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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n 25. 2024

폭우


  장마가 시작이라더니 사흘째 비가 내린다. 어쩌다 내린 비는 가물어 퍽퍽한 대지를 촉촉하게 하고, 해갈된 식물들은 생기를 머금어 자기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사람들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일부러 마당에 호수를 길게 늘여 물을 뿌려주지 않아도 되고 촉촉해진 땅에 돋아있는 풀은 뽑기에도 한결 수월하다. 



  비는 심상찮게 내려 되려 근심이 되었다. 쏟아지는 비는 앞뒤 마당에 고르지 못한 부분을 금세 물이 차오르게 했다. 키가 있는 화초들은 벌써 "나 죽네" 하고 고꾸라져있는데 담벼락 사이로 심어 이제 막 노란색과 자줏빛의 꽃을 피워대기 시작하는 루드베키아가 슬금 슬금 쓰러지기 시작한다. 

  내년 봄에 보기 위해 들에서 캐다가 심은 하얀색의 구절초는 벌써 실신했다. 날이 좋을 때면 한껏 뽐내던 수국은 거대한 꽃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아이고!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라고 불리는 팬지는 물에 잠겨 익사 직전이다.



  우산을 쓰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릴 때마다  물이 상습적으로 고이는 부분은 어디며,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고 있으며 담벼락이 이상은 없는지 눈여겨봐뒀다가 날이 좋으면 보수를 해야 한다. 매번 생각은 하지만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아차 하는 사이 지나쳐 똑같은 후회를 하곤 한다. 장마가 끝나면서 작은 일들은 그때그때 처리하고 큰일이다 싶은 일들은 날 잡아 할 생각을 한다. 

  무더위가 지나면 물이 고이는 부분에 배수관을 만드는 작업도 잊지 말아야지. 남들은 하늘이 맑고 화창하면 잘 꾸며진 카페를 찾아가거나 경치 좋은 곳을 구경 삼아 간다고 하는데 나는 뭔가 비 정상인가 보다. 날이 좋으면 꽃무늬 몸뻬 바지와 장화와 삽을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



   비가 곧 멎을 모양으로 캄캄했던 하늘이 밝아지고 있다. 캄캄해지기 전에 비가 먼저 내리기도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도로변 달맞이꽃이 올해는 일찍 피고는 지고 있다. 허락도 없이 사방으로 뻗어간 줄기와 뿌리는 아무 데고 자리를 잡고 연한 분홍색 꽃을 마구 피워댄다. 다행히 뿌리가 깊지 않아서 정리하는 작업은 한결 수월한 편이다.

  천재지변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장마가 길게 가지 않고 적당히 끝내주길 바랄 뿐이다. 어릴 때 읽었던 소설이라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데, 장마가 너무 길게 가는 탓에 마를 날 없는 대지와 집안의 습한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무섭게 변해가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 생각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는 빗방울을 헤아릴 정도로 조금씩 내리고 창문을 열고 하늘을 향해 이제 적당히 뿌리고 끝내주기를 바란다 고 혼잣말을 하고 있다.


실신한 구절초

  

  주변의 모든 것은 손을 대고 관리를 해주어야만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제대로의 빛을 발할 수 있다. 돌담으로 경계를 만들어 마당 안에 있는 것만 내 영역의 것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마당을 나와 밖을 걸어나가면 시야로 들어오는 모든 정경이 우리의 눈을 호강시키기도 한다.

  우리 앞집에 통천사 스님은 작년에 수국 동산을 만든다더니  올해부터 화려한 꽃동산이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내년부터는 핫풀이될 거라고 하면서 은근히 스님의 부지런함을 칭찬하였다. 그 덕에 우리 집도 같이 돋보인다.

  나의 손이 닿는 모든 곳은 내게 허락한 정원으로 올해 손을 움직여 수고하고 내년에 보여줄 아름다움을 기대한다.


스님이 만든 수국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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