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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13. 아버지의 동아전과, 표준전과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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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도 쯤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는 세계문학전집이 없었다. 이웃집에 나보다 한살 아래의 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들어왔다. 교육열이 높았던 이웃집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해 큰맘 먹고 사주신 것이다. 그 부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동네에서 소꿉놀이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밖에서 놀다 지치면 그 친구 집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소공녀, 왕자와 거지, 톰소여의 모험, 큰바위 얼굴 등 이야기의 세계로 빠지게 됐다. 한번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어두컴컴해지고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가 나거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세계문학전집은 시골이 세상 전부였던 아이에게 좀 더 넓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디 그것 뿐인가.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서사가 갖는 힘과 의미를 서서히 알게 됐고, 권선징악의 의미, 용기와 배려, 자긍심, 정의 등의 의미들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통해 체득하게 됐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국민학교 저학년때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이야기와 더불어 나는 성장해 갔고 어느새 나 스스로도 비슷한 방식의 글을 쓰고자 노력하게 됐다. 글쓰기 시간에 특히 그 저력이 발휘됐다. 재미가 없으면 내가 먼저 읽기 싫으니,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싶어 할까 고민하던 순간도 있었다.


우리 집에 전집이 들어온 건 방문판매로 집에 찾아온 어떤 책 도매 상인을 통해서였다. 계몽사 출판사의 백과사전 전집이었다. 세계문학전집이 아니라서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우리집에 전집이 들어오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나보다 다섯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는데, 짐작에 오빠가 부모님께 조르지 않았나 싶다. 우리집처럼 전집을 갖추고 있지 않을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책 판매상들이 시골집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집을 판매했다. 당시 형편에 시골 분들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자식들만은 공부를 잘 시켜서 출세시켜보겠다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의 마음에 모두 다 부응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구입해준 전집이나 책 만큼은 마르고 닳도록 보았던 것 같다. 놀거리가 많지 않아 심심해지면 계몽사 백과사전을 들춰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좋아하는 부분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아버지는 매 학기마다 전과를 꼬박꼬박 잘 사주셨다. 마을에 서점이 없어서 아버지는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셔서 오일장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전과를 사오시곤 했다. 당시에 유일한 참고서는 동아전과, 표준전과뿐이었고 공부할 때마다 전과를 자습서 삼아 공부하곤 했다. 아버지가 전과를 사오신 날에는 책을 몇번이고 어루만지다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전과를 사다 주시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압박을 전혀 주지 않으셨다. 필요한 책이 있어서 부탁드리면 말없이 사다 주실뿐, 공부나 성적에 대한 어떤 강요도 하지 않으셔서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교육관은 살짝만 앞서 나가는 방식이셨던것 같다. 거의 쉬는 날없이 매사에 열심히 사는 분이셨으므로 그 삶의 방식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일상의 삶처럼 공부도 그냥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임을 자연스레 배운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내 아이들을 아버지처럼 교육시키지 못할 때도 있어서 살짝 반성이 된다. 내 자식들 일일때는 왜 그렇게 조금 더 앞서가려고 하는지 말이다.


아버지께서 사주신 소중한 전과, 나는 학교 숙제도 전과를 통해서 했고, 주말고사, 월말고사, 기말고사 준비도 전과를 통해서 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할 시험들이 자주 있었던 시절이었다. 또한 유튜브나 스마트 기기, AI 등을 활용하는 지금의 학생들과 달리 오직 하나 있는 전과를 활용해 공부했으니, 그 자습서는 매우 든든한 도우미 선생님이라 할 수 있었다. 전과 표지의 소년 소녀 모델들을 한참동안 보면서 이 친구들은 어디에 사는 어떤 아이들일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부록으로 딸린 낱말사전도 알차게 이용했다. 낱말을 공부한 날에는 동생과 끝말잇기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얼마나 반복해서 보았을까. 때로는 전과 속의 지식 내용을 넘어서, 그 페이지와 페이지 속 글씨체, 그림 등을 통째로 기억한다. 그뿐이 아니다. 전과의 어떤 내용을 공부했을 때의 공기의 향, 그 때 있었던 일들까지 고스란히 꽤 오랫동안 기억했던 것 같다.


이 시절의 전과를 기억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곰곰히 생각한 적이 있다. "지식은 힘이다"라고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나는 이후 내 삶과 직업에 밑거름이 될만한 지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 것은 분명하다. 80년대의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그 시대의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 시대의 교육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과연 그 시대의 우리는 암기를 통한 주입식 교육만 받은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전과를 상기하면서이다. 과학 시간에 생물에 대해 배울 때는 솔이끼, 우산 이끼 등을 전과를 통해 자세히 익히고, 산과 들에 솔이끼와 우산이끼를 캐러 돌아다니곤 했다. 물론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채집하는 숙제를 내 주셨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채집한 장소를 상기하면서 왜 그곳에 솔이끼가 살고, 우산이끼가 사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환경 정화와 토양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이끼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며 같이 채집을 하러 간 친구들과 지구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당시에 배운 내용과 경험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지구사랑탐험대를 통해 과학을 배우도록 한 이유도 나의 경험이 믿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식 암기는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어느 누가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면서 가만히 있겠는가. 그 지식을 토대로 또 다른 지식을 응용해내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도 한다. 또한 그 지식을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아버지가 사주신 전과가 그 시절의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준것처럼 말이다.


"배우기는 쉬워도 익히기는 어렵다"는 공자의 말 지식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몸에 익히고 실천하는 배움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시절의 배움을 단순한 지식 습득이었다고 단언 할 수 없다. 때로는 단순한 지식들을 채워 나가면서 그것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그 시절에도 상당히 많았으며, 현재의 우리 교육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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