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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Dec 04. 2023

[르무통 X 경주] 마음을 따라 걷다.

신라대종 – 대릉원 돌담길 – 첨성대 – 계림 – 월성 – 동궁과 월지



경주의 다른 모습, 다른 느낌

여행지도 나이에 따라 달리 보이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십 대 배낭여행자가 느끼는 인도와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여행자가 느끼는 인도가 같을 리는 없을 것이다. 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들판에 구르는 돌 하나, 길가의 기와 한 장도 하찮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문화재로 가득한 경주. 다시 찾은 경주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찾았던, 수학여행지 경주와는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경주는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찾는다. 찾을 때마다 같은 패턴으로 여행을 하지만 지겹거나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경주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좋다, 그냥 좋다’이다. 내가 사는 파주에서 경주까지의 거리가 400킬로미터가 넘는데, 텅 빈 황룡사지와 안개 가득한 분황사의 모전탑이 떠오르고 보고 싶어 새벽녘 먼 길을 나설 때도 있다.


안개가 가득한 텅 빈 황룡사지


경주에서는 주로 걷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때로는 뒷짐을 지고 때로는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며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걸어서 저녁 무렵에는 텅 빈 황룡사지를 찾고, 아침이면 대릉원을 찾는다. 산책은 주로 신라대종이 있는 태종로에서 시작한다. 신라대종은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을 재현한 종이라는데, 높이가 3.66미터, 평균 두께가 20.3센티미터, 무게는 무려 20.17톤이 나간다. 신라 경덕왕 때 만들기 시작해 혜공왕에 이르러 완성한 이 종은 1,200여 년 동안 서라벌의 아침을 깨웠고, 저녁의 고단함을 위로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종을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마음을 짐작해 보지만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 종소리를 상상하며 대릉원 방향으로 걷는다. 


대릉원의 소나무 숲 사이를 걸으며

경주를 고도답게 하는 것은 대릉원을 위시한 왕들의 고분군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세계 최고의 고분 도시다. 죽은 왕들의 무덤 사이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산책한다.  노서·노동동 고분군을 비롯해 대릉원이며 황오리 고분군, 황남리 고분군, 내물왕릉, 오릉 등 무덤들 사이에 도시가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경주 사람들은 무덤들 사이에서 아침을 맞고 산책을 하고 체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전혀 그로테스크하지도 않고 기괴하지도 않다. 죽음 역시 우리네 무덤덤한 일상의 한 부분이려니…… 이렇게 깨우쳐 준다.

대릉원에 들어서서, 달항아리를 반으로 잘라 엎어 놓은 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의 곡선 사이를 느리게 걸어간다. 그러다가 능의 겹치며 만들어 내는 어느 햇빛의 음영 앞에서는 오래 서 있는다. 마치 도자기나 조각품을 감상하듯, 조금은 진지한 자세로 말이다. 가끔 새소리가 날아들어 내 발등 위에 떨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뜀틀처럼 이마를 짚고 간다. 나는 대릉원의 소나무 숲 사이를 걸으며 스스로가 오래된 경주 사람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햇빛의 음영이 드리워진 대릉원


대릉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능이 미추왕릉이고, 미추왕릉을 지나면 황남대총이 나온다. 대릉원에서도 가장 큰 고분이다. 표주박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남북으로 120미터, 동서로 80미터에 이르는데, 북쪽보다 남쪽 봉분이 더 크다. 그래서 봉분이 높은 남분은 왕이, 북분에는 왕비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남분에선 남성의 부장품이, 북분에서는 여성의 부장품이 대거 발굴됐고 금관도 출토됐다. 하지만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누구의 무덤인지 특정할 수 있는 부장품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릉이 신라 초기 박 씨 왕들의 고분이라면, 대릉원의 고분들은 김 씨 왕들의 무덤이다. ‘마립간’의 무덤인 셈이다. 대릉원과 도로를 건너 마주하고 붙어있는 노서·노동리 고분군 역시 대릉원과 궤를 같이한다. 


분홍빛 핑크뮬리와 노란 해바라기

대릉원에서 길을 건너면 첨성대다. 지금 핑크뮬리가 한창이다. 핑크뮬리는 미국 중서부가 원산지인 벼과 다년생 식물로 9~11월에 핀다. 우리 이름은 분홍쥐꼬리새다. 줄기 끝에 피는 꽃이 분홍색 쥐꼬리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우리 이름이 더 예쁘다. 핑크뮬리는 분홍색으로만 보이는 건 아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짙은 분홍색에서 연한 분홍색 때로는 은색으로까지 보인다. 부드러운 역광 상태에서 보면 색다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핑크뮬리의 꽃말은 고백. 그래서일까. 꽃밭을 거니는 사람 중에는 유난히 젊은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또 다른 꽃말로 ‘부귀’도 있다.


이른 새벽의 핑크뮬리 / 핑크뮬리와 함께한 르무통 메이트(블랙)


핑크뮬리 옆에는 노란 해바라기밭이 펼쳐진다. 분홍빛 핑크뮬리와 노란 해바라기, 첨성대와 계림의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오직 가을 경주에서만 볼 수 있다. 이 풍경 전체를 보고 싶다면 월성에 오르면 된다. 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있던 자리인데, 이곳에 오르면 대릉원과 황오동 등 경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눈에 보이는 곳이 신라가 천 년 동안 번성했던 자리다. <삼국유사>는 “신라는 전성기에 서울이 17만 8936호(戶)였고, 1,360방(坊), 55리(里),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성안에 초가집 한 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서로 닿아 있었으며,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고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더라도 호당 평균 4~5명이면, 8세기 당시 경주의 상주인구는 70~90만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마어마한 대도시다. 지금의 경주 인구 25만 명보다 3~4배는 많은 인구가 살았다.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이나 로마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번성했다는 것이다.


날이 저문 후 계림으로 가는 길

월성에서 내려오면 계림이다.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회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으로 만든 궤짝이 걸려 있었다. 뚜껑을 여니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고 이 사내아이의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고 했다고 한다. 


첨성대를 등지고 계림으로 가는 길 / 최갑수 작가가 여행 내 함께한 르무통 메이트(올리브그린)


나는 날 저물 때 다 되어서는 노서· 노동리 고분군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첨성대를 등지고 계림으로 가는 길, 내가 항상 서 있는 자리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능 뒤로 지는 노을과 황오동 집들의 기와지붕이 어울려 신비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능의 곡선은 또 얼마나 유려하고 아름다운지. 


이곳에 서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이 능들, 참 예쁘다.’ 요렇게 감탄하며 우두커니 서 있다. 무덤들이 예쁘다면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해 질 무렵이면 이 무덤들이 보는 이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해가 능 뒤로 슬금슬금 넘어갈 때쯤이면 능 주변으로 불이 들어오는데, 느긋한 능의 곡선과 어우러져 절묘한 풍경을 그려낸다. 게다가 뒤편 선도산의 곡선까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깊고 그윽한 한 장면은 사진 찍는 이의 밝은 눈이 아닌 무지렁이 여행객도 감탄하게 만든다.


신라의 밤을 걷다

밤에는 동궁과 월지를 걷는다. 동궁은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 월지는 동궁 안에 있는 연못이다. 동서 200미터, 남북 180미터, 둘레 1,000미터로 그다지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연못인데,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조망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나는 지금 월지에 비치는 동궁을 바라보며 서 있다. 노을이 떠나간 지는 오래다. 밤이 와서 어둠이 짙고 그만큼 별이 밝다. 조명을 받은 동궁의 처마가 환하다. 신라 천 년의 밤은 어떠했을까, 어떠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어느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성덕여와 때의 신라로 가리라고 생각한다. 집보다 더 많았다고 하던 탑, 그 위로 해가 떠오르던 풍경을 가만히 서서 보고 싶고, 성덕대왕 신종의 깊고 우람한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가던 신라인들의 모습과 만나고 싶다. 만약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설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아마도 그 마음은 지금보다 더 깊고 더 그윽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희미한 피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가 진 후 월지에 비친 동궁 풍경


- 정보 : 황리단길도 찾아보자. 경주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독립서점 등이 몰려 있다. 저녁 무렵부터 많이 붐빈다. 황리단길의 진가네 대구갈비(054-772-1384)의 돼지갈비찜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계림 옆은 교동마을이다. 이곳의 교리김밥(054-772-5130)은 달걀지단을 듬뿍 넣은 김밥으로 유명하다.






[르무통 X 경주] 시리즈 작가 소개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아주 오랜 여행자다.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이번 생이 약간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지금까지『밤의 공항에서』『잘 지내나요, 내 인생』『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등을 펴냈다.

모두 여행에 관한 혹은 생에 관한 책들이다.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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