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전문은 앞 부분의 영문 요약 후에 나타납니다.
“Isn't Geoje always warm?” This is the question I hear most often from friends in big cities like Seoul or Tokyo. Maybe because Geoje is an island at the southern tip of Korea, they imagine it as a place with warm sunshine all year round. That idea is partly right—and partly wrong.
If you just look at the numbers, it’s true. Geoje is clearly warmer than Seoul, especially in winter when the average temperature can be more than 5 degrees higher. So calling it “a warm southern place” isn’t completely wrong. But after living here for over three years, I have learned that Geoje’s weather has a special feel that can’t be explained by numbers alone.
The one thing that defines Geoje in every season is the wind. But it’s not like the sharp, cutting wind that rushes between skyscrapers in big cities. This wind comes across the open sea—it’s stronger, more constant, and unblocked. Because of it, winter sometimes feels colder than the actual temperature, even though the thermometer says otherwise. But this wind gives us something truly valuable: clean air.
If I had to pick the best thing about living in Geoje, it would definitely be the clear skies with almost no dust. Thanks to the constant sea breeze, it is rare to see the sky covered in smog. In the city, I used to check air quality apps every morning, worry about opening the windows, and hesitate to go outside. That stress has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here. (Though I still have to watch out for pine pollen around May!)
Geoje is a bit warmer than Seoul, more humid in the summer, windier year-round, and snow is rare. But more than anything, it is a place where simply breathing feels like comfort. A place with beautiful skies and stunning clouds. That’s the face of Geoje I have seen and felt over the past three years.
서울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의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아마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늘 온화한 햇살만 내리쬐는 곳으로 상상하는 듯하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데이터만 놓고 보면 그 말은 사실이다. 서울과 비교하면 거제는 확실히 따뜻하며, 특히 겨울철 평균 기온은 5도 이상 차이가 나니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3년 넘게 살아보니, 숫자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거제만의 독특한 기후가 있다. 대도시의 삶에 익숙했던 내가 그간 산중턱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면서 지내 온 거제의 사계절, 그리고 그 날씨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산 아래 거제 시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의 경험과는 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거제의 봄은 서울보다 조금 늦게, 하지만 더 성큼 다가온다. 두꺼운 외투를 옷장 깊숙이 넣는 시기가 훨씬 늦다. 아마 겨울 끝자락의 찬 바람이 쉽게 물러가지 않아서 인 것 같다. 그러나 봄 햇살은 그 질감부터가 다르다. 더 쨍하고 날카로운 느낌이라, 잠깐의 외출에도 모자와 선글라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된다. 서울보다는 일주일쯤 먼저 벚꽃이 만개하는 데, 바다와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 봄을 더욱 멋스럽게 만들어준다.
이른 봄, 거제는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바로 '바다안개'이다. 아직 차가운 바다와 따스한 공기가 만나 만들어내는 자연의 마법일까. 섬 전체가, 혹은 우리 아파트 단지가 있는 높은 산 중턱이 짙은 안개에 잠기는 날이 종종 있다. 창문을 열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봄날 가끔 나타나는 이 구름 속의 풍경이 주는 감동을 쉽게 잊을 수 없다.
거제의 여름은 서울 못지않게 덥고 습하다. 여기에 섬이라는 특성상 태풍의 길목에 놓이는 경우가 잦아, 바람과 비의 위력은 상상 이상일 때가 많다.
내가 사는 집은 해발 300미터가 넘는 산 중턱에 있다. 덕분에 한여름에도 시내보다 기온이 2~3도 낮고,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온다는 장점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집이 꽤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이곳 거제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이제 에어컨 없는 여름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그런데, 거제 여름의 진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봄날의 구름 속과는 달리 여름엔 습도가 매우 높아진다. 산 중턱이라는 위치 탓에, 여름이면 구름이 산을 넘어가다 우리 동네에 머무는 날이 많다. 문자 그대로 '구름 속에 갇히는' 날들이다. 봄날 감동스러웠던 구름 속의 나날들이 1-2달 정도 계속되면, 구름 위에서 걷는다는 로맨틱한 감성보다는 구름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으로 답답해진다. 창밖은 온통 하얗고, 집안은 온종일 눅눅한 기운에 휩싸인다. 이 기간만큼은 제습기가 쉴 틈 없이 작동해야 하고, 가끔 난방을 돌려주고 환기도 자주 해주어야 한다. 높은 산 중턱에 사는 사람으로서 거제의 여름은 그야말로 애증의 계절. 두 달 정도는 어디 건조한 곳으로 피신을 가는 것이 상책이다. 참조로 산 중턱이 아닌 낮은 동네의 습도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거제의 여름에는 여전히 멋이 있다. 여름의 대표적인 꽃인 수국 축제가 있고, 근처 여러 섬들에서 비교적 시원한 바람과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다.
서울의 가을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거제의 가을은 여름 내내 습기와 싸운 이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과도 같다. 쨍하고 파란 하늘 아래, 습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상쾌하고 청명한 공기만이 가득하다. 내가 지인들에게 하는 말, ‘2달 정도만 힘들면 나머지 열 달은 너무 살기 좋아요!’
물론 거제의 바람은 가을이라고 잠잠하지 않다. 문득문득 와닿는 서늘한 바람 덕에 멋진 트렌치코트와 얇은 스웨터, 스카프를 두를 수 있는 진정한 '멋의 계절'이 펼쳐진다. 봄과 마찬가지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도 바다안개는 찾아와 섬을 신비롭게 물들이기도 한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흐드러진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계절, 바로 거제의 가을이다.
"거제에서는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곳으로 이주한 후 3년간, 함박눈이라 부를 만한 눈이 내린 날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지난겨울에도, 이곳은 흩날리는 눈발을 잠시 몇 시간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도시에서는 처음 잠깐 내릴 때를 제외하고는 눈이라면 교통 지옥을 가져오고 지저분한 도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막상 보지 못하니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보니, 거제의 겨울 풍경은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늘 푸른 동백나무와 사철나무들이 겨울의 찬 바람 속에서도 약간 바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꿋꿋하게 제 빛을 지켜낸다. 사계절 내내 어느 정도는 푸른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거제의 큰 자산이다.
어느 계절이든 빼놓을 수 없는 거제의 본질은 '바람'이다. 대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바람과는 그 결이 다르다. 막힘없는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더 강하고, 더 꾸준하다. 이 때문에 겨울철 체감 온도는 가끔 영하의 기온처럼 낮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바람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안겨준다. 바로 '깨끗한 공기'이다.
거제 살이의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단연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다. 사계절 부지런히 부는 해풍 덕분인지,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던 날은 기억에 거의 없다. 대도시에 살 때 아침마다 미세먼지 앱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창문 열기를 망설이며 외출을 걱정해야 했던 그 시절의 스트레스. 거제에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해방되었다. 물론 5월 정도에는 송홧가루가 날려 유의해야 하지만. 거제에 오면서 휴대폰에서 미세먼지 앱을 지웠을 때의 그 해방감은 이 삶의 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여름엔 조금 더 습하며, 바람이 강하고, 하얗게 내리는 눈이 귀한 곳. 그리고 무엇보다 숨 쉬는 행위 그 자체가 위안이 되는 곳. 하늘과 구름이 멋진 곳. 이것이 대도시의 삶에 익숙했던 내가 3년간 보고 느낀 거제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