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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May 29. 2021

그는 항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Freiburg, Germany

그는 항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로 아무 일도 없는 양 웃음을 내뿜을 때면, 그가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해주고 싶었다. 그는 다른 독일 친구들에 비해 살가운 데가 있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이면 그의 집 발코니에 앉아 그가 만든 파스타를 먹으며 포르세코를 비웠는데, 와인 한 잔에 그가 건넨 말린 생강을 입에 털어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그의 집은 그들로 항상 붐볐다. 나 또한 종종 그 무리와 어울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취기가 오른 우리는 왁자지껄 소리를 내어 웃었고, 젊음은 오늘만 있는 양 순간을 즐겼다. 그가 있어야만, 프라이부르크가 생명을 얻었다.


처음 석사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내게 도시는 그저 녹색의 푸름으로 다가왔다. 인구 이십 만, 학생 삼 만, 자전거 오만 대. 독일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도시는 푸르른 녹음을 내게 내줬다. 나는 이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탔다. 트램과 버스가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도시의 풍경을 두 개의 페달 아래 두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다. 학교가 정해준 기숙사에서 캠퍼스로 향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자전거로 십오 분, 워낙 자전거 길이 발달한 도시였기에, 그 길들은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이른 아침이면 오늘의 수업을 확인했다. 마누엘라 교수의 초국가주의와 문화, 유디트 교수의 방법론 따위를 읊으며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 또한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터였다.


우리는 종종 자전거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도시가 조그만 까닭인지, 삼십 분만 동서남북으로 달리면 끝없는 숲이 펼쳐졌다. 독일 남서부의 울창한 가문비나무 군락인 검은 숲 Schwarzwald, 그 풍경에서 우리는 종종 넋을 잃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와 함께 처음 향한 곳은 프라이부르크 서쪽의 마을이었다. 자전거로 이십여 분, 프라이부르크 서쪽의 시 경계를 넘는 조그만 마을에 우리는 자전거를 대어놓고 하우스 와인을 마셨다. 끝없이 펼쳐질 듯한 포도밭과 그 사이로 자리 잡은 오랜 성곽의 흔적들. 관광지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오랜 일상의 공간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 공간들을 달리며 서로의 삶을 가늠했다.


내가 도시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은 사실 모교의 도서관이었다. 1457년 개교한 프라이부르크 대학에는 24시간 운영되는 현대식 도서관이 있었는데, 온 벽이 유리로 둘러싸인 도서관은 밤이면 오랜 풍경 앞에서 홀로 반짝였다. 도서관에는 조용한 구역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역이 있었는데, 나는 대부분 후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도서관 아래에 대놓고 오 층의 공간에 앉아 있노라면, 제각기 공부할 거리를 들고 친구들이 옆에 앉았다. 도서관은 사실 해가 질 무렵이 가장 예뻤다. 도시의 풍경 너머로 지는 해는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였고, 우리는 그 풍경들을 바라보며 논문을 읽거나, 서로에게 기대거나, 음악을 듣거나, 가져온 음식을 몰래 먹었다.


그가 좋아하는 공간은 사회학과 건물 내의 오래된 도서관이었다. 조용한 도서관은 1903년에 지어진 KG4 건물에 있었는데, 가운데의 장서 공간을 감싼 동그란 원형 열람실이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는 그에게 개방된 도서관은 공부를 망치는 지름길이었다. 그가 사람들이 흔히 찾지 않는 조용한 도서관으로 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를 따라 종종 도서관의 열람실 한쪽에 자리를 잡곤 했다. 오래된 장서의 냄새를 맡으며 종종 낡은 책을 꺼내 들었다. 60년대와 70년대의 바스러질 것 같은 사회학 장서를 꺼내 들 때면, 내가 진정한 사회학도라도 된 듯싶었다.


수업을 마치면 우리는 자주 블루 브릿지 Wiwilíbrücke로 향하거나 도시의 가장 큰 호수인 제 파크 Seepark로 향했다. 다리의 아슬아슬한 난간에 올라 도시의 가장 큰 교회를 굽어보는 풍경은 유려했고, 공원의 조용한 일몰 또한 매력적이었다. 문화와 공간을 돈 주고 구입해야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의 '공간 문화'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사람들은 어디든 자리를 깔고 앉았고, 주섬주섬 자신이 해온 요리나 와인, 맥주 따위를 꺼냈다. 그는 여전히 포르세코를 병 채로 꺼냈고, 샌드위치 백에 넣어 온 말린 생강은 항상 그 뒤에 나오곤 했다. 그 위에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얹히면 또 다른 즐거운 밤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태국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친 그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생강 맛 리큐르를 판매한다. 도시의 파머스 마켓 Bauernmarkt에 자신이 만든 상품을 납품하며 다시 길을 떠날 순간을 고대한다. 종종 독일 맥주를 집어 들 때면 그의 말린 생강이 떠오른다, 물론 그의 밭은 웃음이 그 위에 얹히는 건 덤이다.



뒷모습, 내가 만났던 도시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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