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는 꿈으로 이루어진 존재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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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 희곡 마지막 작품, <Tempest(폭풍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 희곡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4막 1장에서 프로스페로가 하는 말이다. 물론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좀 더 성찰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꿈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우리의 작은 삶은 잠으로 끝납니다.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stuff"는 물질이나 재료를 뜻하고 "dreams"은 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다. 물질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지만 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물질은 언제가는 없어질 유한하고 일시적 성질을 갖고 있는 반면, 꿈은 영속적이다. 두 상반되는 속성을 가진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언젠가는 끝날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 가능성을 믿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꿈은 지금 당장은 실체가 없을 지라도 실현 가능성을 주는 희망과도 같은 것이기에 인간은 그 꿈을 붙들고 살아가며, 그런 꿈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려 한다. 꿈이 없는 물질로만 된 존재라면 우리 삶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할까. 셰익스피어는 우리 삶이 유한하기에 그것을 "little life(작은 삶)"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짧고 덧없는 이 인생은 바로 잠으로 끝나게 된다고 하면서 인간의 죽음을 "잠"에 빗대고 있다.


"우리는 꿈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경계의 모호함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꿈과 같은 이상과 현실적 존재 사이에 걸쳐있다고 볼 수 있다.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 존재가 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언젠가는 없어질 수도 있는 얼마나 불안한 존재란 말인가. 우리의 본질적 자아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본질이라고 믿었던 것, 혹은 확고한 경험들도 결국은 흔들릴 수 있는 덧없는 것들이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서 이루어 낸 것, 밤낮으로 고민해 봤던 것들, 오늘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들은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렇게 우리 삶이 영속적이지 않고 변화무쌍한 것이기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좀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타인과의 관계라든지, 진실에 가까운 삶의 가치들 말이다. 이 희곡에서 셰익스피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용서와 같은 가치 말이다.


프로스페로가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에게 배신당하고 외딴 섬에 유배될 때 그는 복수의 기회를 얻고자 하지만 복수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할 것인가의 딜레마에 빠진다. "더 드문 행위는 복수가 아닌 미덕에서 비롯된다(The rarer action is in virtue than in vengeance.)"고 하면서 그는 결국 복수심을 내려 놓고 용서을 하기로 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기에 그는 과거의 고통을 끝내고 미래를 회복하기 위해 용서를 선택하지만 그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즉 자신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용서는 그 주변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첫 단계가 되기도 한다. 동생 안토니오는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만 그가 동생을 포용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용서는 이처럼 어지러웠던 질서를 회복해 주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용서를 힘들어할까. 보통 사람들은 용서를 자신의 약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는 결코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 공감, 지혜 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용서는 인간의 가장 성숙한 상태에서 행할 수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극의 배경이 폭풍우(tempest)라는 조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식의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생기거나 갑작스레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 "폭풍우가 지나갔다"는 말을 한다. 잘 이어져 오던 질서정연한 것들이 붕괴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폭풍우의 시간이 지나면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이 정리되기도 하고, 복잡한 갈등의 실타래가 풀리기도 하는 경우들 말이다. 폭풍우 속에서 여러가지로 심적 갈등과 방황을 겪기도 하지만 이 혼란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처럼 폭풍우는 혼란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재탄생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 극에서도 인물들은 폭풍우를 통해 고립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도 하며 화해와 용서로 손을 내밀고 있다.


"tempest"라는 단어에서 "tempestuous(감정이 격렬한, 폭풍이 치는)"의 의미를 유추해 보자면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에 주목해서 이 극을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외부에서 이는 자연적인 폭풍은 인물들의 내면의 폭풍(갈등)과 평행하여 벌어지니 말이다. 프로스페로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고, 안토니오와 알론조는 죄책감과 자기변호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게 여러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들이 우리 삶에서 발생한다. 무질서와 혼란, 순간의 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질서와 정화, 영속의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삶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덧없이 꿈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기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성찰해 보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결국 내면의 폭풍우를 견디고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다음 구절을 다시 읽어보니 그 맥락이 다음과 같이 읽혀진다.


우리는 꿈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우리의 작은 삶은 잠으로 끝납니다.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우리는 폭풍우에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덧없는 존재이고 우리의 보잘것 없는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 폭풍우를 잘 견디고 일어나면 변함없이 이어질 영원한 것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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