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발 비행기를 타고 청주 공항까지 오는 동안 기내에서 내내 잤다. 전날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착륙해서 선반에 캐리어 꺼내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옆자리에 엄마랑 같이 있는 아가가 보채지도 않고 흥얼흥얼 하고 있었다. 보채지도 않아서 이쁘다는 생각에 나름 인사한다고 '아가야, 잘 가. 안녕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가 엄마는 '불편하셨죠?' 하면서 아기를 향해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해봐' 하며 인사를 시켰다. 나는 갑자기 ‘헉’ 하는 기분이 들면서 ‘괜히 아는 척했나’ 싶었다. ‘할머니’라니.
우리 애들이 고만고만할 때 장거리 데리고 다니려면 참 힘들었던 생각이 났다. 보채거나 떼를 써서 힘들었다기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서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는 동안 애가 없어져서 울고불고 미친 여자처럼 아무나 붙들고 '우리 애, 우리 애' 하면서 부르짖으며 헤매 다녔던 기억도 있다. 다행히 어떤 아저씨가 '이 애가 맞아요?' 하면서 데리고 왔길래 뒤도 안 보고 둘러업고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가끔 애를 찾는다는 현수막이 펄럭이거나 광고지를 볼 때는 아기 부모님들이 ‘맨 정신으로 살 수 있기는 할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이 모습 이만큼 오게 된 건 스스로의 힘으로 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그 많은 세월을 자식을 위한 한숨과 식구들을 위해 흘린 땀의 세월 덕분이라 할 수가 있겠다. 나 또한 우리 식구들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을 아까워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자식을 위한 사랑에는 아낌이 없는데 부모를 위한 사랑에는 쉽지가 않다. 자식을 위한 사랑은 당연한데 부모를 향한 사랑에는 어쩐지 힘이 들어간다. 아마도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원리인가 보다 하면서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게 된다. 집에서 나올 때 어머니가 냉동실에 있는 갈치 가져가서 반찬으로 먹으라고 검정 비닐봉지에 똘똘 싸서 말아주는 걸 옥신각신하며 두고 온 게 생각났다. 어차피 어머니도 사서 드셔야 되는 걸 굳이 내게 주고 싶어 하시길래 마다하고 놓고 온 것이다. 또 차비하라고 꼬깃꼬깃한 돈을 내미시는데 순간 짜증이 났다. 며칠 있다 또 오는데 그러지 마시라 해도 고집스레 오만 원권을 내미신다. 어머닌 아쉬워서 그렇고 나는 속상해서 그렇다.
식탁 한 귀퉁이에 도로 놓고 나오는데 뒤에서 '에구, 고집은. 쯧쯧' 어머니의 푸념 같은 중얼거림이 들린다.
전에 외할머니랑 어머니가 외가에 갈 때마다 콩 한 줌 갖고 이렇게 하는 거 보고 절대로 저렇게 안 해야지 했는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와의 똑같은 장면이 내가 하고 있다. 그때도 넉넉지 않은 외할머니가 찾아간 어머니에게 뭐라도 하나 주고 싶어 그랬고 어머닌 그런 외할머니가 속상해서 그랬다. 이다음 우리 애들이 내게 혹여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어느 부모처럼 나도 애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너희도 네 자식에게 그렇게 하라’라고.
아가에게 다시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고 걸어 나오면서 내가 아무리 볼륨 파마를 해서 생머리 단발을 하더라도 할머니로 보이는구나 싶어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갑자기 우리 애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어째서 셋 중 한 놈도 짝을 안 데리고 오냐."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