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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어, 명품!

사람이 명품이어야 할 것을...

by 정미선

대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한 후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배, 얼마 전에 내가 알마니 선글라스를 샀는데, 진짜 멋있어요."

"알마니? 그게 뭐야?"

"선배, 그 유명한 명품, 조르지오 알마니를 몰라요? 정말???"

네,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이 되도록 명품 브랜드라는 것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유행하던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 한 번 신어본 적 없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학교에 갈 차비가 없어서 강의를 빠지는 날도 간간이 있었지요.

식구들끼리 외식은커녕 짜장면 한 그릇 배달시켜 먹을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던 그 가난한 생활 속에서 '명품 브랜드'라는 단어는

적어도 저의 세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창피와 부끄러움,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던 그때서야 저도 명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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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그렇게 비싼 명품들이 많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지요.

라디오 방송 작가 생활과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면서 본 주변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적게는 한두 개, 부유한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멋을 내는 사람들이 아주 흔했습니다.

무척 가깝게 지내던 친구조차도

"우리 나이엔 이제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되는 거야." 하며

얼마 전에 구입했다는 프라다 가방을 제게 자랑해 보였습니다.

조금 자존심도 상하고, 어쩐지 서글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핸드백 하나에 몇백만 원, 몇천만 원 하는 명품을 들고 다닐 여유가 되지 못했거든요.

주변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멋진 명품 브랜드 제품을 입고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저도 사실 2부럽기도 하고 욕심도 나긴 했습니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어도 뛴다고, 저도 한창땐 그 명품이란 게 갖고 싶어졌지요.

핸드백이나 옷 같은 건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카드 지갑이나 화장품 따위,

혹은 거금을 들여 신발이나 구두를 구입하는 등 저도 명품 브랜드를 찾던 시절도 있었지요.

굳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으쓱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 때문에 다들 명품을 찾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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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남편과 스크린 골프 연습장에 다닐 때였습니다.

거의 매일 저희와 같은 시간에 와서 연습하던 한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작고 아담한 체구에 얼굴도 참 예뻤지요.

하지만 그녀에게 눈길이 간 건 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마주칠 때면 저절로 그녀의 차에 눈길이 갔지요.

아주 큰 벤츠가 그녀의 자가용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BMW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핸드백은 디올, 샤넬, 프라다, 루이비통... 매번 바뀌었구요, 옷도 골프 의류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급인

옷만 입고 왔습니다.

직업이 무얼까, 부모님께선 무슨 일을 하실까... 얼마나 돈이 많길래 명품이 아닌 것이 없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명품을 둘러서 그런지 더욱 예뻐 보이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그녀가 자신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예쁜 얼굴과 표정으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온갖 육두문자와 욕설, 비속어들을 내뱉는 것이 아닙니까?

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예쁘고 부러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겉은 명품으로 아름답게 치장했지만, 아직 사람이 명품이 되긴 멀어 보이는,

조금 천박한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오십이 넘은 이 나이가 된 지금, 저의 옷장과 화장대엔 명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런 욕심이 안 생기네요.

제게도 절은 날 한때엔 명품이 갖고 싶어 안달인 적도 왜 없었겠습니까?

'왜 나는 명품 하나 갖지 못하는 처지일까...' 스스로를 딱하게 여기던 어리석은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다 지난 이야기들입니다.

이젠 누가 알아주는 명품이 없어도 그만이다 싶은 생각이 큽니다.

그리고 사실, 멋지게 뽐내며 들고 다닐 마땅한 약속 자리도 없습니다.

저는 제 남편을 보면서 아주 근사한 사람이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제 남편은 명품에 대한 욕심이 하나도 없구요, 명품 자체를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센스 있게 보이는 모습을 보면, 그의 존재 자체가 명품처럼 빛이 나거든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핑계처럼 들려도 괜찮고, 구차한 변명 같아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빛나고 우아한 데에 꼭 값비싼 명품이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거든요.

그래도 어쩌다 진짜 멋진 명품백을 갖게 된다면

"어머머머머... 이거 정말 내가 가져도 돼?"라며 호들갑을 떨 게 분명하겠지요.

저는 마음의 수련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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