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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Jun 02. 2021

죄의 궤적

오쿠다 히데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건네듯 쓰는 서평은 처음이라 조금은 낯설어서 말이지. 오늘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죄의 궤적,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이야. 하지만 책에 대한 설명에 앞서 개인적인 변주를 좀 풀어놨으면 하는데. 독서를 한다는 건, 첫 페이지를 펼치고 후루룩 책을 읽은 다음에 책을 덮는 행위로 끝나지 않잖아. 처음 책을 사면 그 표지를 눈여겨보고, 책을 살짝 펼쳐서 종이의 냄새를 맡아 보고, 앞면의 작가 소개와 뒷면의 책 소개를 눈여겨보다가 책과 작가에 관해 이것저것 떠올려보게 되지. 그 시발점부터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는 왜 오쿠다 히데오를 읽었는가, 말이야.  


사실 요 몇 년은 전공에 관련된 사회과학 서적만 읽느라 소설을 멀리했었지만, 소설만큼 좋아하는 건 없어. 신경숙은 소설을 두고 이런 말을 했지. '소설가에게 문학관이 무어냐고 묻는 건 상식적인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는 이 삶을, 그 유동적인 삶의 어느 순간을 붙잡아놓았을 소설을 두고 어떻게 한마디로 말해줄 수 있겠느냐, 말해본들 변할 게 아니냐고.' 결국 그에게 소설은 유동적인 삶의 어느 순간을 붙잡아 놓는 것, 나에게도 그랬던 소설들이 있지. 유년에 읽었던 세계문학 전집, 고등학생 때 한참 읽던 일본 문학, 스무 살 무렵 읽었던 한국 현대 문학과, 다시 회귀하듯 돌아와 빠져있던 세계문학. 다른 나라에 방문할 때면 항상 그 나라의 소설을 먼저 읽기 시작했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지 않고 콜롬비아에 갈 수는 없잖아?  


고등학생 무렵 읽었던 일본 소설들은 내 삶의 한순간을 붙잡았을까. 그랬던 거 같아, 이사카 코타로, 츠지 히토나리, 에쿠니 가오리, 가네시로 가즈키, 온다 리쿠,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그 너머의 작가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살아가며 나는 종종 또 다른 내가 되었고, 그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봤던 거 같아. 오쿠다 히데오는 그 작가 중 한 명이었어.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익살스럽게 그려내는 그의 책들은, 회색빛 일상을 빛나게 해 주었지. 그의 소설들에는 항상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했던 거 같아. 나는 최악, 한밤중에 행진, 남쪽으로 튀어, 꿈의 도시 등을 읽었는데, 그래서일까 이번 신작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더라고.  


그의 신작 죄의 궤적은 1963년에 실제로 일어난 '요시노부 유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야. 1960년대 초반 도쿄를 배경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의 사회 경제적 여건이 자세하게 묘사되지.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60년대 도쿄에 서 있는 느낌이야. 도쿄의 한복판에서 유괴된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 그리고 다음 날 걸려온 범인의 전화. 소설은 그 유괴 사건을 파헤치는 경찰의 활약을 그리지. 하지만 작가의 묘사에는 사건만이 중심에 있는 게 아니야. 범인의 어린 시절을 파헤치며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를 보여주거든. 평범한 이의 잔혹한 범행, 무엇이 그를 악의 길로 이끌었을까?  


소설은 범인과 경찰,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그저 묵묵히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1960년대 일본 사회의 명암을 보여주지. 동시에 작가는 '범죄자는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 비정상적인 사회 시스템과 가정환경에서 자란 범죄자를 두고 우리는 '악'과 '악인'을 구분하고, 떼어낼 수 있을까. 어느 더운 여름의 초입에 새벽 네 시까지 한 번에 읽어버렸던 그 책. 다음에 만날 때 꼭 들고 갈게. 당신도 읽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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