니들은 왕의 요구에 아첨의 말로 사랑을 증명해 보이면서 왕을 흡족하게 한 반면, 막내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한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지, 아첨의 말로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 코델리아가 할 수 있는 말은 "Nothing."뿐이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말이 아닌 침묵이고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장면을 보면서 왜 코델리아가 그렇게 말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앞서 두 언니가 왕 앞에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아첨하는지 직접 보았기에 코델리아는 언니들이 하는 말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의미나 진실을 전달하는 말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리어왕이 말에 집착하는 이유는 말이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코델리아는 말은 거짓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진실과 사랑은 말로 표현될 수 없고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임을 강하게 믿고 있다.
왕과 두 딸(고너릴과 리건)에겐 눈에 보이는 "thing"이 중요할 뿐이다. 사랑도 아첨의 말이나 기타로 눈에 보이게 드러나야 하며, 그런 사랑을 보여주었을 때 댓가로 왕국의 토지(thing)를 물려주려 한다. 그들에게 "nothing"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에 가치도 없는 것이다. 결국, thing에 집착한 두 딸은 자신들의 숨겨온 욕망을 드러내고 결국 아버지를 배신하고 만다. 반면 코델리아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nothing(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삶의 진실이라는 것은 nothing의 옷을 입고 있고 있다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딸들의 대조적인 모습은 이 비극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의 하나라고 본다. 코델리아의 진실한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전달되고, 두 언니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있는 것으로 전달되니 말이다.
비극의 원인을 찾자면 코델리아보다 리어왕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리어왕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실성한 채 광야를 헤매기로 작정했으니 말이다. 리어왕의 사고 체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Nothing will come of nothing."(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이다. 왕으로 살면서 자신에게 "없음(nothing)"이라는 것은 있어본 적이 없었다. 왕으로서의 권위, 방대한 영토, 신하들의 충성심, 세 딸들 등 그에게는 모두 없음이 아닌 있음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코델리아의 "Nothing"이라는 대답으로 그는 처음으로 없음의 세계관을 접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세 딸 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막내지만 내 즐거움) 막내딸로부터 그 말을 들어야 했으니 그의 절망과 좌절은 매우 컸을 것이다. 한편으로 딸이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도 딸의 사랑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코델리아가 말하는 nothing이 어떤 것인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speak again.)
코델리아에게서 들어본 이유는 더욱 더 청천벽력이다. 자신이 결혼하게 되면 그 사랑이 온전히 아비에게 갈 수 없다고 대답하니 말이다. ("제가 만일 결혼하면 제 서약을 받아들일 그분은 제 사랑과 걱정과 임무의 절반을 가져갈 것입니다. 전 분명코 언니들처럼 아버님만 사랑하는 결혼은 절대로 않겠어요.") 왕은 막내딸의 결혼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하게 되면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더 깊은 상처와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리어의 세계관에서는 "있음"만이 있어야 하는데, 코델리아가 덧붙여 말하는 대답은 아버님만 사랑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즉 아버님만을 위한 사랑은 "없다"고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우리들의 삶도 리어왕의 모습을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한다 해도 매일매일의 삶은 "있음'을 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가치있어 보이고 싶고, 자식에게 공부를 시키면서도 어떤 성과를 얻고 싶어 하고, 좀더 고급져보이고 있어보이는 외양을 추구한다. 이것들은 절대로 nothing일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nothing으로 허물어져 가는 것을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타인이 내가 가진 것이나 내 삶을 nothing이라고 말한다면 이를 용납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추구하고 끝까지 사랑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으니, 이런 이들로 인하여 우리 삶이 고귀하게 빛난다고 생각한다. 마치 2막 4장에서 바보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부하면서 이득을 챙겨서 떠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은 폭풍이 불어도 남아서 왕을 지키겠다고 하는 충성심이 보이는 대목이다.
바보: 이득을 챙기려고 봉사하고
겉만 보고 따르는 자.
비 오기 시작하면 짐 싸들고
폭풍 속에 널 버려도
난 기다려, 이 바보는 남는다고.
바보는 보통 아무런 지식과 지혜가 없는 존재(nothing)로 생각하지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진실을 밝혀준다. 이 대목에서 "Nothing will come of nothing."을 찬찬해 고찰해 보니, "Nothing(왕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은 바보(nothing)로부터 나온다" 즉, 삶의 가치는 이해 타산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고, 진실은 가장 힘들 때(비가 오거나 폭풍이 불때) 깨닫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들, 우리 삶을 더 소중하고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더 고귀하게 바라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