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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Aug 06. 2024

나이 들어가는 것, 늙어가는 것


  언젠가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얘기 도중 자꾸 울었다. 말없이 쳐다보고 있는 내게 눈물을 닦으며 눈물샘이 막혀 그렇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간호대학 재학 중일 때 안과를 실습 나갔던 생각이 났다. 내원하여 호소하는 환자들은 백내장과 눈물샘이 막혀 자꾸 눈물이 흐른다는 불편을 호소했다. 

  백내장은 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바로 수술하는 것을 권하지 않고 때가 되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눈물샘이 막혀 자꾸 눈물이 흐르는 증상은 눈물샘이 흐르는 막힌 관을 뚫어주어야 한다면서 곧바로 뚫어주는 시술을 시행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 많이 찾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가댁에 가면 외할머니가 자꾸 눈물을 흘리셨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통증이 없으므로  불편함을 애써 참고 있었던 것이다..


  젊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어 어른들의 마음이 뒤늦게 이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긴 머리를 빗어 비녀를 꼽고 다니셨다. 그 긴 머리가 부럽고 만지고 싶어서 빗질할 때마다 옆에 붙어앉아 내가 땋아드린다고 했다가 거부당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늘 바삐 어디론가 가셔야 했기 때문에 내가 장난삼아 느리게 땋아드리는 손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궁금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날 때부터 할머니셨나요?"라고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하셨고,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질문에 어린 나도 답답해했다.

  "아니 아니. 할머니도 우리처럼 어린애였을 때가 있었냐고요."

  "당연히 있었지."

  그러나 그때는 할머니가 거짓말을 하시는 줄 알았다. 어떻게 우리 같은 어린애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가 비녀를 꼽기 위해 긴 머리를 땋던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우리 할머니도 풋풋하게 어여쁜 시절이 있었음을.


  눈물을 자꾸 닦아내는 친구를 쳐다보며 "우리도 늙어가 나보다."라고 얘기했더니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늙어 가는 것이 왜 이렇게도 서글픈 것인가. 그러면 이십 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행복할까. 거의 많은 이들이 싫다고 한다. 이십 대라고 다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설프고 아픈 것을 다시 겪어야 된다면 돌아가지 못할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한 오평 선의 책 제목으로 위안을 삼아볼까. 

  

  시름시름 늙어가는 사람과 우아하게 익어가는 사람의 차이는 얼굴이 아니리 마음의 주름에 달려있다.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후회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면 마음 한 번 편하게 짝 펴본 지 오래라면 이제 얼굴이 아닌 마음의 주름부터 다림질할 시간이다.- 에필로그


  뒤돌아 지나온 발자국을 쳐다보면 삐뚤삐뚤하고 어느 것 하나 반듯하게 보이지 않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가만히 둘뿐이다. 눈이 어두워 바늘에 시를 못 꿰는 건 한참 전의 일이고 집에서 부분 염색하던 것을 이제 미용실에 가야만 뒤통수의 흰머리 염색이 가능해졌다. 벌떡벌떡 앉기도 하고 서기도 했던 내 무르팍은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나도 모르게 신음이 되어 입에서 기어 나온다. "끙, 할머니, 어머니 지난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것도 안되냐고 하고 맨날 여기저기 아프다고 약만 찾는다고 타박했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고 싶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비록 지나온 날 보다 적을지라도 마음의 주름을 펴기 위해 다림질하며 소중히 보내야 할 뿐이다. 음, 그래서 우리는 익어가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이고 울고 있는 친구를 다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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