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잔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열도 슬금슬금 오르더니 기어코 39도를 넘어섰다. 밤새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에 가보니 요새 유행이라는 A형 독감이라는 진단과 함께, 정신을 차려보니 21만 원짜리 영수증 ― 검사비용, 치료제, 수액 등 ― 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서고 있었다. 치료제와 수액을 맞아도 단번에 나아지지는 않았다. 약 기운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기운이 떨어진 건지 계속 졸려서 주말 내내 비몽사몽으로 지냈다. 지독한 감기였다.
다행히 주말이라 장모님이 마침 집에 와 계셔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아 주셨다. 아기와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저 문밖으로 들리는데 나만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늘어져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아픈 와중이라도 무언가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에 보탬이 되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체력도 정신력도 없었다. 몸과 함께 정신도 약해졌는지, 나 자신이 짐짝처럼 느껴졌다.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오래된 환자가 느끼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 것 같다고.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 된다면 지금 이 무기력함, 미안함, 쓸쓸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것도 기약이 없는 병이라면 정말 힘들 것이다.
약이 뒤늦게 들었는지 몇 번의 깊은 잠에 들어 땀을 흥건히 빼고 나니, 열도 내리고 몸도 이내 개운해졌다. 다행스럽게도 기약이 있는 병이었고, 나는 다시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팠던 며칠을 곰곰이 곱씹어보니, 그런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환자 체험을 한 셈이다. 한번 감기에 걸리고 나면 다시 같은 감기에는 잘 걸리지 않듯이 이번 경험은 나에게 예방접종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환자가 되지는 않으리라. 건강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감기처럼 성가신 것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교훈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